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품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다. 봄에는 반짝이며 강물에 반사되는 햇살이 눈부신 그곳에서 여름엔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고, 매년 가을이면 가족들과 손잡고 우리 동네 축제를 구경 갔었다. 겨울에도 어쩐지 혼자 강가의 벤치에 앉아 있으면 추운 줄도 모르고 마냥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어.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아도,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풍경이 주는 어떤 위안이 있었던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태어나 자란 곳을 떠나오는 일은 누군가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마침내 갈망했던 헤어짐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곳을 등진 채, 처음으로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난 그날 나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어느 한 구석에 설렘이나 두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담담히 한 발자국을 나아갔을 뿐이었다. 그곳에 어떤 계절이 펼쳐지든 이젠 제 힘으로 내 자리를 찾아야 했으니까. 그건 설렘이나 두려움에 앞서 어떤 책임감에 가까웠다.
버스로 3시간 40분, 눈비가 내린다거나 명절에 차가 막힐 땐 5시간 반도 넘게 걸리던 그 거리. 한겨울 그칠 줄 모르고 펑펑 내려 쌓이던 눈이나, 한여름 바람도 없이 빌딩 사이를 내리쬐던 도심의 열기 같이, 두 공간은 지나온 10여 년의 시간만큼이나 다르고 또 달랐다. 빼곡히 채워진 투 두 리스트처럼 빈 공간 없이 빽빽하게 자리한 사람과 공간들. 낮은 건물과 여유로운 거리는 이제 내 것이 아닌 마냥, 숨 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일상은 어느새 훌쩍 뛰어넘어버린 그 거리만큼 이젠 새롭게 익숙해졌다. 하지만 불현듯 갑자기 찾아오는 어떤 생각에 사로잡힐 때면 이곳을 벗어나지 않고는 도무지 버틸 수 없게 된다. 바다가 보고 싶다.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바다가 보고 싶은 날이다.
어째서 강이 아닌 바다였을까. 거의 평생을 강이 있는 도시에서 살았는데.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떠오르는 풍경은 언제나 가까이 있던 강가가 아닌 낯선 도시의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닷가다. 태풍의 전조처럼 하얀 물거품이 이는 파도나, 하늘과 경계를 알 수 없어 더 깊고 고요한 밤바다에서 홀로 철썩이는 파도소리 같이. 주기적으로 훌쩍, 바다를 찾아 떠나면서도 왜 하필 바다여야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곳에서 가만히 앉아 거친 파도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조금씩 응어리진 무언가가 풀려나는 기분이 들었다. 파도가 모래알을 씻어내는 것처럼, 내 마음도 하얗게 비워내주는 것만 같았다.
이수지 작가의 『파도야 놀자』를 만난 건, 그렇게 또 어느 겨울날 부산 해운대를 찾은 날이었다. 열 번도 넘게 부산을 다녀왔지만 어쩐지 그간 한 번도 해운대를 가본 적이 없어, 그날만큼은 계획을 세워 해운대 바다를 보고 근처 그림책방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센 파도 앞에 우뚝 선 한 소녀의 그림을 만났다. 아무 글자도 없이 그림만으로 펼쳐진 파도와 여자아이. 처음엔 조심스럽게, 그다음엔 거침없이 다가갔다가, 생각보다 높은 파도에 겁에 질려 도망쳐 나온 아이는 결국 자신의 경계 안으로 푸른 파도를 들여놓고 만다. 그리곤 이내 파도와 하나 되어 웃는다.
정말 운명과도 같았다고 생각했다. 처음 해운대를 찾은 날 발견한 책이 『파도야 놀자』라니! 문장 하나 없는 그 책을 그날 하루에만 몇 번이고 펼쳐 봤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제야 알아차렸다. 강이나 바다가 아니라, 어쩌면 파도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익숙한 풍경이 주는 위안이 아니라, 거침없이 경계를 침범해 마침내 무너뜨리고 마는 파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저 밖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라, 경계 안으로 들어와 씻어내주는 존재가. 그리하여 나와 하나 되어 숨 쉴 틈을 주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였다.
강을 품은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지금도 여전히 종종 바다가 보고 싶은 날을 맞는다. 하지만 도저히 바다를 볼 여유가 없는 날이면 그림책을 펼친다. 그곳에서 나는 소녀와 함께 파도와 한바탕 놀고, 다시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어. 그래도 버티기 힘든 날이면 역시 파도를 직접 맞이하러 가야겠지. 그리고 잠시나마 책임감과 불안을 모두 털어버리고, 크게 숨을 내어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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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