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가 한국계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았다. 같은 달 한국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한국 수학의 수준은 높아져 가는데, 이에 반해 현실에서는 수포자가 넘쳐난다. 이과적 상상력과 지식을 얻기 위해서라도 수학이 필수인 시대, 우리는 어떻게 수학의 재미에 빠져들 수 있을까?
『미치도록 기발한 수학 천재들』은 세계 역사 속 수학의 놀라운 탄생 흔적을 하나하나 밟아가며, 잊고 있던 수학의 재미를 일깨우는 책으로, 세상을 바꿔온 대표적인 수학자 12인의 생애를 추적해, ‘수’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150여 컷이 넘는 풍부한 시각 자료와 함께 기상천외한 수학의 발견을 읽어 나가다 보면, ‘수학’이라는 학문이 교과서 속 따분한 지식이 아닌 내 ‘일상’이 되는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학 천재들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혹시 책에 있는 내용 중 특별히 소개해주실 에피소드가 있나요?
원고를 쓰며 자료를 찾다 보니 어떤 천재도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천재들의 빛나는 업적이 가능하도록 토대를 만들고 도운 사람들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중에서도 책에서 다룬 일곱 번째 수학자, '페르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17세기 프랑스 수학자들의 이야기에서 더 또렷이 드러나더라고요. 페르마는 정식으로 수학 교육을 받지 않은 아마추어 수학자였지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짧은 메모를 남기며 유명해졌습니다. 350여 년간 수많은 수학자가 그가 남긴 난제에 도전했고, 그 덕분에 '정수론'이 발전했습니다.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수학자이니, 페르마는 충분히 당대 수학계를 대표하는 주인공이 될 만한 했죠.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17세기 대표 수학자는 따로 있답니다.
바로 '메르센'입니다. 수학, 과학에 관심 많았던 메르센은 지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답을 얻었고, 개인 과학 동호회로 시작된 모임은 점차 커져 데카르트, 페르마, 파스칼 등 17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수학자들이 메르센을 통해 학문적 의견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페르마와 파스칼이 공정하게 판돈을 나누는 문제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확률론이 생겨났고, 데카르트와 페르마가 곡선에 관한 연구 결과를 공유하면서 해석 기하학의 아이디어가 만들어졌습니다.
홀로 골방에서 연구하던 수학 천재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영감을 얻고 새로운 학문을 창조할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메르센'이었습니다. 메르센 자신은 천재 수학자는 아니었지만, 데카르트, 페르마, 파스칼이 놀라운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든 사람이었던 거죠. 메르센의 과학 동호회는 1666년 루이 14세의 인가를 얻어 세워진 파리왕립과학아카데미로 이어지게 됩니다. 학자들이 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학문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가졌던 이곳은 이후 프랑스 과학 발달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17세기 프랑스에 아무리 뛰어난 천재들이 많이 있었다고 해도 메르센이 없었다면 수학의 발전을 가져올 수 없었을 게 분명합니다.
수학자들의 생애 중에서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인간적인 면모나 괴짜 같은 모습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생애를 추적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처음 원고를 기획하는 단계에서는 천재 수학자들의 업적만 잘 정리해도 충분히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정리된 원고는 수학자 인물 사전 같은 느낌이 들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뭐가 문제일까 고심하다가 ‘업적’이라는 낱말부터 다시 찾아보기로 했어요. 업적(業績)은 '업 업', '길쌈할 적'이라는 한자로 이루어진 말이에요. 어떤 사업이나 연구 따위에서 세운 공적이라고 사전에 나오더라고요.
공적이라는 한자어가 또 나와서 찾아봤어요. 공적(功績)은 노력과 수고를 들여 이루어낸 일의 결과를 말한다고 해요. 업적, 공적. 이 두 낱말 모두 '길쌈할 적'이라는 한자를 쓰는데, 실로 옷감을 짜는 것이 바로 길쌈이에요. 가느다란 실들을 가로, 세로로 엮어 옷감을 만들려면 얼마나 긴 시간과 노력이 들겠어요.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어느 날 갑자기 업적을 이루는 게 아니라, 옷감을 짜듯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고 동료들과 아이디어를 나누었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천재 수학자들의 삶을 톺아보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서로 관련 없이 보였던 수학자들이 연결되고 각각의 수학자들이 살았던 시대의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수학과 인류 역사가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도 자연히 드러났고요.
『미치도록 기발한 수학 천재들』에는 평소 많이 들어보지 못한 수학자의 업적과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어서 매우 새로웠습니다. 특히 흥미로우셨던 수학자가 있나요?
르네상스 시대라고 하면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두 예술가의 이름만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굉장히 뛰어난 두 예술가가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르네상스 시대의 수학자, '파치올리'도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랍니다. 무역상의 아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가정 교사부터 시작한 파치올리는 이탈리아의 여러 대학에서 수학 강의를 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르네상스 시대 수학 지식과 기법을 모은 책 『산술집성』을 썼습니다. 이 책에는 당시 베네치아 상인들 사이에서 쓰이던 복식부기 회계 방법까지 기록되어 있어 파치올리를 ‘회계학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해요.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수학 교사였던 파치올리는 다빈치 등 여러 예술가에게 기하학 지식을 제공하여 생동감 넘치는 예술 작품이 탄생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상인의 아들에게는 상업 수학을, 예술가들에게는 기하학과 원근법을 가르쳐 르네상스 시대 상업과 예술이 활짝 꽃피게 한 파치올리를 보면서 교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각각의 학생들이 가진 재능을 펼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선별해서 전달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 지인 가운데 교사가 많아서 그런지, 수학 교사였던 파치올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더군요.
