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출판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됐을 때 주변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역시 “직원 할인 없어?”였다. 하지만 지엄하신 도서정가제 아래 모든 독자들은 차별 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즉 그런 거 없다고 눈물을 머금고 대답하고 나면 돌아오는 두 번째 질문은 이거다. “서점에서 일하면 책 많이 읽어?” 분명 책을 좋아해 서점에서 일하게 됐고, 평균적인 한국인들에 비해 많은 책을 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걸 다 읽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쯤 되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대화 주제를 돌리기 마련이다. 즉 서점 MD라도 딱 봐도 읽기 어려운 책은 도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겐 그 대표주자가 장기전망을 담은 경제경영서이다. 거대담론을 이야기하는 책은 흥미롭지만 재미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래도 때로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서, 미래의 불안을 잠재우고 싶어서 도전해 본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모두 거대한 변화와 관련된 책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어느덧 2년,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화했고 때론 그 속도 자체가 누군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사회, 비즈니스까지 팬데믹이 미치는 영향의 범위는 컸고, 이제는 파도에 그저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기 위해 그 변화의 방향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스콧 갤러웨이의 『거대한 가속』은 10년씩 당겨진 이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플랫폼 비즈니스, 고등교육, 공공 시스템의 세 가지 축을 통해 분석하는 책으로, 이미 시작된 대변혁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시사점을 제시한다. 특히 전작 『플랫폼 제국의 미래』에 이어 빅테크 기업이 팬데믹 속에서 얻고 있는 이익과 시장 교란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팬데믹 이후의 비즈니스 판도에 대해 냉철하게 진단하며, 공공 시스템의 재정립, 개인과 국가의 새로운 연대를 강조한다.
팬데믹 이후 우리 앞에 놓인 또 하나의 화제가 있다면 바로 메타버스일 것이다. 메타버스는 몰라도 한때 포켓몬고로 열심히 피카츄를 잡았고, 에스파가 4인조가 아닌 8인조 그룹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대체 메타버스가 뭐길래 이렇게 난리인지는 막연하기만 하다. 기회의 땅은 이제 지구가 아닌 메타버스에 있을까? 『메타버스 새로운 기회』는 바로 그렇다고 답한다. 이 책은 “메타버스, 그거 가상현실 게임 같은 거 아냐?”라고 묻는 우리에게 카카오톡에서 배달 앱까지 일상으로 침투한 메타버스의 현재를 보여주고 메타버스 산업의 미래와 핵심 분야를 진단하는 안내서 역할을 한다. 투자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는 앞으로 성장할 메타버스 산업을 짚어주는 인사이트가,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메타버스라는 변화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내다볼 수 있는 힌트가 되어줄 것이다.
사실 팬데믹은 세상을 바꿨다기보다 숨어 있던 문제를 빠르게, 피할 수 없는 커다란 흐름으로 드러낸 것에 가깝다. 플랫폼 기업의 빠른 성장은 그 뒤에 따라오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불안정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원격수업과 재택근무는 지리적 제약을 없애는 듯했으나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교육 그 자체의 가치와 산업의 지향점에 대해 더욱 고민하게 했다. 그 사이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으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달라진 것은 결국 개인이다. 변화 자체는 막을 수 없겠지만, 나라는 한 개인이 이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이냐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니까. 막연한 변화는 두렵고 서늘하다. 하지만 변화는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기회와 도전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변화를 마주 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용기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역시 읽기 쉬운 책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럴 땐 관심 있는 분야만 골라서 발췌독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잘 넘어가지 않는 어려운 대목을 하루 종일 붙잡고 있는다고 쉬워지진 않으니까. 그러다 언젠가 돌아와 다시 잘 읽히는 날도 있기 마련이니까, 우선은 용기를 내자.
이번 달에는 북클럽에서 19권의 책을 담았고 그중 5권을 읽었다. 왜 다 읽지도 못할 거 뻔히 알면서 내 서재에 담는 행위를 멈출 수 없는 걸까. 이것도 일정의 중독 아닐까 싶지만, 그래 뭐 어떠랴. 그래도 죽기 전엔 다 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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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