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시작된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새의 선물』이 누적 발행 100쇄를 기념해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소설가 은희경을 당대 인기 작가로 발돋움하게 한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인간 군상과 인생의 희비를 12살 소녀 진희의 시선으로 담아낸 소설이다. 지난 5월 30일, 『새의 선물』 개정판 출간을 기념해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은희경은 “대표작 『새의 선물』은 환한 빛이자 멀고도 긴 그림자였다”고 말했다.
“나의 이십칠 년 전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본 기분. 그것은 뭐랄까, 내 삶을 개정판으로 편집해보는 상상을 하는 가운데, 그것을 수행하는 건 결국 나라는 걸 깨치는 순례 같은 것이었다. 삶을 다르게 쓰고 편집했어도 나는 결국 이 자리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_『새의 선물』 개정판 437쪽, 작가의 말 중
과거와 현재의 내가 공동작업한 소설
『새의 선물』이 100쇄 기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소회가 어떤가?
27년에 걸쳐서 100쇄에 도달했다는 게 나에게는 각별한 의미다. 한 순간에 관심을 받은 작품이 아니라 1995년 당시, 내가 소설을 통해 던진 질문에 꾸준히 공감해 준 독자들이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새의 선물』은 나의 첫 책이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출발 지점도 떠올리게 된다.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에 당선되었을 때, 강태형 전 문학동네 대표님께서 “이 책이 10만 부 팔리면 차를 사주겠다”고 약속하자 자리에 함께 있던 모두가 크게 웃었다. 인기를 끌 만한 셀링포인트가 전혀 없는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그 책이 100쇄를 찍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새의 선물』이 작가 개인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나의 대표작은 여전히 『새의 선물』로 소개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좌절을 느꼈다. ‘나는 첫 책보다 더 잘 쓸 수 없는 작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 덕분에 안정적으로 작가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때로는 발밑에 동그라미가 그려진 기분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굉장한 ‘빛’이자 ‘그늘’이다. 어떤 날은 멀고도 환한 빛처럼 느껴졌다가 어떤 날에는 길고도 희미한 그림자 같다는 생각을 오래도록 했다.
이번 개정판 작업을 하면서 『새의 선물』을 처음으로 다시 읽어보았다. ‘지금이라면 이렇게 쓰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괴로운 동시에 현재의 시각으로 이 소설을 고칠 수 있어서 기뻤다. 『새의 선물』은 27년 전의 내가 던진 질문을 지금의 내가 승인한 작품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공동작업을 했기 때문에 누구에게 선물해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정판에서는 특히 어떤 부분이 달라졌나?
『새의 선물』은 1990년대에 집필했고,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책을 다시 읽으면서 그 사이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소설의 시대적 분위기를 어디까지 살리고, 어디까지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전체적인 구성과 내용에는 변화가 없지만, 세세한 단어와 표현 등을 주로 손질했다. 예를 들면 ‘앉은뱅이 책상’ ‘벙어리 장갑’ ‘곰보 아줌마’ 같은 편견과 비하의 의미가 담긴 단어들이다. 1990년대에는 이런 말들이 책으로 인쇄되어 나올 만큼 무심히 쓰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는 게 한편으로 다행스러웠다.
『새의 선물』은 절에서 완성한 작품이다. 2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듣고 싶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이제 내 인생은 바뀐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웃음). 어디서도 청탁이 없었고, 해가 지나 새로운 당선자가 나오면 나에게는 더 이상 기회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가까운 이로부터 장편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다. 당시 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였고,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친정 어머니가 소개해주신 절에 들어가 몇 달간 소설 쓰기에만 매달렸다.
『새의 선물』은 나의 답답한 인생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탄생한 소설이다. 내 삶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거슬러서 생각하다 보니 12살 무렵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쓴다면, 현재의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인생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서 지금의 나를 바라보겠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구상했다.
첫 장편소설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어렵지 않았다. 지금까지 쓴 모든 소설 중 가장 재미있고 빠르게 썼다. 처음 책을 출간했을 당시, 인터뷰에서 “소설 쓰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천진하게 말했을 만큼 집필이 즐거웠다. 돌아보니 그건 일생일대에 딱 한 번 찾아오는 ‘문운(文運)’이었다. 밤마다 산짐승 울음소리가 들리는 깊은 산 속의 외딴 절에서 지내면서도 무서운 줄을 몰랐다. 아마 간절함이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새의 선물』은 문운을 느끼게 한 책이다.
‘현재의 작가’이고 싶다
다수의 평론가가 ‘은희경의 소설은 젊다’고 말한다. 이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현재의 작가’라고 생각한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이야기를 포착하고,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내 소설이 젊게 느껴진다는 말을 들으면 고맙지만, 속으로 ‘그냥 당대의 작가라고 해주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웃음).
27년 전의 은희경이 오늘의 은희경을 바라본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것 같나?
문학동네 멤버십서비스 ‘북클럽문학동네’ 회원들을 위한 책 『우리가 사랑하는 은희경의 명단편』이 출간돼 나의 27년 작가 인생의 편린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내가 맨 처음 쓴 단편 「타인에게 말걸기」의 첫 구절이 이렇게 시작한다.
“등뒤에서 남에게 말을 걸 때 우리는 이름을 사용한다. 이름은 그래서 필요하다. 이름이라는 공용어가 없다면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타인 가운데 그 자신이 불렸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할 것이며, 더욱이 어떻게 그의 눈길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길 수 있을 것인가. (중략) 그런데 그녀는 좀 이상하다. 남을 부를 때 모든 사람이 하듯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이 부분을 다시 읽고 깜짝 놀랐다. 내가 가장 최근에 펴낸 단편집이 「장미의 이름은 장미」이기 때문이다. 처음 소설을 쓸 당시에 했던 이야기를 아직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문제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여기서 ‘이름’은 사회의 선입견이나 프레임일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사람을 대상화하는 양상이 변주되어 훨씬 더 심해진 것 같다. 물론 27년 전에 쓴 소설과 지금의 소설의 표현은 많이 다르다. 지금은 돌려 말할 줄도 알고, 때로는 감추는 법도 알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계가 어떻게 개인을 상처주는가’에 대한 생각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현재의 작가’로서 요즘 골몰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집필하고 있는 장편이 하나 있다. ‘몸’에 관한 이야기다. 몸은 인간이 가진 조건이자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다. 왜곡의 출발점이기도 하고, 죽음에 이르러 인간의 유한함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쓰고 있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용기’에 대한 단편소설들을 써보고 싶다. 젊은 작가 시절에 쓰고 싶었지만, 역량이 되지 않았고 용기가 없어서 쓰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이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은희경 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고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상처에 관심을 쏟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젊은 작가군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번역원 비상임이사(제4대, 임기3년), 문화관광부 한국문학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상임위원, 미국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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