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 오늘 주제는 ‘‘그럼에도, 희망을 발견하는 책”입니다. 최근에 희망한 적이 있을까요.
프랑소와 엄 : 최근에 희망을 엄청 하고 있고요. 사실 이 주제가 솔직히 너무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보자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골라왔죠.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룰루 밀러 저 / 정지인 역 | 곰출판
저는 책을 읽을 때 갖는 희망이 하나 있어요. 발견이 있는 책을 좋아하거든요. 이미 알고 있던 것을 확신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일 수도, 어떤 것을 깨닫는 것일 수도 있죠. 새로운 풍경이나 새로운 정서를 일깨워주는 책들도 저는 발견이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어떤 진리나 사회적으로 구축된 시스템, 역사적으로 내려온 관습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이 안에서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것에 안온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정해진 것, 주어진 것을 의심하는 데서 더 나은 삶에 대한 상상이 가능하다고 얘기해 준 책이 있어 가지고 왔습니다.
부제가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이 세 가지를 다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한 것 같아요. 과학을 통해서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거든요. 저는 어쩌면 이게 희망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지금 힘들고, 미래가 막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좀 다르게 생각해볼까, 하는 것 말이죠. 저자는 ‘피버디상’을 수상한 과학 전문 기자예요. 기자다 보니까 뭔가를 조사하고 탐사하는 데에는 도가 튼 분입니다. 그런 저자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생물학자의 삶을 탐색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예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19세기 생물학자, 분류학자예요. 물고기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았던 사람이고요. 그에게는 물고기라는 존재가 무한한 위안을 가져다주는 것이었고, 물고기가 사는 물이라는 세계는 평생 탐구해야 될 대상이자 그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우주에서 아직은 미지의 한 조각에 불과한 새로운 물고기를 한 마리 한 마리 잡아나가고, 새로운 이름을 하나씩 붙일 때마다 믿을 수 없는 도취적인 감정이 몰려왔다. 혀에 닿는 그 달콤한 꿀, 전능함에 대한 환상, 사랑스러운 질서의 감각. 이름이란 얼마나 좋은 위안인가.
저자가 조던의 삶을 따라가면서 지금까지 사회 안전망이라는 이름, 혹은 사람들이 구축해 놓은 여러 시스템들이 어떻게 보면 특정 존재들을 가려버렸다, 과학의 어떤 부분이 이것들을 가리면서 세계를 공고히 했던 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저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 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체계를 구축한다는 건 단순화시키는 거잖아요. 인류라고 할 때는 집합 같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다른가요. 마찬가지로 분류학, 생물학이라는 체계가 분명 학문적으로 수행한 역할이 있지만, 분류에만 빠져들면 각각의 개별성 자체가 무화될 수 있잖아요. 책은 그 점을 발견하면서 저자 자신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펼쳐져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아마 저한테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습니다.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김범석 저 | 흐름출판
책을 읽게 된 계기가 분명해요. 저자 분이 출연한 유튜브 방송을 보게 되면서예요. 요즘 의학 관련 영상을 종종 보거든요. 마침 저자 분에게 좋은 인상을 받아서 책까지 읽게 됐습니다. 제목으로 청취자 분들이 눈치를 채셨을 것 같은데요. 19년 차 종양내과 전문의 김범석 교수님이 병원에서 만난 암 환자와 그의 곁을 지킨 사람들, 그리고 의료 시스템에 대해 쓴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연명의료 결정법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요. 말기 암 환자가 결혼식을 치르게 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교수님 글이 되게 자연스러워요. 너무 따뜻하지도 냉정하지도 않은, 적정한 온도의 글이거든요. 정수기 물 같은 글이었어요.
