베트남의 오래된 마을 '호이안'에서 꿈같은 일주일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철저한 준비나 빼곡한 계획이 없어도 행복했다. 그때부터 작가는 베트남의 소도시 여행에 매료되어 여러 번 베트남을 찾아갔다. 『그래서, 베트남』은 북부의 '하이퐁'에서부터 남부의 '껀터'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들을 느리게 흘러내려온 이야기다. 소도시에서만 가능한 여유와 너그러움, 낭만에 반했고 혼자였기에 현지인의 일상에 사이좋게 섞여들 수 있었다. 낯설지만 조용한 마을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기, 명랑하고 잘 웃는 사람들을 만나기, 둘도 없이 맛있는 쌀국수를 즐기기 등, 숨어있던 진주를 캐어내듯 반짝이는 베트남 소도시의 매력을 유쾌하게 담았다.
표지를 보면 낯선 도시들의 이름이 가득합니다. 흔히 대도시를 가는데 남다르게 소도시를 여행하신 이유는 뭔가요?
첫 베트남 여행이었던 호이안의 경험이 오래도록 남았어요. 특별한 건 없었답니다. 그저 날마다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을 뿐이었는데요. 비 오던 길에서 선뜻 문을 열어준 수선집 주인과 수다를 떨고,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오토바이 탄 부모들의 행렬을 구경하고, 같은 숙소의 여행자들과 저녁을 먹고, 숙소 직원에게 한글을 가르쳐주었어요. 투어 한 번 안 하고도 그렇게 신나고 재밌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나는 작은 도시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이후, 작정하고 소도시만 찾아다녔어요. 결국, 베트남 북부에서 남부까지 거의 종주를 한 셈이지요. 작은 카페에서 늘어지고 좁은 골목길을 천천히 걷는 것. 이름 없는 시장들을 지칠 때까지 돌아다니고 이방인에게 너그러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런 일들이 소도시에선 아주 쉬웠거든요. 이상하게 베트남에선 행운의 여신이 따라다니는 느낌이었달까요?
소도시의 어떤 점들이 그렇게 작가님을 끌어당겼나요?
제가 복잡하고 시끄러운 걸 싫어합니다. 소도시는 비교적 덜 소란스럽고요, 사람들도 훨씬 여유가 있어요. 우리가 몰랐던 숨어있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도 많아요. 저는 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는 분위기가 참 소중했어요. 비록 잠시일지라도요. 누구나 가는 곳을 가고 누구나 먹는 것을 먹는, 틀에 박힌 관광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하게 되죠.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다 보면 겉만 자유여행이지 실제론 패키지 여행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소도시에선 그 지역에 발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날 것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어요. 도시마다 색다르고 다양한 쌀국수를 먹어본 것도 잊지 못할 즐거움이에요. 맛있는 쌀국수 때문에라도 다시 베트남을 가고 싶을 정도예요.
독자들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베트남의 도시는 어디인가요?
아마 취향 따라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덥고 습한 날씨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가을 날씨 같은 '달랏'이 제 맘에 쏙 들었어요. '달랏'은 동남아에서 보기 드문 아라비카 원두 생산지이기도 해요. 커피 문화가 발달해서 멋지고 다양한 카페를 즐길 수 있어요. 바다를 원한다면 깟바섬이 낫겠죠. 화려한 휴양지는 아니지만 '하롱베이'가 가깝고 해변도 예뻐요. '동허이'에선 어마어마한 규모의 동굴 탐험이 가능해요. 마치 외계인의 세계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동굴이 많거든요. 동남아 특유의 '메콩강' 분위기를 맛보려면 껀터가 좋겠어요. 새벽에 시작하는 수상 시장이 큰 볼거리랍니다. 도시마다 특징이 있어서 하나를 고르지는 못하겠네요.
