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출신 저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성장 소설. 『하버드 22학번』이 그리는 입시는 대한민국 독자라면 대부분 경험해본 적 있을 법한 특정한 감각이다. 『하버드 22학번』은 자퇴생 '하비'를 통해 합격만능주의가 만연한 시대,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묻는다. 단단한 결의를 품은 사람의 내면은 자기 확신으로 눈부시게 빛난다는 사실을 알기에 저자는 소설 속 화자의 입을 빌려 당당하게 말한다.
"저는 반드시 합격할 겁니다. 하버드."
『하버드 22학번』이 첫 책인 만큼 작가님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요. 짤막한 자기소개와 작품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연필로 필연을 옮겨 적는, 신인 소설가 '구하비'라고 합니다. '하버드'나 '대학 입시'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미 많지만, 제 첫 번째 소설 『하버드 22학번』은 '성공-실패', '공정-불공정'이라는 이분(dichotomy) 사이의 모순, 몰이해, 그리고 부조화를 집중적으로 그려낸 책입니다. 누구보다 높고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새, '하-버드(bird)'가 되고 싶은 야망에 스스로를 역설적으로 새장에 가두는 학생들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들의 이름부터 행보까지 현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지만, 소설은 결국 허구의 장르라는 전제 하에 독자님들께서 현실과 허구에 각각 한 발씩을 딛고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근까지 외국에서 생활하셨다고요. 국내에서 소설책을 내겠다고 결심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학사, 석사를 모두 마치느라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보스턴에서 6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만, 조금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제 문학적, 사상적 토대가 형성된 시기는 자퇴생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평일 낮 교실에서 수능 국어 지문을 읽을 때, 저는 도서관에서 SAT 공부를 위해 스타인벡, 카프카,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그에 대한 반작용과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국 문학을 읽을 때 큰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최인훈, 김수영,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가장 좋아했고, 작가 소개에서 밝혔듯 문예지를 마치 교과서 삼아 계속해서 읽다 보니, 언젠가는 한국어로 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버드 출신'이라는 말은 서양적이기도 하고, 자기 계발서 혹은 실용서에서 주로 사용되는 키워드이지만, 저는 백낙청 선생님처럼 한국 문학에 대해 더 알고, 더 쓰고 싶었습니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문화와 문명의 무게를 받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제 언어로 소설책을 내고 싶다는 건 흔들림 없는 결심이었던 것 같아요.
자전적인 요소가 담겼다는 점이 『하버드 22학번』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하셨다고요. 자퇴를 결심하셨을 때 작가님의 심정과, 가족이나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때가 2012년이었으니 올해로 10년이 됐습니다. 그 당시에는 많이 황폐했어요. 소설 속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럴수록 저는 야망으로 도피했던 것 같아요. 현실이 막막할수록, 오히려 비현실적인 야망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탈출구를 찾는 심정이었달까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입시라는 방법을 통해 저를 증명해 낼 자신과 각오는 언제나 확고했습니다. 그래서 하버드라는 이상향을 계속해서 정조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퇴하기 전날 밤, 9시쯤 야식 먹는 시간이 끝나고 친구들과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누며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선언했던 기억이 납니다. "난 가장 위대한 입시 스토리를 써내겠다"고. 물론, 그걸 진지하게 믿었던 사람은 그 당시엔 저까지 포함해 아무도 없었던 것 같지만요. 이 대사를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사용했는데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다만, '민로사' 등 주요 인물들은 소설 내용과는 다르게 자퇴 이후에 만난 인연들이라, 지금 돌아보면 자퇴하던 그 순간에는 황폐했지만 결국 필연으로 마무리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를 새장에, 학생을 새에 빗댄 묘사가 인상 깊었어요. 주인공 하비를 비롯한 네 명의 친구들이 결성하는 스터디 그룹의 이름이 'HARBIRD'인 것도요. 하버드의 '버드'를 새라고 연결 짓는 발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일차적으로는, '새'라는 문학적 메타포를 항상 좋아해왔습니다. 자유로우면서도 외로운 느낌을 주기 때문인가 봐요. 특히, 자퇴생 시절에는 소설 속 선진두 선생이 한 말처럼 "광활한 하늘의 자유를 견뎌내지 못하는 새의 날개는 부러질 것"이라고 많이 느꼈고, 자유로울수록 고독이 수반된다는 걸 표현하기에 '새'가 딱 맞아떨어지니 언젠가 책의 제목을 짓는다면 꼭 '새' 혹은 '버드'를 넣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어렴풋한 생각만 품은 채로, 학부를 졸업할 시기가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졸업 논문과 대학원 지원을 바쁘게 마무리하고 나니(지원서를 낸 곳 중에 하버드도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졸업식 연설에 들어갈 대표로 문장을 하나 고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작가 소개에도 있는, '새를 이해하려면 날개를 알아야 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면 언어를 알아야 한다'를 보냈거든요. 그리고 '버드'를 발음하면서 연설 연습을 하는데 갑자기 '하-버드'라는 키워드가 딱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하버드 대학원 합격 편지를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아, 이제 하-버드(HARBIRD)를 제목에 온전하게 넣을 수 있겠다'였습니다.
