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리추얼,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
이 책은 음악이라는 소재를 통해 리추얼은 무엇이고, 어떻게 찾고 유지하고 있는지,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에요.
글ㆍ사진 이혜민(크리에이터)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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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차분하게 하기 위해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 일주일에 한 번 나를 위한 꽃을 사 오는 것. 나를 위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두고, 상황에 맞는 음악을 듣는 것.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것. 정신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리추얼은 나만의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리추얼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장치이자 삶의 작은 에너지원이다. 어떤 리추얼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내 일상의 모양이 만들어진다. 나를 위한 리추얼을 만드는 것은 내 삶에 이벤트를 불러오는 일이자, 사소한 즐거움을 늘려가는 일이다.”

2022년이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2월도 끝나가고 있네요. 신년에 계획한 일들은 잘 실천하고 계신가요? 흠칫 놀란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매일 아침 책을 읽을 거야. 운동을 할 거야. 한 시간 일찍 일어나 봐야지. 요즘산책 첫 방송 들으시고 일주일에 한 번 채식 해보겠다고 다짐하신 분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 잘 지켜지고 있나요? 망했다고요? 괜찮아요. 3월이야말로 신학기가 시작되는 진짜 새해랍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요. 

그나저나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어떤 습관을 만들고 싶어할까요? 하나씩만 놓고 보면 사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도전!’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 어려워하고, 자꾸 실패하는 이유는 또 뭘까요? 우리가 이렇게 작은 습관 하나 가져보겠다고 애를 쓰는 이유는 아마도 정신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이렇게라도 나를 돌보는 시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 아닐까요? 

특히 요즘처럼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고, 일희일비할 일이 커지는 일상일 수록 흔들리지 않게 잡아줄 나만의 장치 하나쯤은 필요한 것 같아요. 오늘은 ‘리추얼’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게요.



『오늘도 리추얼 : 음악,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이라는 책은 제목에서 예상하시는 것처럼 음악을 리추얼로 삼고 살아가는 한 친구의 이야기인데요. 이 책은 음악이라는 소재를 통해 리추얼은 무엇이고, 어떻게 찾고 유지하고 있는지,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에요. 저는 이 음악이라는 자리에 각자가 생각하는 다양한 자신만의 리추얼을 대입해볼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리추얼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에 대해서도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중 또 하나는 저자 정혜윤 님의 재미난 이력 때문이에요. 혜윤님도 만만치 않은 n잡러입니다. 우선 지금은 프리랜서 마케터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 전까지 퇴사를 여섯 번이나 했다고 해요. 취미도 많고 꿈도 많은 사람이라 예전에는 그리 좋은 시선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스스로 불안해하기도 했지만, 어느 날 『모든 것이 되는 법』이란 책을 보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다능인’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돼요. 현재는 자신처럼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은 다능인들의 커뮤니티 ‘사이드’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1회 출근하는 회사도 다니면서, 또 다양한 팀들과 협업해서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고요. 그런 걸 보면서, 저도 비슷한 입장이니까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이렇게 관심사도 많고 다양한 일을 하는데, 어떻게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잘 잡고 있을까? n잡러의 삶이라는 게 일상이 무너지기 쉽잖아요. 저도 일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또 좋아하는 일을 다양하게 하려다 보니까 오히려 내가 만든 그 일에 치여서 허덕일 때도 많거든요. 혜윤님은 독립해서 살게 되면서 매일 혹은 주기적으로 하는 아주 사소한 자신만의 루틴들이 생겼는데, 그것들이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장치였다고 말해요. 자칫하면 흐트러질 수도 있는 일상을, 리추얼이 시스템처럼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는 거죠.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한잔 마시고 이불 정리를 한 다음에,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는 게 아침 루틴인데요. 그와 더불어서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자신이 좋아서 하는 취미도 리추얼이라고 이야기해요. 식물을 키우는 일이라든가, 일주일에 한 번 나를 위해 꽃을 사서 꽂아 놓는 일, 피아노를 연주하고, 칵테일을 만드는 취미도 리추얼이고요. 요가나 달리기도 포함돼요. 매일 하지 않아도 내 삶에 내가 만들어 낸 반복적인 행위라면 무엇이든 리추얼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역시 다능인 답게 리추얼도 참 다양하죠? 이런 사소한 일들이 자신이 길을 잃지 않게 마음을 보살피도록 도와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원동력이 되어준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에너지를 쓰는 게 아니라 받는 시간이라는 거죠. 

이 책은 그런 혜윤님의 다양한 리추얼 중에서도 음악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묶어 낸 책이에요. 알고 보니 ‘내가 나를 만난 그 모든 시간'에 항상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그냥 좋아해서 내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던 음악이 나 자신을 알아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이 책을 쓰게 된 거죠. 실제로 이 책에는 음악이 자신의 리추얼이 되기까지 경험한 다양한 일화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어요. 혜윤님은 오래 전부터 기록해 둔 글을 모으고 다시 꺼내 보면서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요. 그 글을 쓸 때도 언제나 음악이 흐르고 있었겠죠? 책 속에는 당시 들었던 음악들이 곳곳에 QR코드로 들어가 있어서 함께 들으면서 그 분위기에 흠뻑 취해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리추얼,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멀리서 찾을 수도 있지만 언제나 힌트는 가까이 있습니다. 혜윤님은 이미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의식적으로, 주기적으로 하면 리추얼이 될 수 있다고 말해요. 혜윤님의 리추얼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음악이었어요. 처음엔 자신도 음악이 자신의 리추얼이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음악에 관한 온라인 리추얼 프로그램 운영해달라는 제안을 받으면서 음악이 항상 자신의 일상 한편에 자리하고 있던 리추얼이란 사실을 인지했다고 해요.