여행을 하지 못하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가 길었어요. 어떻게 보내셨나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초기에는 저도 방황을 많이 했어요. 여행과 관련된 모든 일이 정지 상태였으니까요.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었고요. 결국 운영하던 강소율여행연구소 사무실을 접고 온라인으로만 활동을 했지요. 기왕 이리된 거, 조금 엉뚱하지만 걷기 운동에 매진했답니다. 평소에도 걷는 걸 좋아했고, 부담 없이 가볍게 할 수 있는 운동이잖아요. 몸을 자꾸 움직여야 우울감에서 벗어나게 되더라고요. 하루에 만 보를 매일 걸었어요. 덕분에 체중 감량도 성공했죠. 만 보 걷기는 습관이 되어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에는 제주 일 년 살이를 시작했어요. 막연한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확 저질러버린 거예요. 해외여행을 못 하는 시기가 오히려 여행 아닌 여행을 시도하기에 적당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준비가 부족해 고생도 하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답니다. 하지만 평소 사랑하던 제주의 숲길과 오름을 실컷 걸을 수 있어 행복했어요. 지난 11월 초, 매서운 제주의 겨울이 닥치기 전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이 출간되는 시기이기도 했고요. 참 제주도에서 5월에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을 출간했네요. 유방암 경험 10년을 맞아 그동안 썼던 글들을 모아서 만들었어요. 적고 보니 나름대로 바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스스로 '느리고 비효율적인 여행자'라고 쓰셨어요. 설명해 주세요.
제가 타고나길 저질 체력인데다 유방암 경험까지 있어요. 그래서 흔히들 생각하는 여행 작가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릅니다. 오히려 일반 여행자보다 허약한 체질이죠. 당연히 느리게 다닐 수밖에 없어요. 하루에 한 곳만 가는 게 기본이에요. 쇼핑이나 관광지,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요. 골목을 거닐며 우연히 마주치는 여행자나 현지인과 어울리는 걸 선호해요. 어찌 보면 상당히 비효율적이겠지만, 저에겐 그런 방식이 오히려 효율적이랍니다. 왜냐하면 그게 저에게 딱 맞는 여행법이니까요. 누구나 자기만의 여행법을 시도하고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자기다운 여행이 가장 좋은 여행이 아닐까요?
책을 보면 작가님은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이신 것 같아요. 바람직한 여행자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세요?
단지 소극적으로 구경만 한다면 즉 눈만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관광객이겠죠. 여행자는 적극적으로 자기 여행을 만들어가는 사람이고요. 온몸으로 여행에 뛰어드는 체험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관광객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조금씩 여행의 범위를 넓히자는 뜻이에요. 현지인을 존중하는 것이 여행자의 최우선이자 최고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에 불과하고 그들이 진짜 주인이니까요. 빚쟁이처럼 친절을 내어달라 조를 수는 없는 거죠. 친절이란 베풀면 그저 감사하게 받아야 하는 일종의 깜짝 선물이잖아요. 현지인들의 삶을 방해하지 말고 살짝 끼어들었다가 빠져나오는 존재,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여행자입니다.
어떤 분들에게 『그래서, 배트남』을 권하고 싶으신가요?
욕심을 내볼까요? 평소 여행을 좋아했던 분들과 코로나로 인해 미뤄온 여행을 다시 가고 싶은 모든 분들이 읽으시면 좋겠어요. 범위를 좁혀 볼까요? 대도시 위주의 여행을 해보았지만 뭔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분, 분주하고 시끄러운 곳보다 조용하고 소박한 곳을 좋아하는 분, 현지인의 생활을 더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은 분, 남들이 안 가본 숨은 여행지를 발견하고 싶은 분, 동남아시아와 베트남에 관심이 있는 분,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분, 화려한 매운맛 여행보다 소소한 담백한 맛 여행을 원하는 분, 당장 여행은 못 가겠고 대리 만족을 하고 싶은 분까지 편안하게 읽으실 수 있는 책입니다.
*소율 주부에서 여행자, 여행자에서 여행 작가, 여행 작가에서 여행 강사로 변신하였다. 나이 마흔에 첫 여행을 시작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해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날아다녔다. 그 덕에 가장 힘들던 생의 한가운데를 담쟁이가 벽을 넘듯 천천히 그러나 무사히 통과했다. 여행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여행에 대해 강의한다. 이제 여행은 취미이자 일이 되었다. 무엇이든 내 입에 밥 넣어주는 일은 고귀하다고 믿는다. 기왕이면 좋아하는 일로 밥 벌어먹기가 목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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