책에서 가장 아끼는 한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이상향이자 이상형인 로사와 함께하는 장면들, 그중에서도 하버드에서 열리는 GSC가 끝나고 앤더슨 메모리얼 브릿지 끝에 앉아 찰스강을 바라보는 장면입니다. 하비와 로사는 일반적인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로맨스와는 거리가 먼, 마치 클린턴 부부처럼 야망을 가득 품은 파워 커플입니다. 그러나 하버드에는 한 명밖에 지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데, 22년도에 하버드생이 되어 다시 이곳에 오자고 약속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이 처한 비현실적이고 역설적인 '캐치-22' 상황을 응축시키고자 했어요. 추후 작품에서 이어질 최종 엔딩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가장 의미 깊은 장면으로 꼽고 싶습니다. 소설적으로도, 실제로도요.
스스로를 새장에 가두듯, 자발적으로 고통스러운 일과에 뛰어들어야 하는 학생들의 불안한 심리 상태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어요. 그 안에 단순히 괴로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야망과 욕심, 꿈에 대한 갈망도 존재하기에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완성된 것 같아요. 비슷한 경험을 통과하고 있을 10대들에게 이 책이 어떤 의미가 되어주면 좋을까요?
6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원고 마감을 하면서 이제 새장에 갇혀 몸과 마음을 갈아 넣는 '고시 시절'의 절박한 담론이 한국에서 많이 사라졌다고 느꼈어요. 동시에 절박함이 사라진 공백에 무력감이 자리 잡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스스로를 아끼는 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세운 확고한 목표를 끝까지 이뤄낸다는 것은 굉장히 숭고한 체험입니다. 치열한 대학 입시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해 보이고 싶은 고등학생 여러분들에게 이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재료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 속 입시는 미국 대학 입시이지만, 한국 입시의 DNA를 한껏 이식한 이야기이기에 입시 전쟁을 이겨내는 한국 고등학생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대학을 가던 시절에는 입시 만능론이 성행했는데, 지금은 입시 무용론이 성행하는 시대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런 거대 담론들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결국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써서 남길 수 있는 것 역시 어떤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이야기뿐이기에, 마지막까지 남는 것도 결국은 개인의 이야기예요. 그러니 꼭 자신만의 이야기를 해내시길 바랍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22'라는 숫자가 제게 의미가 큰 만큼, 남은 올해를 숨 가쁘게 달리고 싶습니다. 『하버드 22학번』의 세계관도 더욱 넓혀나갈 계획입니다. 자퇴 이후 하버드 합격을 다루는 2부와, 하버드에서의 생활을 다룬 3부 원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전에 이번 책에 등장하는 '문도형'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입시가 아닌 실리콘 밸리, 암호 화폐를 소재로 삼아 비슷한 성격의 야망과 욕망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필연적인 이야기들을 소설로 쓰고자 합니다.
다만, 이런 숨 가쁜 계획들을 세우다가도, 오랜만에 한국에서 느끼는 서늘한 가을 바람에 환절기 감기도 앓고, 정처 없이 산책도 하다 보니 소설 속 인물들을 구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스스로를 잘 구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구하비 199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번째 생일이 조금 지나고, 외고를 자퇴했다. 평일 낮 빈 도서관에 앉아 문예지를 교과서 삼아 읽고, 예술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것들을 시도해보며 시간을 보냈다. 새를 이해하려면 날개를 알아야 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면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다시 목적의식을 찾고 학교로 돌아가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UC버클리대에서 인지과학과 사회학 학사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하버드대에서 발달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언어가 공간인지능력에 끼치는 상대적 효과를 연구한 논문으로 'Robert J. Glushko 최우수 인지 과학 논문상'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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