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건 동아서점 대표가 자신의 세 번째 책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를 펴냈다. 강원도 속초에서 3대째 동아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전작 『당신에게 말을 건다』, 『대한민국 도슨트-속초』 등을 통해 이미 독자들과 만난 바 있다.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는 하루 12시간, 주 6일을 서점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일하며 만난 사람들, 그리고 각별히 아끼는 책에 관해 이야기한 에세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동아서점’이라는 공간을 특별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데, 이 에세이도 마찬가지다. 잔잔한 책 파도가 읽는 사람을 융숭하게 만든다.
한 독자가 남긴 코닥 모멘트
주6일 서점을 운영하면서 에세이를 쓰셨어요. 편집자께 연재 형식으로 원고를 드렸다고요.
한꺼번에 드릴 자신이 없었어요. 서점 일이 바빠지면서 글을 주기적으로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먼저 연재 방식을 제안 드렸어요. 작년 1월부터 원고를 쓰기 시작했으니까 1년 4개월 동안 쓴 것 같아요.
첫 책은 ‘서점 적응기’였고 이번 책은 ‘독서 생활문’입니다.
제가 문학 비평가나 서평가, 출판 평론가가 아니니까 “이 책 되게 좋습니다”라고 소개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겠더라고요. 그런 글은 훨씬 잘 쓰는 분들이 계시고요. 속초에서 서점을 운영하면서 읽은 책들에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긴 글이라서 독서 생활문이라는 콘셉트를 생각해봤어요.
‘책을 이야기하는 책’이 꾸준히 많이 나오고 있죠. 책을 소재로 글쓰는 일이 편하면서 또 부담스럽기도 했을 것 같아요.
부담스럽지는 않았는데 자유롭지는 않았어요. 제가 하고 있는 일에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고, 이 글이 공개되면 저의 어떤 모습들이 사람들에게 각인될 테니까요. 또 한편으로는 첫 책은 막 결혼했을 때 썼고, 두 번째 책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세 번째 책은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시기에 쓴 에세이라서요. 서점에서 일한 연차가 늘어난 만큼 아빠로서의 시간도 쌓여서 내면의 성장을 바라는 집념 같은 게 많이 담기지 않았나 싶어요.
책이 좋아서 서점 일을 시작했지만 막상 일에 치여 독자로서 책을 읽는 시간은 턱없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마찬가지예요. 사실 서점 일이라는 게 책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일이 굉장히 많아요. 독자로 책을 만나는 일이 어렵죠. 그렇기 때문에 이번 책을 쓰는 경험이 저에게도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 제 삶에서 풀고 싶은 문제나 고민을 생각해보면서 책을 고르고 또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흰 표지를 입은 책을 볼 때마다 ‘책 표지는 역시 흰색이야’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요즘은 화려한 컬러와 일러스트를 활용한 표지가 많은데,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는 굉장히 담백하고 소박합니다. 서체도 그렇고요. 오히려 튀는 느낌이라 자꾸 표지를 보게 됐습니다. 휘리 작가님의 일러스트도 글과 잘 어우러져서 텍스트에 더 집중하게 됐어요.
책을 디자인해주신 분이 제 글을 읽으셨는지는 모르지만, 저라는 사람에 어울리게 만들어 주셨다고 생각했어요.
책이 나오면 독자들의 리뷰를 읽는 즐거움에 빠지게 됩니다. 인상 깊은 리뷰를 보셨나요?
‘인증샷에 담긴 코닥 모멘트’라는 글이 있어요. 한 독자분이 그 글을 보고 써주신 리뷰가 있는데요.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동아서점에 문제집을 사러 많이 오셨다고 해요. 지금은 다른 지역에 사셔서 오랜만에 속초에 왔다가 친정 엄마, 딸아이와 서점을 방문했는데, 그때 토베 얀손의 『여름의 책』을 사셨대요. 뒤표지에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한 여름날의 애틋한 기억’이라는 카피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 책을 볼 때마다 동아서점에서 아이와 책을 고른 장면이 코닥 모먼트(Kodak Moment)처럼 기억날 것 같다고 하셨어요. 한 책의 챕터를 자신의 삶에 적용해 남겨주신 글이 감동적이었어요.
글을 쓰면서 상상한 독자들이 있나요?
추상적인 독자는 아니고 서점에서 한 번씩 마주쳤던 얼굴들을 떠올렸어요. 서점 주인과 손님의 관계로만 만나다 보니 할 수 없는 얘기도 많잖아요.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이야기를 책을 통해 건넸을 때,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읽으실까 그게 궁금했어요.
