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변희수 하사의 죽음을 기억하는가.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의 죽음, 국민적 공분을 샀던 n번방 사건, 온 나라를 충격과 슬픔에 빠트린 세월호 참사,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 간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어떠한가? 수많은 문제적 죽음과 사건 앞에서 사람들은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을 몇 번이고 읊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손쉽게 분노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잊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이 떠돌기 시작한다. “그것만 중요해?”, “왜 나쁜 것만 말해?”, “좀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안 될까?”, “너만 힘들어? 유난 떨지 마.”, “자기 업보지 뭐….”
집단적 망각과 외면으로 빚어진 이상한 정의 관념 속에서 우리 사회의 절망은 번번이 개인만의 문제로 굴절되었고, 나약하게 절망한 이들이 문제라는 낙인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민낯들』의 저자 오찬호는 우리에게는 절망을 직시할 의무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왜 지금 이 시점에, 열두 사건인가요? 사건을 되짚으며 독자들에게 건네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가요?
이 책에 등장하는 열두 사건은 ‘우리나라가 이만큼 좋아졌다!’는 관성적인 선언에 의문을 던집니다. “오케이! 좋아졌어. 그런데 이거 한번 보자고!”, 이런 각오로 집필을 했어요. 한 사회의 발전, 성장을 온전히 설명하기 위해 짚어야 할 지점을 빠트리지 않고 외면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프롤로그에서 “여기를 봐야 하는데, 저기를 보자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했습니다. 사회적 메시지에 대한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외면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정확히 말하면 ‘매우 의식적인 외면’일 것입니다. 무의식적이라면,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영역을 이해할 수 있는 특정한 기회나 자극이 왔을 때 외면하진 않을 테니까요. 자신의 무의식을 반추해 보는 거죠.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태도 자체를 ‘쓸데없는’, ‘무용한’, ‘효율적이지 못한’, ‘추상적인’ 등등으로 포장해 버립니다. 의식적으로 절망에 눈감는 태도가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살아가는 게 버겁기 때문인데, 문제는 그 외면이 사회의 공공성을 악화시켜 개인들의 삶을 더 버겁게 만든다는 거죠.
'각자도생'이라는 단어가 많이 눈에 들어옵니다. 각자도생의 철학은 우리 사회의 민낯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요?
각자도생은 지금까지 출간한 책에 빠짐없이 등장했죠. 그리고 ‘악순환의 선순환’이라는 말도 종종 사용하는데, 이는 각자도생이 ‘원인이 되어’ 사회를 엉망으로 만들고, 그것이 또 개인이 사회를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짐을 뜻해요. 대표적인 게 교육이죠. 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분위기가 과열될수록, ‘경쟁에 따른 결과는 차별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커지는 판국이니 말이죠.
‘다양한 의견’, 혹은 ‘표현의 자유’가 남용되는 상황을 경계한다고 했습니다. 혐오할 자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다양성이란 말로 감쌀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양성이란 건 ‘보편’을 확장시키기 위해, 지금껏 주변부에 머물러야 했던 영역을 포용하는 맥락을 지닙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경계를 허물자는 거죠. 그러니 ‘다양성’의 기치 아래 공론장에 등장하는 표현이 많을수록 그 끝에는 보편적 권리를 보장받는 이들이 늘어나는 훈훈한 결과가 등장해야겠죠. 하지만 차별과 혐오는 포용이 아니라 공동체로부터 무엇을 밀어내는 배제의 강력한 연료입니다. 다양한 의견의 결과가 사람을 ‘구분 짓는’ 것이라면, 이를 걱정해야 하는 게 당연하겠지요.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범죄자나 가해자를 악마화하는 해석을 경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분노의 감정이야 이해하지만, ‘악마화’가 빠르고 강할수록 ‘사회적인 이유’를 찾는 힘이 약해집니다. 그 별종조차도 ‘한국 사회’라는 토양 위에서 ‘한국 문화’라는 연료를 자양분 삼아 성장한 열매로 보아야만 사회의 중요성이 잘 드러나지요. 개인에게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사건 혹은 사람을 너무 쉽게 ‘이해하지 않으려고 할 때’ 사회의 의미가 쉽게 포기되는 걸 경계하자는 것이지요.
사회학적 글쓰기의 고충이 있다면요?
사회학적이라고 하면 주제도 딱딱하고 사례도 무겁죠. 읽는 사람이 유쾌하게 느껴질 수 없는 지점이 있어요. 가끔, 이 불편함을 ‘아주 무례하게’ 반사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강연장에서, 메일로 가끔 마주치는 게 저의 일이지요. 그러다 보면 저도 글로 먹고사는지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에 초점을 맞춰 나를 포장하고, 사회에 희망을 마구 주입하고도 싶죠. 하지만 그러면 사회학적 글쓰기라 할 수 없으니 또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독자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는지 짚어 주세요.
‘놀랄 만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다 우리네 일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 문제의 씨앗이 싹트고 있는 경우가 많죠. 사회문제는, 사회라는 큰 배가 갑자기 좌초된 게 아니라 목적지가 잘못 설정되어 맹렬히 전진한 결과죠. 저기 저 멀리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자신 사이에 연결된 실타래를 외면하지 않고 책을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찬호 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오랫동안 강의했다. 대구와 서울을 거쳐 현재는 제주의 시골에서 산다. 주로 글을 읽고 쓰며 가끔 육지로 나가 강연한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면서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괴롭히는지 추적하는 데 관심이 많다. 평범한 일상 속 차별과 혐오의 씨앗을 찾고 드러내는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민낯들』은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라는 체념과 “사회 탓만 하고 살 거야?”라는 무례함이 응축되었을 때,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반복되는지 역으로 따져 본 결과물이다. 매번 사람들 입에서 되풀이되는 ‘재발 방지’를 위해 정말로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불쏘시개가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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