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루 중 누릴 수 있는 모든 사치는 새벽 다섯 시부터 아홉 시 사이에 이뤄진다. 고요한 시간에 일어나 차를 끓이고 글을 쓰고, 해 뜰 무렵에는 반려인과 반려견과 함께 호숫가를 걷는다. 오늘은 호숫가에서 오리가 나는 것을 봤다. 꽤 높게 날아올랐다. 나와 마르땅(반려인)은 그걸 보고 환호했고, 이안이(반려견)는 덩달아 신나서 내 손바닥을 핥았다. 오리가 날았고, 손바닥에 축축한 코가 닿았다. 좋은 아침이다.
아침의 사치가 끝나면 일을 시작한다. 원서를 펼치고 문장을 옮긴다. 뜨개질 같다. 풀었다가 엮었다가. 스웨터를 떠야 하는데 아직 소매도 안 나와서 끙끙 앓는 시간은 힘들지만, 삶을 흔드는 커다란 어려움은 없다. 오늘은 어제와 같고, 어제는 그제와 같다. 데버라 레비처럼 가정집이라는 동화의 벽지를 찢거나, 아니 에르노처럼 단순한 열정이 찾아오는 일은 없다(앞으로도 없으면 한다). 글의 소재를 찾기 힘든 삶이 아닌가 싶다.
번역하는 책의 무게에 눌리기도 한다. 에르베 기베르나 클라리스 리스펙토르 같은 예술가들 앞에서 내 삶은 얼마나 아기자기한지. 요즘은 자꾸 의심이 생긴다. 이 삶은 기록될 가치가 있을까….
산책 중에 마르땅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은데, 쓰고 싶다는 욕망만 남고, 할 말이 모두 고갈되면 어떻게 하지?”
마르땅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럴 리 없어. 네가 삶을 멈춘다면 모를까. 사는 동안 삶을 계속 쓰면 되잖아.”
“쓸데없는 말을 할 수는 없잖아. 쓸 만한 가치가 있어야지….”
“그 가치를 찾는 일이 네가 할 일 아니야?”
마르땅의 말에 소재가 번뜩 떠올랐다거나 글이 술술 풀린 것은 아니지만, 눈앞이 조금 환해지긴 했다. 사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 내가 그것 때문에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오래전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번역을 하고 싶다는 내게 아빠는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했다. ‘쓸데없다’라는 말, 자라면서 줄곧 들었던 말이다. 걱정하는 마음이었겠지만, 그 말이 줄곧 나를 괴롭혔다. 무언가를 하는 게 두렵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쓸데없는 짓이 될까 봐… 실패의 경험들이 더해지면서 더욱 커진 내 안의 목소리다. 처음 글을 썼을 때, 번역을 시작했을 때, 내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스스로 벽처럼 쌓은 그 목소리를 뚫고 나오는 일이었고, 지금도 나는 그 벽치기에 시달린다. 그러니 내가 어떤 문장을 쓴다면, 감히 어떤 이의 말을 옮긴다면, 그것은 그 목소리를 뚫고 나온 작은 몸짓일 것이다.
내 생에 첫 번째 벽치기는 희곡 번역이었다. 글도 썼다. 첫 고료를 받고 눈앞이 캄캄했다. 아빠한테는 다시 취업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너무 적은 고료를 받고, 역시 내가 할 수 없는 일인가 고민하던 날, 마르땅이 밥을 사줬다. 소박했지만 아름다운 식당이었다. 우리는 와인을 주문했고, 그가 내 잔에 루비 같은 와인을 따라주며 말했다.
“너의 작은 성공을 축하해.”
나의 작은 성공, 그 말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책상에 앉아 무엇을 쓸까 고민하는 동안에는 나를 통과한 모든 일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첫 문장을 썼던 순간, 새벽에 마시는 차의 온기, 산책길의 바람. 그러다 ‘느리게’ 버튼을 누른 것처럼 어떤 장면을 천천히 다시 살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러니까 오리가 날던 장면 같은 것.
오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멀리 훨훨 날아간 것은 아니지만, 갈대숲에서 우아하게 날아올라 호수에 착지했다. 우리는 오리의 비상을 축하했다. 얼마나 높게, 멀리 나느냐는 각자의 서식지와 생활 습관의 차이일 뿐이다. 오리는 날았고, 그것은 오리의 작은 성공이었다.
오리가 나는 것을 바라보며 오래전에 축하했던 나의 작은 성공을 떠올렸다. 그때 그 축배가 없었더라면, 나는 여전히 목소리의 벽에 갇혀 살지 않았을까. 그러니 축하할 일이다. 벽에 뚫린 작은 구멍도, 오리의 비상도.
이 글은 2022년 1월, 오리가 날아올랐던 사건과 내 안의 목소리에 대한 기록이자, 작은 성공의 발견을 향한 약속이다. 아니 에르노는 글을 쓰는 것은 시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고, 지금 나의 시선은 작지만 분명한 날갯짓을 향한다.
내 안의 낡은 목소리를 지우고 새로운 목소리를 갖기 위해서다.
오리를 닮은 나와 당신을 위해서다.
*신유진 파리의 오래된 극장을 돌아다니며 언어를 배웠다. 산문집 『열다섯 번의 낮』, 『열다섯 번의 밤』,『몽 카페』를 썼고, 아니 에르노의 소설 등을 번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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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진(작가, 번역가)
파리의 오래된 극장을 돌아다니며 언어를 배웠다. 산문집 『열다섯 번의 낮』, 『열다섯 번의 밤』,『몽 카페』를 썼고, 아니 에르노의 소설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