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을 기다립니다] 난다 작가님께 - 김신회 에세이스트
이 편지를 시작으로 저는 다시 쓰기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요. 기나긴 주저 끝에 새 책이 나온다면 작가님께 꼭 한 권 선물하고 싶습니다.
글ㆍ사진 김신회(에세이스트)
202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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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가님. 여름의 한가운데인데 편안히 지내고 계신가요? ‘한군’ 님과 시호, 고양이 산호에게도 무탈한 나날일지 궁금합니다. 그간 새로운 식구가 생겼으려나요?

저는 에세이를 쓰는 김신회라고 합니다. 작가님은 저를 모르시겠죠. 하지만 저도 작가님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진 않은 것 같아 어쩐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읽어왔을 뿐 우연히라도 뵌 적이 없으니까요. 그저 책에 실린 조그만 사진을 본 게 다입니다. 사진을 봤을 때 ‘어…? 왠지 나랑 좀 닮으신 듯?’했답니다. 부디 제 사진을 찾아보시지 않았으면 해요.

평소 저는 좋아하는 인물의 개인 정보나 사진, 기사 등을 찾아보지 않아요. 줄곧 팬이었던 해외 스타가 내한해도 보러 가지 않고요.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이나 영화 무대 인사에도 가지 않습니다. 일단 게을러서이고요. 저만의(!) 스타에게 사람들이 꺅꺅 소리 지르며 열광하는 꼴을 보면 심사가 뒤틀립니다. 그래서 방구석에서 혼자 좋아합니다. 그야말로 음침한 ‘덕후’라고 할 수 있어요.

작가님 소식도 오직 작품을 통해서만 접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편지를 쓰는 기회가 허락되다니 드디어 ‘성덕’이 되었나 봐요. 하지만 설레발은 넣어둘게요. 오늘만큼은 (거울 앞에서 두 뺨을 때리며) 쿨하게 다가간다! 선 지킨다!

작가님은 만화를 그리시고, 에세이도 쓰시죠. 저 역시 에세이를 쓰고 있는 만큼 작가님의 만화를 읽을 때와 에세이를 읽을 때 다른 감각을 경험합니다. 먼저, 만화는 그저 만화 팬으로서 사랑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특히 만화를 그리는 사람을 동경해 왔어요. 캐릭터부터 그림체, 스토리텔링에다 웃음과 감동까지 직접 만들어내는 만화가들이 마냥 신기하고 멋집니다.



작가님이 쓰신 『어쿠스틱 라이프』는 세상에 존재하는 만화책 중 제가 전권을 읽고 또 읽는 단 하나의 작품입니다. 만화를 통해 작가님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알게 되고 삶의 변화, 고민, 즐거움을 엿보면서 저의 일상은 어떤지도 되돌아보게 돼요. 물론 이러한 성찰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님의 깨알 같은 그림과 유머지요. 읽을 때마다 빵빵 터집니다! 어휴, 어쩜 그렇게 재밌으세요! 비결이 있다면요?!… 후… 진정할게요.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고 합니다. 하나는 재미주의자, 하나는 의미주의자.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재미주의자인데요. 재미가 있어야 비로소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믿으며 살고 있어요. 단, 그 재미에는 웃음만 있는 게 아니지요.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 불현듯 뭔가를 깨달을 때, 새로운 교훈을 얻거나 문득 놀라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일도 다 재미라고 생각해요. 그 모든 것을 저는 작가님의 만화를 통해 경험합니다.



그동안 저는 한 번도 임신과 출산을 경험해 보고 싶은 적이 없었습니다. 비혼인 상태를 즐기면서, 왠지 그게 내 일이 될 것 같다 싶을 때면 적극적으로 줄행랑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날 때까지』를 읽고 나서는 어쩌면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싶어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읽는 내내 ‘아, 나도 이렇게 엄청난 기대 속에 세상에 나왔구나. 이만큼이나 사랑받으며 컸구나.’ 하고 힘 있는 포옹에 둘러싸인 기분이 들었어요.

몇 년 전부터 저는 개와 함께 살고 있는데요. 그 이후 작가님의 작품이 더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수많은 고민과 체험이 있었지만 ‘낙관 끝에 고양이가 있는 삶’을 선택하셨다는 이야기에 저와 개가 가족이 되던 순간이 겹쳐졌습니다. 산책할 때 ‘오지라퍼’가 나타났을 때는 작가님께서, 내가 과연 ‘아이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의 머리를 쥐어뜯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시던 대목이 떠오르고요. 작가님의 만화를 읽을 때마다 멀리서나마 작가님과 함께 보폭을 맞춰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개를 위해 누군가의 머리를 쥐어뜯을 각오가 돼 있어요!

사람은 자기가 알고 있고, 또 경험해 온 것들을 주로 쓰게 되지요. 특히 에세이는 그런 면에서 거짓이 통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독자로서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고,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읽게 돼요.