그동안 ‘수학은 의심할 바가 없이 논리 정연하게 발전해왔다’는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수학에 대한 오해가 또 있을까요?
우리가 수학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건, ‘학교에서 배운 수학이 수학의 전부’라는 오해가 수학의 진짜 모습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수학은 어떤 과목인가요?’라고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은 대부분 ‘어렵고 복잡한 과목’, ‘빠른 계산으로 정답을 찾아야 높은 점수를 얻는 과목’이라고 대답합니다. 학교 수학만 경험하면 수학에서 빠른 계산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래서 수학은 두뇌 회전이 빠른 학생들만을 위한 과목이라고 오해하게 되죠. 덕분에 연산 속도를 높여준다는 여러 학습지가 크게 유행하고요.
그런데 수학자에게 수학이 어떤 과목인지 물으면 완전히 다른 대답이 나옵니다. ‘세상 모든 것의 패턴을 연구하는 학문’, ‘아름답고 창의적인 학문’이란 답이 돌아오죠. 실제 수학은 빠른 계산이 아니라 사물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깊은 사고를 통해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심지어 정답과 오답이 확실하게 구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논리적으로 타당한 답을 찾아갈 뿐이죠.
최근 수학을 공부한 지 오래되었지만, 다시 수학 학습지를 시작하는 어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요. 수포자도 다시 수학을 시작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입시를 염두에 두고 제한 시간 안에 엄청난 양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 학교 수학에서 벗어난 성인들은 해방감을 맛보게 되죠. ‘이젠 지긋지긋한 수학 안 해도 된다’라고 하면서요. 하지만 직장이나 업무 현장에서 다시 수학과 만나게 됩니다. 업무 보고서, 계획서 한 장도 표나 차트가 들어가야 성의 있게 작성한 것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숫자 계산은 엑셀이 알아서 다 해줍니다. 그래도 식은 스스로 세울 정도의 수학 실력은 있어야 그럴듯한 문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수학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 속에 들어온 수학을 접한 어른들이 수학 학습지를 시작하고 수학 교양서를 읽으며 수학적 사고를 키우려고 하는 것 같아요.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이해하는 데에 쓰이는 진짜 수학을 만나고 싶은 거죠.
주식과 피보나치 수열, 도박사와 게임의 승리 확률 등 수학이 일상생활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일상생활에서 수학적 사고가 어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일상에 수학이 활용된 예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수학을 응용한 기술은 일상생활 곳곳에 활용되고 있어요.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에 쓰이는 것은 물론이고, 데이터 분석을 통한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 포토샵, 에프터 이펙트와 같은 이미지와 영상 편집 도구의 여러 기능, 주가 예측 프로그램, 자율주행 자동차 등 수학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제 경우에는 심지어 수학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글쓰기에 수학적 사고를 적용해 큰 도움을 얻었어요.
수학자의 생애에 주목한 이유에 관한 앞선 질문에서 저는 수학자의 ‘업적’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생각했다고 답을 드렸어요.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 ‘업적’의 본질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수학자의 생애에 주목하게 되었던 거죠. 수학은 한정된 수의 정의와 공리, 공준을 가지고 논리적 추론을 통해 새로운 명제를 끌어내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런 수학적 사고에 익숙하다 보니, 저는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각 장의 수학자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다시 정의하고 풀어나가길 반복하면서 원고를 완성할 수 있었어요.
『미치도록 기발한 수학 천재들』에서 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 오일러 공식이 나오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은 무엇인가요?
수학의 모든 공식은 여러 수학자들이 오랜 시간 동안 생각에 생각을 더한 것을 최대한 압축해서 간결하게 표현해낸 것이니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진지하게 가장 아름다운 공식을 하나 꼽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수식을 이용한 표현 하나 소개해드릴게요.
이 식은 라이프니츠의 적분 기호를 이용해서 수식과 비슷한 형태로 인생을 표현한 거예요. 인생을 수로 나타낸다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 순간의 행복을 모두 합한 거라는 뜻이죠. 특정한 순간의 행복이 아니라 매 순간 행복의 합산으로 보는 게 참 마음에 듭니다. 순간순간 감사하면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태도가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의미로 다가왔거든요. 그래서 이 수식을 제 블로그 프로필로 해놓고 있어요. 매 순간 행복해지자는 제 각오라고 할까요. 이 세상 모두가 하루하루 행복한 일상을 쌓아 행복한 일생을 완성하길 바랍니다.
*송명진 고려대학교 수학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생명과학연구소 의료영상연구실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프리랜서 작가와 편집자로 활동 중이다. 그동안 『열려라! 수학의 요술 상자』, 『생각의 피자』(박종하 공저), 『생각이 아이를 바꾼다 1, 2』(박종하 공저) 등의 저서를 통해 수학이 가진 말랑말랑하고 유쾌한 재미를 소개해왔다. 자녀교육서로는 『초등 연산 문제집 ‘계산의 신’』, 『스텐포드 수학 공부법』, 『수학 두뇌 태교』가 있다. 도라에몽 신비한 수학사전 한국어판 저자이자 수학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타고난 수학교육전문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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