오늘 주제가 희망인데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을 가지고 왔잖아요. 도전 의식을 갖고, 이 책에서도 희망을 한번 찾아보자는 마음이었고요. 읽다가 제일 좋았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요구르트 아저씨’라는 제목의 글이에요. 교수님 진료실에는 석 달에 한 번 오는 환자가 계시는데요. 외래 진료들 올 때마다 늘 요구르트를 두 병을 사가지고 오신대요. 근데 이분은 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늘 얼굴이 밝으셨어요. 하루는 이분이 교수님께 이런 이야기를 하셨대요. “선생님도 입 꼬리 좀 올리고 웃으면서 사세요. 너무 심각한 얼굴을 하면 환자들이 무서워합니다. 아이고 제가 오늘은 말이 좀 많았네요. 오늘도 힘내세요.” 사실 환자가 힘들어하는데 그 앞에서 밝기만 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요구르트 아저씨를 만날 때면 기분이 좋아지고, 진료실 분위기가 확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쓰신 이야기가 교수님이 봐온 극단적 장기 생존 환자들은 한결같이 긍정적이었다는 말이었어요. 사실 의사도 과학을 다루잖아요. 그러면서 긍정적이어야 오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 않죠. 그런데 포인트가 정말 이거였어요. 한결 같은 긍정성. 이것은 결과에 대한 긍정성을 말하는 게 아니고요. 과정과 태도에 대한 긍정성이라고 교수님은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니까 좋은 결과를 보장해 주면 열심히 치료를 받겠다는 식의 긍정이 아니라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내가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 그 자체가 긍정이라고 말해요.
책을 읽으면서 결론적으로는 상투적이긴 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보자, 정말 그게 나의 삶과 나의 건강 그 모든 것들을 바꿀 수도 있지 않나, 하는 것이었어요. 낙관을 얘기하는 책도 아니고, 긍정적으로 살라는 말을 하는 책도 아니고, 의사의 마음을 이해해달라는 것도 아닌데요. 읽으면서 그냥 이게 현실이지만 이 안에서도 긍정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국승민, 김다은, 김은지, 정한울 저 | 시사IN북(시사인북)
작년 10월에 ‘지금 읽으면 더 좋은 책’ 주제로 얘기 나눴을 때 프랑소와 엄 님께서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라는 책 소개하셨었잖아요. 그 책이 나왔던 시사인 ‘저널리즘 북 시리즈’로 출간된 책이거든요. <시사인>에서 2021년 7월 30일부터 8월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의 남녀 2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이 책이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출간됐거든요. 대선 결과를 알고 난 뒤에 읽으니까 의미가 새롭게 생기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오늘 꼭 소개하고 싶은 한 대목을 꼽아봤어요. 책에 소개된 설문조사 가운데에서 ‘지지하는 정치 세력’을 묻는 항목이 있어요. 항목은 이렇습니다. 1번, 법과 사회질서 확립 우선. 2번, 정부 개입의 최소화 우선. 3번, 경제적 재분배 우선. 4번, 사회적 소수자가 겪는 차별 금지와 다양성 우선. 설명하자면 순서대로 올드 라이트, 뉴 라이트, 올드 레프트, 뉴 레프트로 이해할 수 있을 텐데요. 결과가 되게 흥미로워요. 전체 응답자의 1위를 차지한 건 1번이었어요. 법과 사회질서 확립 우선이죠. 그런데 20대 여성만은 눈에 띄게 4번, 사회적 소수자가 겪는 차별 금지와 다양성 우선을 최우선으로 여긴 거죠. 이들은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을 문제로 생각하고, 사회적 소수자의 경험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려는 경향이 강했다는 거예요. 이것을 다른 세대, 다른 성별과 비교해 뚜렷한 수치로 보니까 더욱 놀랍더라고요.
그래서 20대 여성이 희망이다, 이런 얘기만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요. 다만 이 책에 소개된 설문조사에서 거의 대부분 20대 여성만 눈에 띄게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목소리가 있더라고요. 그것이 큰 의미로 다가왔다는 얘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민주주의라는 게 다수결이랑 같은 말은 아닌 것 같아요. 다양한 목소리 또 작은 목소리, 이런 것들이 다 논의의 선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의미일 텐데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지금 언론이나 사회적 담론들이 어떤 특정한 목소리에만 더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현재 어떤 목소리만 과대 대표되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요. 이렇게 다양한 목소리들을 우리가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희망적으로 느껴져서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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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