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 다채로운 장르가 어우러진 영화음악
루드비히 고란손의 <블랙 팬서> 영화음악은 그러한 최근의 경향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적으로 적합하고, 기악 구성이 매혹적이며, 때론 흥미진진하고, 감성적으로 필요한 때와 부분을 알며, 주제음악을 지능적으로 구성해낼 줄 아는 재능의 소유자다.
글ㆍ사진 이즘
202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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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팬서>(Black Panther)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의 18번째 작품,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에서 처음으로 존재를 알린 후, 마침내 캐릭터의 기원적인 이야기를 스크린에 펼쳐냈다. 캐릭터 그 자체로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한 셈. 가상의 아프리카 국가인 와칸다가 주요 무대다. 와칸다는 '메탈 비브라늄'이라는 가공할 외계의 금속을 소장한 덕분에 지구상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문명국이지만, 제3세계 빈국인 척, 그 놀라운 힘의 정체를 감추고 있다.

채드윅 보스만(Chadwick Boseman)이 와칸다의 뉴 킹 트찰라(T'Challa) 역으로 나온다. 그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부친의 대를 이어 블랙 팬서의 법통을 연계할 주인공. 새로운 국왕으로 나라를 이끌기 위해 귀국한 트찰라는 마이클 비. 조던(Michael B. Jordan)의 에릭 킬몽거의 위협에 직면한다. 킬몽거는 미국에서 용병으로 살아온 트찰라의 사촌이다. 왕권을 둘러싼 둘의 갈등과 적대로 내전이 벌어지지만, 형제였던 선친 때부터 이어온 악연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왕국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한다. 영화 “흑표범”(Black Panther)의 근간에는 특히, 1966년 창시된 미국의 '흑표당'의 역사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중력이 남다르다.

마이클 비. 조던(킬몽거 분)이 주연한 <크리드>(Creed)의 감독 라이언 쿠글러(Ryan Coogler)가 연출하고, <노예 12년>(12 Years a Slave)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탄 루피타 뇽오(Lupita Nyongo), <겟 아웃>(Get Out)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다니엘 칼루야(Daniel Kaluuya), <라스트 킹>(The Last King of Scotland)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포레스트 휘태커(Forest Whitaker),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What's Love Got To Do With It)의 티나 터너(Tina Turner)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된 안젤라 바셋(Angela Bassett)과 같은 명배우들의 출연도 이목을 집중하게 하는 대목. 공인된 출연진으로 내구성을 확보한 <흑표범>은 너무 과도하게 심각하지 않으면서, 미국 주류영화로서 그 판도를 바꿀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인 모양새를 갖췄다.

주연으로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캐릭터를 이전보다 더욱 강력하고 완전히 다르게 실현했고, 고도로 발달한 문화와 역사는 물론, 다른 등장인물들의 독자적 성향도 강하게 나타난다. <블랙 팬서>는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슈퍼 히어로 액션'영화일 뿐만 아니라, 무기 거래와 노예 제도, 고립주의 대 세계주의자의 정치적 입장, 현대 미국의 흑인 어린아이들이 처한 차별적이고 불우한 환경까지, 중대한 정치, 사회적 논쟁거리들이 문제의식을 불러낸다.


 

<블랙 팬서>는 시각효과와 의상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탁이하다. 컴퓨터 생성 이미지(CGI) 효과는 최종 전투 장면 전개에서 특출하고, 유서 깊은 아프리카 시각예술을 건축과 의상에 세련되고 초현대적인 기술과 결합해냈다. 이처럼 탁월한 기술성은 스웨덴 작곡가 루드비히 고란손(Ludwig Goransson)가 영화를 위해 쓴 악보에서도 분명하다.

