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은 우연히 만난 친구의 놀라운 고백과 함께 시작한다. 자신의 신체는 여성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남성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얼마 전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 충격적인 도입부는 읽는 이로 하여금 이야기에 몰입하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여정에 함께하도록 하며, 700페이지가 넘는 볼륨감 있는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만든다. 『외사랑』은 살인 사건의 진상 규명이라는 미스터리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속에는 젠더, 소수자에 대한 차별, 사회의 정상성 등에 관한 물음과 성찰로 가득하다.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된 것이 2001년이라는 것이다.
현재 발표되었다고 해도 손색없는 주제 의식을 지닌 작품을 20년도 전에 내놓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시대를 앞선 선견지명을 엿볼 수 있다. 『외사랑』을 번역한 민경욱 번역가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번역가님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IT 기업에서 콘텐츠를 기획하며 일본 대중문화를 접하게 되었어요. 대학 때부터 일본어 공부를 하기는 했는데 그저 책 읽기를 좋아했을 뿐 번역가라는 꿈은 꾼 적 없었죠. 일하면서 알게 된, 출판사 대표님이 한번 번역해 보라고 책을 던져주셨어요. 제 인생에서 이런 일이 또 있겠나 싶어 도전했는데 이후 다른 출판사의 연락을 받으며 12년째 이 일을 하고 있네요. 책을 통해 다양한 세계를 접하는 게 좋아 주로 소설을 번역하고 있지만, 건축이나 미술, 경제, 경영, 인문 등 다양한 분야 번역에도 관심이 많고 기회가 될 때는 언제든 참여하고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양한 주제로 여러 작품을 써온 작가입니다. 다른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번역도 다수 해오셨는데, 이 책 『외사랑』이 다른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과 비교해 특별한 점이 무엇일까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본격 미스터리부터 사회파 미스터리까지 모든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죠. 또 작품의 주제도 아주 다양합니다. 대체로 본격에서 사회파로 천천히 무게 중심을 옮겨왔다고 생각하는데요, 『외사랑』 역시 굳이 분류하자면 사회파 미스터리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죠.
하지만 다른 사회파 미스터리가 사회적 주제를 품고 있으나, 살인이라는 미스터리 요소를 중심으로 가져가면서 사회적 메시지를 슬며시 넣은 데 반해, 『외사랑』은 오히려 살인 사건을 소재로 삼아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더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고, 그 속에서 우정과 사랑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사회파 미스터리이면서 휴먼 드라마의 요소가 아주 짙은 작품입니다.
『외사랑』을 번역하실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번역하셨나요?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작품 속에 나오는 젠더 문제와 관련된 용어와 개념을 어떻게 정리할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이 작품이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들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청춘을 구가할 때 서로에 대해 샅샅이 안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이 사회에 나가 저마다의 세월을 보내고 다른 직업과 처지에 놓이게 된 상태에서 사건에 얽히면서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각자의 세계관을 드러냅니다.
우리도 살면서 이런 일을 종종 겪기 마련이죠.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한 친구가 나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순간들이요. 그럴 때 낙담하면서도 과거에 맺은 강한 연대감에 그에게서 쉽게 등을 돌리지 못하도록 할 때가 있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예요. 서로 다른 처지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듯하나 역시 과거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지도 못합니다. 그런 애틋하면서도 씁쓸한, 그러면서도 푸근한 감정을 문체 속에서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번 『외사랑』을 번역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앞의 질문과 이어질 것 같네요. 『외사랑』은 젠더 문제를 20년도 전에 다룬 작품입니다. 오늘날 젠더 문제는 엄청나게 활발한 논의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어, 늘 새로운 개념과 용어가 생기고 복잡한 분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 다양한 개념을 제가 다 알 수 없다는 게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쓰이는 젠더 용어들이 지금도 동일하게 쓰이고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혹시, 그 용어들에 또 다른 편견을 담는 게 아닌지도 고민했죠. 교정을 거치면서 담당 편집자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이 단어는 올바르지 않다, 다른 단어로 사용하자. 조언과 제안을 나누며 하나씩 정해나갔습니다. 혹시 잘못된 용어 사용이 있다면 너그럽게 봐주시고 또 적극적으로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외사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구절은 무엇인가요?
691페이지의 '어이! 뭐 하는 거야!'라는 구절입니다. '에이, 그게 뭐야!'라고 생각하시는 독자분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제게는 가장 결정적인 장면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 장면은 거의 마지막 부분에 경찰에 들킬 위기에 놓인 주인공들에게 기자인 하야타가 건네는 말입니다. 주인공들이 범죄를 저지른 동창을 어떻게든 구하려고 하는 데 반해 하야타라는 인물은 작품 초반부터 자신의 직업관을 지키겠다며 반대 입장에 섭니다. 주인공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인물이죠. 그런 그가 마지막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우정'을 선택하는 장면입니다. 이제는 놓아야 하는 과거이지만 결코 놓을 수 없는 애절한 마음, 정체성이나 사회적 처지보다 앞서는 인간으로서의 마음, 함께 했던 우정에 끝내 손을 내미는 장면이라 좋아합니다.
번역가님께서 생각하시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새삼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해 구구절절 얘기하는 일은 독자 여러분께 성가신 일일지 모릅니다. 그만큼 히가시노 게이고는 대작가가 되었죠. 그러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번역가 입문 초기 히가시노 게이고는 제게 과학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가장 현대적인 주제를 본격 미스터리로 완성할 수 있음을 알려준 작가입니다. 이후로도 꽉 짜인 미스터리 구조 속에 정말 다양하고 묵직한 주제를 아주 자연스럽게 녹여낸다는 점, 여기에 휴먼 드라마로서의 감동까지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장르 문학 작가의 모델이 아닐까 싶습니다.
『외사랑』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외사랑'이라는 제목 때문에 혹여 달달한 사랑 이야기가 담긴 학원 미스터리로 오해하실까 걱정했습니다. 어렵게 여겨지기 쉬운 젠더 문제를 절절하게 풀어낸 작가의 깊은 계산이 『외사랑』이라는 제목에 담겨 있으니, 히가시노 게이고가 왜 하필 제목을 『외사랑』이라고 지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며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민경욱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 관련 회사에 근무하며 1999년부터 일본문화포털 '일본으로 가는 길'을 운영했으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전문 번역가의 길을 걷고 있다. |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