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컬링』으로 비룡소 블루픽션상을, 『델 문도』로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최상희의 새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닷다의 목격』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이는 이번 소설집은 최상희 작가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세련된 문장으로 ‘읽는 맛’을 느낄 수 있다. 각 단편은 하나의 소설로도 완벽한 작품성을 보여주지만, 한 권에 담아놓아 더욱 다채롭게 느껴진다.
일곱 편 모두 미래를 배경으로 한 환상적인 설정이지만 현 시대의 고정관념, 혐오, 차별, 부당함 등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누군가는 겪고 있을 우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더욱 깊이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눈앞에 닥친 현실에 힘들거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는 만화경 같은 일곱 편의 단편들을 최상희 작가의 새 소설집에 담았다.
소설집 『닷다의 목격』이 출간되었습니다. 어떤 책인지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 단편소설 7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어떻게 쓰시게 된 작품들인가요?
너구리와 고양이, 행성의 도서관이 나오는 소설입니다. (웃음) 몇 년 전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 뉴스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서 뭔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쓰기 시작한 소설이 「화성의 플레이볼」이었고 이어서 쓴 소설들이 한 권의 단편집이 되었습니다. 존재하지만 없는 척, 알지만 모르는 척, 외면하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소외와 편견, 폭력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표제작 「닷다의 목격」에는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는 학생 ‘닷다’와 너구리 ‘바닐라빈’이 등장합니다. 바닐라빈의 겉모습을 너구리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또 닷다가 목격하고, 바닐라빈이 두려워하던 ‘교실 한구석 자리, 검은색 쓰레기봉투처럼 보이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밤늦게 산책하길 즐깁니다. 사람은 드물고 간혹 고양이들이 함께 걸어주는 그 시간을 좋아합니다. 몇 해 전 늦은 밤, 산책로를 걷다가 너구리와 마주친 적이 있어요. 진짜 너구리였어요. 눈가가 거무스레하고 꼬리가 북실북실한 너구리가 풀숲 사이에 우뚝 서서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죠. 무섭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고 조금은 당황한 채로 너구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그 앞을 지나쳤죠. 살짝 뒤돌아보니 너구리는 사라지고 없었어요. 꿈인가 했는데 그 뒤로 몇 번 더 너구리를 만났죠. 산책로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바로 옆, 작은 하천가에 있었는데 너구리가 있다니 놀라웠어요. 아마도 산에 살던 아이들이 먹이를 찾아 사람 사는 곳까지 내려온 게 아닐까 싶었어요.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 아주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장면이 꽤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바다, 소녀 혹은 키스』에 실린 「잘 자요, 너구리」란 소설을 쓰기도 했죠. 「닷다의 목격」을 쓸 때 처음부터 너구리가 등장한다는 설정은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교복 입은 너구리가 나와 급식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습니다.
‘교실 한구석 자리, 검은색 쓰레기봉투처럼 보이는 것’의 정체는 책 속에 밝히긴 했는데 명확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존재하지만 없는 척 외면한 것, 나만 아니면 돼, 라는 이기심과 무관심을 먹고 사는 괴물, 그 괴물들을 키운 게 바로 인간들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복수’라는 주제를 의뢰받아 「그래도 될까」를 쓰셨다고 했는데, 조금 어렵게 느껴집니다. 복수심이 ‘따끔’ 하는 통증으로 나타나는 건가요? 학생들은 왜 식물로 변하는 걸까요?
우주와 송이에게는 좋아하는 것들이 많았죠. 학원 시작 전에 카운트다운하며 욱여넣는 라면과 삼각김밥이라든가, 길에서 구조한 새끼 고양이 코코, 송이의 작은 방 창문, 그 창 아래서 나란히 누워 좋아하는 것들을 말하는 시간, 그런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하나둘 빼앗기며 결국 송이는 변합니다. 아마 다른 아이들도 뭔지는 모르지만 좋아하는 것, 혹은 소중한 것들을 빼앗기거나 잃은 끝에 식물로 변하게 됐겠죠. 가장 좋아하고 소중하게 여겼던 친구 송이를 잃은 우주 역시 통증을 느끼고 변화를 예감합니다. 우주는 ‘내가, 내가 아닌 무언가가 돼야 한다면 색이 선명하고 화려한 꽃이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치는 것만으로도 눈과 귀가 멀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다 죽게 되는 치명적인 독을 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험한 꽃.’이 되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되겠다고 송이에게 다짐합니다. 그게 우주의 복수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나둘 식물로 변한다는 게 결국은 이 흉포하고 비정한 세상에 대한 커다란 하나의 복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없는 세상은 결국 사라지고 말 테니까요.
「제물」과 「국경의 시장」에 등장하는 소녀 이름이 ‘무나’로 같습니다. 무나는 어떤 의미를 가진 이름인가요? 「국경의 시장」에서 사라진 무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무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이름입니다. 의미도, 별다른 인상도 주지 않지만 어쩐지 마음에 남는 이름이었으면 좋겠다 해서 지은 이름입니다. 무나처럼 제가 사랑하는 등장인물들이 좀 있습니다. 유나, 송이, 우주, 주운 등인데요, 다른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에도 나옵니다. 저에게 페르소나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요. 「제물」의 무나와 「국경의 시장」에 등장하는 무나는 다른 인물이지만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무나는 이런 아이일 거라고 제가 그리는 이미지가 있거든요. 아마도 조용하지만 강단 있고 사려 깊으며 용감한 아이가 아닐까 싶어요. 「국경의 시장」에서 무나는 어디로 간 걸까요? 글쎄요, 저도 궁금하네요. 정답은 없습니다. 읽는 이가 생각하는 어딘가가 다 답이 될 수 있겠죠.
『닷다의 목격』의 7편 중 가장 여러 번 고친 작품은 무엇인가요? 고민된 부분도 궁금합니다.
「화성의 플레이볼」을 가장 많이 고쳤습니다. 실재한 사건을 토대로 했으므로 그것을 의식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실제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연상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법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여행길이 막혔습니다. 여행 대신 찾으신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언젠가는, 하고 생각하던 살아보고 싶은 삶이 있었습니다. 막연한 생각뿐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그 비슷한 삶을 살아보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조금 앞당겨진 것도 같은데요. 사는 곳을 옮기고 이제까지 살던 것과는 좀 다른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마당 있는 집에 살며 나무를 심고 꽃과 텃밭을 가꾸고 뜰 안에 놀러 오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내일의 날씨를 짐작해보는 생활입니다. 어찌 보면 아주 먼 곳으로 여행 온 기분도 듭니다. 마당의 고양이 돌보는 와중에 가끔 글도 씁니다.
『닷다의 목격』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기쁘겠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야? 하고 궁금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왜 이런 곳인지.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최상희 소설가. 때때로 여행하고 글을 쓴다. 지금처럼 제주 여행이 활발하지 않던 시절, 훌쩍 제주로 떠나 머무르는 여행을 했던 얼리버드 여행자. 제주에서 ‘중간 여행자’로 머문 700여 일을 담은 여행서 『제주도 비밀코스 여행』이 제주도 여행의 바이블로 떠오르며 제주도 여행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동생과 함께 작은 출판사 '해변에서랄랄라'를 운영하며 여행의 기록을 책으로 만들고 있다. 『그냥, 컬링』으로 비룡소 블루픽션상을, 『델 문도』로 사계절문학상을, 단편 「그래도 될까」로 제3회 SF어워드 중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바다, 소녀 혹은 키스』로 대산창작기금을, 이 소설집 『닷다의 목격』에 실린 단편 「화성의 플레이볼」과 「국경의 시장」으로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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