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멋진 책장을 마련했습니다. 경험 많은 목수가 질 좋은 원목을 사용해 정성스럽게 만든 책장이었습니다. 집에 오는 손님들 모두가 탐을 냈던 아름다운 책장이었습니다. 책장에는 남편과 제가 모아온 수백 권의 책이 가지런히 정리됐습니다. 책장을 둘러싸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책을 보는 풍경을 꿈꿨습니다. 우리 집 중심에 늘 이 책장을 놓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꿈은 꿈일 뿐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책장은 낭만이었고 육아는 현실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책장은 정리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방치됐습니다. 작가별로 혹은 출판사별로 때로는 단순하게 색깔별로 가지런히 정리돼 있던 책장이었는데, 이 책 저 책이 온통 뒤섞여 계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찾고 싶은 책을 찾는 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몇 번의 이사를 했습니다. 대형 텔레비전을 마련하고 디자인이 예쁜 냉장고를 사는 사이 책장의 자리는 좁아져만 갔습니다. 집의 중심에, 더 이상 책장이 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대신 대형 텔레비전이 중심을 차지했는데,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육아에 지친 우리 부부는 아이가 TV를 보는 시간만이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TV 프로그램이 시작됨과 동시에 찾아오는 집 안의 고요와 평화는 쉽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는 그만 TV를 치워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루 3시간 가까이 TV를 보는 아이를 보며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시점이었습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아이와 더 많이 대화하고 몸으로 놀아줘야겠다고 큰 다짐을 했고, 남편 역시 제 결정을 지지해 줬습니다. 매일 보던 텔레비전이 사라지자 아이는 어색했습니다. 남아도는 시간을 어찌해야 할지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힘든 건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별도리 없이 우리는 차츰 적응해 나갔는데 그때쯤 또 다른 강적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아이패드였습니다. 교육 영상을 보여주는 용도로 가끔씩만 사용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과 넷플릭스 콘텐츠를 아이패드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가 알게 된 겁니다. 아이패드는 TV보다 강력했습니다. 아이는 우리 부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며 자기만의 시간을 즐겼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저는 거실에서 일을 하고, 남편은 방에서 책을 보고, 아이는 자기 방에서 아이패드를 봅니다. 각자 자신만의 공간으로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림책 『우리 집 식탁이 사라졌어요!』의 주인공 바이올렛은 과거 가족을 모이게 해줬던 식탁을 그리워합니다. 가족의 모든 일상은 식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함께 장을 봤고, 요리를 했고, 식탁에 모여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했습니다. 그 모든 중심에 식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가족들은 자신만의 공간으로 흩어졌고, 그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즐기는 데 몰두했습니다. 아빠는 안락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을 봤고, 엄마는 계단에 앉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으며, 오빠는 자기 방에서 정체불명의 인터넷 게임을 했습니다. 바이올렛은 혼자 남아 덩그러니 식탁을 지켰습니다. 긴 고민 끝에 바이올렛은 식탁을 복원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멋진 식탁이 완성되면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함께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바이올렛은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탁자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식탁이 완성된 날, 바이올렛은 말합니다.
“다 함께 옹기종기 둘러앉게 될 곳, 다 함께 예전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곳, 다 함께 추억을 만들어갈 우리의 식탁이에요.”
얼마 전 저희 아이가 남편에게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아빠, 아빠는 왜 이렇게 책을 좋아해? 책은 왜 보는 거야?”
남편은 답하더군요.
“응. 아빠는 책을 보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새로운 사람은 아빠가 모르는 걸 엄청 많이 알고 있거든. 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아빠가 모르는 걸 새롭게 알게 되는 거지.”
아이는 신기하다는 듯 말하더군요.
“와! 엄청 멋있다. 나도 책 보고 싶어.”
“그래. 이제 범민이도 한글을 배우고 있으니까 조만간 책을 볼 수 있을 거야. 엄마랑 아빠랑 같이 탁자에 둘러앉아서 책 보자. 아빠가 재미있는 책 많이 사줄게.”
“응. 좋았어! 빨리 한글 공부해야지!”
저희 아이가 올해 여섯 살이니 아마 일곱 살이 되는 내년쯤에는 어느 정도 한글을 익히겠지요.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는 걸 좋아하는 아이의 성격을 봤을 때, 독서 역시 꽤나 즐길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아이가 책을 보고 싶다고 말했던 바로 그날 저는 한때 우리 집 한가운데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던 책장을 오랜만에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처음의 빛을 잃고 이제는 여기저기 상처에, 많이 낡기도 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책장이었습니다. 두서없이 놓여 있던 책들도 오랜만에 정리를 했습니다. 버릴 책과 보관할 책을 구분했고, 작가별로 출판사별로 새롭게 책을 배치했습니다. 걸레질을 마치고 비로소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오래된 책장이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던 우리 가족을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해주리라는 것을 말이지요. 마치 바이올렛의 가족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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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애(작가, 방송인)
방송을 하고 글을 쓰며 애TV그림책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