혜윤님이 제안하는 음악 리추얼 방법은 이렇습니다. 첫 번째,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고 이불을 정리한다. 두 번째, 테마나 무드에 맞춰 내가 원하는 음악을 찾아 듣는다. 세 번째, 음악을 튼 채 자유롭게 글을 써본다. 네 번째, 음악과 글을 채팅창에 공유한다. 굉장히 간단하죠? 리추얼이라는 게 엄청 특별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에요. 이불 정리와 물 마시기는 정말 쉽고 1분도 걸리지 않는 일이지만 작은 성취감을 갖게 하고 나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만족감을 동력 삼아 다른 리추얼까지 잘 이어서 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라서 꼭 한다고 해요. 이불 정리는 우습게 볼 게 아니에요.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을 보면 각계각층의 성공한 사람들이 하는 ‘승리하는 아침을 만드는 5가지 의식’이라는 대목이 나와요. 하루의 첫 60분을 어떻게 보냈느냐가 그 이후의 12시간 이상을 결정한다는 거예요. 그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불 정리입니다. 핵심은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를 했느냐가 아니고, ‘내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일'이라는 데 있어요. 세상에는 나를 간섭하고 기분 나쁘게 만드는 일들 투성이지만 내 힘으로 제어할 수 있는 일이 적어도 한 가지는 있다는 게 삶에 생각보다 큰 위안과 도움을 준다고 해요. 아무리 형편 없는 하루를 보냈더라도, 아무리 슬픈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불 정리는 할 수 있잖아요.

혜윤님의 리추얼은 이런 논리와 맞아떨어지는 거 같았어요. 제가 또 좋다고 생각했던 건 두 번째 순서인 음악을 듣는 시간입니다. 음악을 배경에 깔아두고 다른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 오늘의 기분이나 상태에 맞는 음악을 직접 선택한 뒤 집중해서 들어보는 시간을 만든다는 점이에요. 그 시간만큼은 여행을 떠나온 거라고 상상해보라 말하는 대목이 저는 좋더라고요. 오늘 하루도 어김없이 바쁘고 정신 없을 테지만, 지금 내가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오롯이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란 것을 인지하라는 거죠. 가사에 신경을 써도 좋고, 명상하듯 떠다니는 생각을 관찰해도 좋아요. 그렇게 집중해서 음악을 듣는 시간을 통해 내 기억과 감정에 집중해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루틴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규칙적으로 지키면서 뭔가를 하는 걸 힘들어하고 시간이 정해져 있으면 답답해하는 타입이라 회사에 다닐 때 출근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서 프리 워커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일부러 규칙을 만들지 않았어요. 일하고 싶을 때 시작해서 하고 싶은 만큼 일했죠. 그러면 보통 일 안하고 놀 것 같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저는 하루 종일 일만 하더라고요.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는 거죠. 혼자서 일할 때는 점심 시간도 자꾸 미루게 되고 물도 잘 안 마시게 돼요. 그렇게 한꺼번에 에너지를 확 쏟고 쉴 때는 완전히 널브러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식이었어요. 

그렇게 몇 년을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정말 몸과 마음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더라고요. 내가 만든 내 일인데도 번 아웃이 온 거죠. 그때부터 일부러 명상을 배우러 다니기도 하고, 달리기도 해보고, 물 마시기 챌린지를 해보기도 했는데. 번번히 실패하긴 했지만 나를 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은 어느정도 루틴이 만들어졌어요. 

비슷한 주제로 저희 채널에서도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크리에이터 이연 님을 만나서 얻은 힌트가 하나 있는데, 혼자 일하는 사람은 일하는 나를 자신에게 소속된 대표님이라고 생각하고 극진히 대하라는 거였어요. 스스로 불편한 게 없는지 살피면서 아침에 잘 일어날 수 있게 해도 보여드리고, 추위 잘 타면 옷도 챙겨드리고 하면서요. 그래서 지금은 그렇게 하려는 편이에요. 요즘에는 오전에 일찍 일어나서 되도록 저에게 중요한 일들을 먼저 하려고 해요. 눈 뜨자마자 속이 좋지 않은 저에게 양배추 즙을 대령하고 요가와 스트레칭을 30분 정도 해주고요. 그 다음부터 글을 쓴다거나, 내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해요. 그리고 10시가 넘어가면 나를 방해하는 연락과 뭘 해달라는 요청을 처리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저녁에는 좀 느슨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요. 

스스로 평생 아침에 잘 못 일어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일어나보니까 아침에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저녁에는 오히려 한 시간이면 할 일을 세 시간씩 붙잡고 있는데 말이죠. 그러다보니 점점 기상시간이 빨라지고 있어요. 생각해보니 저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싫었던 게 아니라 출근하러 나가는 게 싫었던 거더라고요. 집에서 일하는 장점을 프리 워커 6년차가 돼서야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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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크리에이터)

밀레니얼 인터뷰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을 운영하며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 등을 썼다. 나다운 삶의 선택지를 탐구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