루드비히 고란손의 문화적 유산은 달라도,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중 미국 대중음악에 정통한 몇 안 되는 실력자다. 영화에서 작곡가 시어도어 셔파이로(Theodore Shapiro)와 <트로픽 썬더>(Tropic Thunder), <말리와 나>(Marley & Me), <센트럴 인텔리전스>(Central Intelligence)와 같은 영화의 추가 음악을 작곡하게 했으며, 쿠글러 감독과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Fruitvale Station)와 <크리드>(Creed)와 같은 영화의 스코어를 쓰면서 연을 맺었다.

고란손은 한편, 영화와는 별개로 음반 녹음과 제작자로서도 성공한 음악 예술가이다. 도널드 글로버(Donald Glover)와 그의 밴드 차일디시 갬비노(Childish Gambino)와 합작한 곡 'This is America'(이게 미국이야)로 201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와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를 수상했으며, 하임(Haim),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 등의 프로듀서로도 활동했다. 이처럼 다양한 작곡가의 음악적 이력은 <블랙 팬서>의 스코어에도 반영되었다. 고전음악의 주제에 따른 관현악편성, 힙합과 R&B의 현대적인 리듬과 음의 질감에서 파생한 감응력, 그리고 많은 전통 아프리카 음악의 조합이 바로 그 성과.

아프리카 음악의 관점에서 고란손은 불확실한 민속적 타악기 연주를 음악 구성의 일부로 삽입하는 것으로 적당히 끝냈으면 작업이 매우 손쉬웠을 테지만, 더욱 심층적인 조사를 통해 그의 작업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고란손은 우선 세네갈로 가서 토종 가수 겸 기타연주자 바바 말(Baaba Maal)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와칸다의 정령이 된 세네갈 음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고란손은 영화의 특정 지점에서 해당 장면의 극적인 내러티브와 감정적 영향을 향상하기 위해 쓰인 큐(cue)의 구성요소 중 하나로 말의 고음으로 치솟는 보컬을 사용한 한편, 세네갈 토킹 드럼(Talking drum), 풀랑 플루트(Fula Flute), 코라(Kora), 부부젤라(vuvuzela horn)까지, 서아프리카의 토속 악기들을 포함한 92인조 오케스트라와 남아공의 코사어(Xhosa)로 노래한 40인조 합창단을 결합해냈다. 풀랑 연주자는 단순히 부는 것 외에도 확장된 기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세네갈 전통 타악기 사바(Sabar)를 이용해 특정한 음색의 장단을 쳐준 것 또한 색다른 면.



현지답사를 통한 음악적 탐구와 문화적 이해에 따른 음악의 깊이는 물론 그 자체로 이 존경할 만하지만, 영화 내에서 구조적으로 조화롭지 못하면 사실상 그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독립된 음악으로 그 완성도나 우수성은 차치하고라도, 영화를 위한 음악으로서의 합목적성, 또는 효용성 차원에서 그 가치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 고란손의 작곡은 다행히 기능성 면에서도 성공적이다. 트찰라와 와칸다 그리고 블랙 팬서를 하나의 결합적 개념으로 묶어낸 한편, 킬몽거를 위해서는 구별되는 두 가지의 주제음악을 반복해 사용했다. 이러한 기본적 악상은 악보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얼개를 이루며 지속해 나타난다.

트찰라와 와칸다, 그리고 블랙 팬서의 테마는 다양한 악상을 전파하도록 구성되어 있는데, 그 핵심은 두 부분으로 축약된다. 첫 번째 부분은 장엄하고 영웅적인 팡파르이고, 두 번째 부분은 9개의 음이 리듬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종종 관악기의 팡파르를 뒷받침하는 악상으로 전개된다. 9개의 리듬 화음은 단음으로 연주하는 스타카토(staccato)를 특징으로 빠르고 일정하게 율동하는 음형으로 펼쳐진다.