대표님이 쓰신 책을 읽고 부러 동아서점에 방문하는 분들도 많으시죠. 책을 보니 사전 약속도 없이 찾아와 인터뷰를 청한 매체도 있었고. 곤란한 상황들도 종종 벌어질 것 같아요.
찾아와 주시는 분들께는 정말 감사한 마음이고요. 다만 부침을 겪었을 때가 있긴 했어요. 워낙 소수의 인원이 빠듯하게 서점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게 놓인 상황들 덕분에 오히려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 놓인 건 제가 선택한 일의 결과이니까요. 누구에게 불만을 가질 수 없죠.
복잡한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3대째 서점을 운영하는 8년차 서점인이자 세 권의 책을 쓴 저자가 되셨어요. 언젠가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라는 상상을 하셨나요?
대학 시절에 막연한 꿈 같은 게 있긴 했는데 책이라는 형태를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문학 작품을 완성해서 선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거라 어릴 때 신춘문예에 투고하기도 했는데, 그게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결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40년 가까이 서점을 운영하셨지만, 이 서점을 제가 운영할 거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서점이 얼마나 힘들고 장사가 안되는 직업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요.
‘한 톨의 마음’이라는 글에서 유명 작가에게 편지를 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셨어요. “북토크를 해달라는 제안을 담은 장문의 편지”였는데 몇 달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고요.
사실 진짜 서운함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수치스러웠어요. 속초의 산불이 나서 경기가 침체되었다는 이야기가 그분과는 아무 연관이 없었거든요. 그분이 쓴 책 앞에서조차 고개를 들기 힘들 정도로 부끄러운 나날을 보냈어요.(웃음)
하루 12시간 서점에서 일하시죠. 원고도 서점에서 쓰셨나요?
처음에는 마감을 하고 밤에 서점에서 썼고요. 난방비나 냉방비를 아껴야 할 때는 집으로 갔어요. 업무에 타격이 없게 하려고 자투리 시간을 냈는데, 원고가 30% 정도 남았을 때는 도저히 짬이 안 나더라고요. 업무 중간중간에 가족의 양해를 구하고 글을 쓰기도 했어요. 그래서 굉장히 복잡한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이 책을 쓰는 일이 제가 서점 운영을 소홀히 하는 이유가 되면 안 되잖아요. 글을 쓰는 일이 내가 서점 일에 더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많이 팔고 싶은 책과 잘 팔릴 것 같은 책. 이 두 분류의 책들을 어떻게 비치하는가. 서점인들의 가장 큰 숙제인 것 같아요.
그렇죠. 표지가 보이도록 진열했는데도 잘 팔리지 않은 책을 그냥 서가에 꽂았는데 팔리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요. 책이 팔리는 계기는 너무 오묘해서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긴 해요. 아마 서점을 운영하는 많은 분들의 마음이 비슷할 것 같은데요. 내가 읽고 좋은 책을 진열해서 사람들에게 소개하면, 이 책이 잘 팔릴 거라는 기대를 품고 서점을 열거든요. 그런데 꼭 그렇지가 않아요. 책에 진은영 시인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라는 시를 소개했는데요. 시인은 말해요. “여보세요. 옷들이여. 맡기신 분들을 찾아 얼른 가세요.” 속초에서 자주 다니는 세탁소집 아저씨 아주머니의 일하시는 표정을 떠올리면서 저도 마음속으로 속삭여요. 책들아, 얼른 손님들을 찾아가라.(웃음)
양육자의 삶도 엿보여 더 즐겁게 책을 읽었어요. 소개한 책 중에 어른이 된 딸아이가 꼭 읽었으면 하는 작품이 있나요?
두 권이 떠오르는데요. 김현경 작가의 『사람, 장소, 환대』, 그리고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을 꼭 읽었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자라면서 타인과 계속 관계를 맺게 될 텐데요.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 장소, 환대』를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고, 또 부모는 자기 자식이 건강하길 바라잖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딸아이가 어릴 때부터 약간 아토피가 있어서 아내와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떻게 마음을 잘 다스려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실용적인 이야기도 담긴 책이라 추천하고 싶어요.
서점인은 세계 전체를 지키는 사람
얼마 전 ‘2022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포르투갈 렐루서점, 프랑스 셰익스피어앤컴퍼니 매니저와 대담을 하셨죠. 코로나 이후 유럽 서점들도 운영이 많이 어려워졌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보다 더 힘든 상황이 많았더라고요. 아무래도 봉쇄 자체를 겪은 나라도 있어서요. 아예 문을 열지 못하는 날도 많아서 셰익스피어앤컴퍼니는 매출이 80% 이상 감소해 직원들에게 실업 급여를 줘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고 해요. 또 렐루서점은 코로나19 락다운 조치에 맞서 정부에 책을 생활의 필수품으로 지정해달라는 서신을 보내고, 책을 픽업할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을 마련하면서까지 영업을 이어 나갔다고 해요. 정말 절박한 상황이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어요.