하지만 『거의 정반대의 행복』은 저와 거의 정반대의 이야기임에도 푹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쌀'(태명)을 배 속에 품고, 아이를 만나기까지의 여정, 시간이 흘러 '시호'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를 직접 키우며 느끼는 감정과 다양한 체험에 대해 쓰신 이 책을 통해 아이를 갖고, 낳고, 키우는 삶에 대해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 장 한 장 줄어드는 게 아까울 정도로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책 구석구석 흘러넘치는 작가님의 사랑과 열정에 읽는 동안 유난히 가슴 벅찼던 책입니다. 여러 번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었어요.

매력적인 에세이를 접할 때마다 제 안에는 못난 마음이 싹틉니다. ‘나는 죽어도 이런 글을 쓸 수 없겠지,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나는 작가로서 얼마나 부족한가.’라며 절절한 패배감을 맛봅니다. 동시에 질투심이 활활 타올라요. 소위 말하는 ‘잘 쓰는’ 작가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밤잠을 설친 적도 많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을 때는 그 뾰족한 마음마저 노곤노곤해지더군요. 아기 '시호'가 좋아하던 아기 곰 젤리처럼 말랑해졌다가 슬라임처럼 물컹해지고, 시럽처럼 스르륵 녹아 마음에 스며들어요. 잠시 기다리면 먼 북소리처럼 이런 말이 들려옵니다. '너도 쓰거라아아아~ 너도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거라아아아~~'

사실 이 편지글 청탁을 받고 나서 한참을 망설였어요. 고백하자면 저는 요 몇 개월 동안 글을 전혀 못 쓰고 있었습니다. 아니, 쓰지 않은 것이지요. 하고 싶은 말이 없었고, 행여 잠깐 떠오르더라도 어떻게 시작하고 맺어야 할지 막막했어요. 마치 글쓰기를 처음 대하는 사람처럼 두려웠습니다. ‘요새 누가 글을 읽어. 다들 유튜브만 보잖아. 어차피 써도 안 읽을 건데 뭐, 안 읽는 글을 왜 써야 돼….’라고 넋두리만 늘어놓으며 유튜브만 봤어요. 아무리 편지 한 통 쓰는 일이어도 저에게는 완성해서 납품하는 ‘일’이었기에 부담감이 엄습했습니다. ‘나는 쓸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데, 어떡하지?’ 비슷한 고민을 이어온 시간이 일 년을 훌쩍 넘었습니다.

무작정 작가님의 작품을 다시 읽었어요. 『어쿠스틱 라이프』 1권부터 14권까지, 『내가 태어날 때까지』와 『거의 정반대의 행복』을 꺼내 들었습니다. 일 때문에 헤매던 시기여서 그런지, 일에 대해 이야기하신 부분이 유난히 가슴에 박혔습니다. “가장 완벽한 기분 전환법은 제대로 못 해낼까 봐 최대한 시작을 미루고 있는, 좋아하지만 무서운 바로 그 일을 하는 것뿐이다.”라고 쓰셨지요. 『어쿠스틱 라이프』 8권에 등장한 이 대목을 마주한 새벽, 벌떡 일어나 수첩을 펼쳐 들었습니다. 며칠에 걸쳐 작가님의 작품을 다 읽고 나서는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어요. 그리고 오늘은 이렇게 작가님께 편지‘글’을 쓰고 있네요.

살면서 정답을 몰라 막막할 때가 많지만, 답을 알고 있어서 막막할 때도 많은 것 같아요. 저의 요즘이 그랬습니다. 글이 안 써질 때 해야 하는 일은 뭐라도 써보는 것이죠. 두려움에 가득 차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할 때 할 수 있는 일은 그래도 일단 시작해 보는 것이죠. 그걸 알면서도 그저 웅크리고 있던 날들에 다시 펼친 작가님의 작품은 제게 다른 시작을 보여주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을 마주 보게 해주셔서요. 마음을 다잡을 시간만큼의 다양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아주셔서요.

이 편지를 시작으로 저는 다시 쓰기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요. 기나긴 주저 끝에 새 책이 나온다면 작가님께 꼭 한 권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 책이 나오기 전에 『어쿠스틱 라이프』 15권이 먼저 나올 것 같아 목 뒤로 식은땀이 흐르지만 그래도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다립니다.

작가님이 말씀하셨죠. 감기와 오덕(덕후)은 숨길 수 없는 것이라고. 애써 쿨한 척해 봐도 제 뜨거운 마음은 숨겨지지 않네요.

부디 건강하게, 즐겁게 작업하시고 머지않은 날 책으로 만나 뵙기를 기대합니다. 작가님의 새 작품이 제 편지에 대한 답장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김신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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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회(에세이스트)

전업 에세이스트. 『가벼운 책임』,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심심과 열심』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