작곡가는 때론 위엄 있는 관현악 협주의 틀을 벗어나 맥동하는 연주로 일관한다. 가장 강력한 주제음악의 표출이며 블랙 팬서의 원초적 공격성을 나타낸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영광과 위엄으로 무장한 소리 장식을 투영함으로써 와칸다 부족 국가의 권위를 과시한다. 또한 그는 그것들을 다양한 조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때로는 6개, 다른 곳에선 9개의 리듬만으로 독주 되기도 하고, 팡파르를 보강하기도 하는 식이다. 주인공 트찰라, 국가 와칸다, 초능력 영웅 블랙 팬서가 핵심적으로 서로 얽혀 있고, 상호불가분의 관계지만, 상황에 따라 셋 중 하나가 최전선에 나설 수 있음을 다채로운 연주방식으로 보여준다. 매우 독창적인 방식이다.

트찰라의 테마는 악보 전반에 걸쳐 두루 나타나지만, 와칸다 국의 선대 국왕 트차카가 오클랜드에 있는 그의 요원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장면에 쓰인 지시 악곡 'Royal Talon Fighter'의 36초 즈음에 처음 등장한다. '와칸다'에서는 바바 말의 고조되는 영창과 동일성부를 반복하는 9개의 화음을 스타카토 주법의 금관악으로 명징하게 표출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Warrior Falls'에서 트찰라의 금관 팡파르는 트찰라를 연호하는 여성 합창단과 함께 축하조의 화려한 아프리칸 타악기 합주를 관통해 웅대하게 등장한다. 'Phambili'의 후반 1분 49초 즈음,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을 뚫고 웅비하는 메인 팡파르 테마는 그야말로 압권.

 


트찰라의 적수임에도 불구하고, 킬몽거의 테마는 가장 감성적인 테마다. 어두운 과거 역사가 형성한 고통스러운 내면이 그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Royal Talon Fighter'의 3분 12초 즈음에 처음 등장하는 이 주제는 6화음으로 증강하는 현악으로 나타나고, 킬몽거의 사악한 활동을 동반 예고한다. 고란손은 킬몽거 캐릭터의 고뇌에 찬 내면을 6화음의 주제로 표면화하는 한편, 더욱 공격적인 4화음의 악상으로 축소해 나타내기도 한다. 역동적인 장면에서 킬몽거의 캐릭터 성향을 보강하기 위해 반주하는 이 주제음악은 풀라 플루트를 위한 테마로 편곡되고, 때로 악보가 진행됨에 따라 멜로디가 없는 경우에도 특정 사운드가 킬몽거의 존재를 암시하듯 수반된다.

어떤 때는 힙합과 R&B에서 동시대의 전자음악적인 악상을 가져와 주제로 확장함으로써 캘리포니아 도시에서 기원한 킬몽거의 인물됨을 대변한다. 이는 그의 성격의 이분법적 양면성을 전하기 위함이다. 분명 성장기 그는 심히 고통스러운 대우를 받았고, 감성적인 현악이 그러한 그의 내면성을 대변하지만, 그 이면에서 그러한 주제를 변조해내는 방식으로 그의 분노와 좌절을 보여주는 방식임이 분명하다. 그는 또한 두 문화적 차이에서 고뇌하는 자아란 점도 주제에 반영되어 있다. 그의 성격은 오클랜드의 비열한 거리에서의 삶에서 비롯됐지만, 그의 고향인 아프리카인으로서의 매력도 마찬가지로 강력하다.