동아서점은 어땠나요?
유럽 사례와 비교해보면 송구할 정도로 큰 피해는 없었어요. 2020년 상반기까지 속초에 코로나 환자가 거의 없었거든요. 코로나 청정 지역으로 알려져서 2020년 여름에는 속초에 여행객들이 정말 많이 왔어요. 하지만 2020년 하반기부터 코로나 확진자가 늘면서 2021년에 타격이 있었어요.
올해는 좀 어떤가요? 거리 두기가 해제된 이후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나요?
그럴 거라고 순진하게 예상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황금연휴 기간에는 반짝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시지만, 전반적으로 작년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코로나 이전에 동네책방 붐이 있었잖아요. 그런 기운은 약간 식은 것 같고요. 사회 전체적으로 경기가 침체돼서 서점에 오시는 분들 자체가 줄어든 느낌도 들어요.
말씀하셨다시피 동네책방의 어떤 바람이 불었었고 많은 책방이 또 사라졌습니다. 지속 가능한 서점을 운영하기 위해 가장 노력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 답이 좀 엉뚱할 수 있는데요. 가장 노력하는 건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좋은 컨디션으로 일어나는 일이에요. 하루 이틀 뭔가를 선보여서 끝날 수 있는 직업이 아니고 자영업이고 가게이고 서점이니까요. 오랜 기간 서점을 운영하신 아버지께 비결을 배우려고 하는 편인데요. 서점을 리뉴얼하던 시절, 책을 정리하다 보면 금세 자정이 됐어요. 저는 더 일할 수 있는데 아버지께서는 이제 문을 닫고 내일 하자고 하셔서, 왜 이렇게 무책임하실까? 안 좋은 생각도 했는데 그게 연륜이었어요. 하루 이틀로 끝낼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매일 어떤 한계 앞에서 멈추면서도 또 다음 날이 오면 내가 추구하는 목표에 다다를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는 것, 그 소명의식을 배우게 됐어요.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강원도 속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동아서점’입니다. 동아서점을 방문하기 위해 속초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명소가 있나요?
속초 장사항이라고 작고 아늑한 해변이 있어요. 근처에 맛있는 식당과 카페도 있고요. 작년부터 주 6일로 근무하면서 하루를 쉬게 됐는데요. 휴일이지만 멀리 갈 수는 없어서 아이랑 아내랑 장사항을 거의 매주 갔던 것 같아요.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오시면 좋을 거예요.
동네 서점을 각별히 아끼는 독자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어린이, 청소년 손님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서점 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라.(웃음) 아이들과 서점에 오는 부모님들을 보면 “얘들아, 책 한 권씩 골라”라고 말하고 그냥 스마트폰을 보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요. 또, 아이가 사고 싶은 만화책을 부모님이 반대해서 못 사는 경우도 많고요. 그럴 때 저에게 말씀하시면 부모님을 잘 설득해드릴 수 있으니까요. 꼭 SOS를 청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책방 창업을 꿈꾸는 예비 서점인들에게도 한 말씀 해주세요.
제가 조언을 해드릴 수 있는 상황은 전혀 아니지만, 일단 책방을 열겠다고 마음을 먹으신 게 너무 대단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아버지가 운영하셨던 서점을 물려받은 거라 상황이 조금 달랐는데요.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서 그 용기를 응원해 드리고 싶고요. 서점도 자영업이라는 것을 꼭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고, 수천 평의 서점이 아닌 이상 주인이 큐레이터 역할을 하는 일이니까요. 매주 쏟아지는 신간들 중에 어떤 책을 소개할 것인가를 항상 고민한다는 것도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서점 지기는 자신이 일하는 서점뿐 아니라 세계 전체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손님들이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도록 그 책을 제일 먼저 고르는 사람이 서점 지기잖아요. 좋은 책을 소개함으로써 서점이라는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응원을 드리고 싶고 각자의 자리에서 굳건히 서점을 지켜주시기를 바라요.
*김영건 강원도 속초에 있는 작은 동네서점에서 태어났다. 1990년대 서점 호황기의 끝자락을 서점 창고에서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며 보냈고, 2000년대 이후 서점 불황기에는 서점 바깥에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보냈다.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했다. 고향을 떠난 지 9년 만에 속초에 돌아와 아버지의 서점을 잇고 있다. 1956년에 개점한 서점을 지금의 시간에 이식하고자 발버둥치지만, 녹슨 세월 앞에서 자주 고개를 떨군다. 다시 고개를 들면 수만 권의 책들이 일제히 바라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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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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