R&B와 힙합의 측면에서 고란손이 예술적 기량이 뛰어난 캘리포니아 래퍼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와 협업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켄드릭 라마는 이 장르에서 자신의 엄청난 경험적 내공을 가져와 고란손의 스코어에 반영했다. 그 결과 영화 음악의 진정한 가치를 확대했다. 라마는 또한 투 체인즈(2 Chainz)와 위켄드(The Weeknd)를 비롯한 일련의 랩과 힙합 아티스트들과 콜라보해 영화 장면의 큐(cue)로 사용된 노래들을 썼으며, 다수의 원곡들과 특별히 선별된 노래들을 담은 사운드트랙 앨범을 담당했다. 종영인물자막(End Credits)을 선도한 'All Stars'는 일명 사운웨이브(Sounwave)로 유명한 힙합 음반 제작자 겸 작곡가 마크 앤서니 스피어스(Mark Anthony Spears), 영국 음반 프로듀서 겸 작곡가 알 슉스(Al 'Shux' Shuckburgh), 미국 싱어송라이터 SZA(Solana 'SZA' Rowe), 탑 독 엔터테인먼트 대표 앤서니 티피스(Anthony Tiffith)와 함께 라마가 작곡했으며 SZA가 협연했다.



영화는 'A King's Sunset'과 함께 종극을 고한다. 바바 말의 애절하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영창으로 시작해, 해 질 녘 와칸다의 풍경을 아름다운 솔로 첼로를 위한 킬몽거의 테마로 반주한다. 감성적 울림을 자아내는 현을 주요 악기로 감동을 불러내는 교향곡 풍의 오케스트라가 실로 매혹적이다. 트찰라와 루피타 뇽오(Lupita Nyongo)의 나키아(Nakia)의 사랑의 불꽃을 섬세한 기타와 풍성한 스트링으로 표현한 'A New Day'의 낭만성. 목관악기와 마림바를 위한 트찰라 테마의 장난기 넘치는 변주 'Spaceship Bugatti', 트찰라 테마를 기막히게 렌더링한 오케스트라와 민속음악의 협연을 기반으로 화려하게 전개되는 종곡 'United Nations/End Titles'까지 종반부의 음악은 영화 전체를 압축해 극적인 감정의 최고조에 관객이 이르게 한다. 영적인 찬가, 부족의 춤을 반주하는 타악기 리듬, 9화음 오스티나토를 특징으로 한 트찰라 테마, 현악과 플루트의 감성적인 협주와 융기하는 합창이 감동적인 킬멍거의 테마가 최종적으로 결합해 거대한 메인 테마를 구성하는 것으로 장대한 스코어는 화려하게 대미를 장식한다.

슈퍼 히어로의 세계에서 마블의 영화와 음악 경영진은 스코어의 품질과 다양성 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나머지 시리즈에서도 성공적인 모델을 공식화하고 있다. <앤트맨>(Ant-Man)의 크리스토프 벡(Christophe Beck)을 시작으로 마이클 자키노(Michael Giacchino)의 <닥터 스트레인지>(Doctor Strange)와 <스파이더맨: 홈커밍>(Spider-Man: Homecoming), 그리고 마크 마더즈보(Mark Mothersbaugh)의 <토르: 라그나로크>(Thor: Ragnarok)까지 계속해서 이러한 범례를 따르고 있다. 공인된 수준 높은 영화음악가와 그들의 새로운 아이디어, 그리고 196-70년대 포크와 록부터 1980년대 일렉트로 신스 팝 등을 아우른 여러 대중음악 장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마블 시리즈 영화에 세대를 초월하는 감성 코드 접속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제 클래식이 된 팝의 명곡들을 영화에서 재생함으로 인해서 20세기 복고(Retro)의 감정을 환기하고 팝의 위대한 유산을 21세기에 다시금 소환하는 추세이다.

루드비히 고란손의 <블랙 팬서> 영화음악은 그러한 최근의 경향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적으로 적합하고, 기악 구성이 매혹적이며, 때론 흥미진진하고, 감성적으로 필요한 때와 부분을 알며, 주제음악을 지능적으로 구성해낼 줄 아는 재능의 소유자다. 현대 동시대의 대중적 감정과 고전음악의 예술성, 양단에 적정한 음악적 문화 코드 읽고 결합해낼 줄 아는 그의 독자적 식견은 결국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슈퍼 히어로 영화 최초 작품상 후보에 오른 <블랙 팬서>에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Best Original Score) 부문 오스카 트로피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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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