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운영, 전시 기획, 예술 강좌 기획, 예술 애플리케이션 개발까지, 예술과 관련해서 다방면으로 활동 중인 임지영의 미술 에세이. 저자는 예술이 ‘그들만의 리그’라는 평을 받는 데에, 그들 스스로 그렇게 여기는 데에 불만을 제기한다. 나아가 예술의 최전선을 누비며 예술은 공부가 아니라 즐기고 느끼는 것이며, 예술은 좋은 삶을 위한 매개체일 뿐이라고 거듭 말한다. 『느리게 걷는 미술관』은 어렵고 진지할 수 있는 예술, 특히나 미술 이야기를 삶에 녹여내 누구나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한 예술 입문서이자, 예술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우리들의 광장이 되길 바라는 한 예술 애호가의 끊임없는 소통의 기록이다.
『느리게 걷는 미술관』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요?
지난 2년간 예술 에세이, 예술 칼럼을 많이도 썼습니다.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많이 다니는데,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가깝게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예술과 관련해 쉽고 편한 글을 계속 쓰게 됐고, 그간의 글들을 묶어 『느리게 걷는 미술관』을 출간하게 되었답니다.
일반 사람이 예술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뭘까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니, 예술 앞에 우린 쫄아 있달까요. 오해하고 있죠. 미술관이나 전시장 등의 공간은 아름다운데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요.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겠지요. “나는 예술 잘알못인데…” 하며 그림 앞에서 동공지진을 일으키고 있는 거죠.
예술은 좋은 삶을 위한 매개체일 뿐이라고 하셨는데요. 우리 삶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데 좋은 삶, 행복한 삶을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에 달렸는데, 그 마음도 연습이죠. 예술은 지식이 아닌 감각의 영역입니다. 그림 한 점을 가만히 응시할 때 마음에 따뜻한 것이 쌓입니다. 처음엔 어색해도 느리게 걷다 보면 어느새 편해질 거예요. 굳었던 얼굴에도 미소가 슬며시 떠오를 거고요. 우린 그걸 감성이라고 부르죠. 감성은 우리를 행복해하기 쉬운 체질로 바꿔줍니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전시회 진행 방식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요즘 같은 시기에 전시회를 즐길 수 있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미술관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없어요. 물론 ‘이건희 컬렉션’처럼 예약이 어려운 전시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한산합니다. 미술관에 가는 일에는 시간과 마음이 들지요. 저는 여전히 느리게 걷기 위해 여러 미술관을 다니지만, 온라인 전시도 퍽 많아요. 특히 여행을 못 하니 세계 미술관의 그림은 온라인으로 감상하기도 합니다. 전 전시를 본 후에는 꼭 글을 씁니다. 그 감흥이 휘발되기 전에 바로 쓰기도 해서 동행자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하죠. 전시회를 즐기는, 그림을 내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기록하는 것입니다.
기억, 소리, 디지털 미디어 영상 작품 등 그림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전시가 많은 것 같아요. 최근에 봤던 전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 있으신가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전시요. 압도적이었어요. 국보 ‘반가사유상’ 두 분을 만날 수 있는데요. 지친 우리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전시였어요. 건축가가 만든 아름다운 공간과 미디어 예술 등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전 ‘반가사유상’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는데요.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지고 애틋해지고, 사는 일이 다 괜찮아지더라고요.
예술 애호가로서 어떻게 하면 예술과 친해지고 즐길 수 있는지 간단한 방법을 알려주세요.
저는 늘 부르짖습니다, 움츠러들지 말라고요, 몰라도 된다고요, 먼저 만나야 한다고요, 보고 느끼고 좋으면 알아가면 된다고요. 그냥 느리게 걷기 위해 미술관에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걸을 수 있는, 가장 느린 속도의 걸음으로요. 전시회의 그림 다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 다 보고, 다 좋을 수 있겠어요. 그냥 느리게 걷다가 발길이 멈추게 되는 그림만 기억하세요. 작가와 제목을 기억하고, 사진도 찍어 오면 좋겠죠. 그리고 잠깐 메모를 하세요. '왜 이 그림 앞에서 멈춘 걸까? 색감 때문에? 그림에 담긴 이야기 때문에?' 자유롭게 써보는 겁니다. 그때부터는 여러분도 적극적인 예술 향유자입니다.
섬세한 설계와 건축이 돋보인 ‘박수근미술관’, 돌 문화재가 가득한 ‘우리옛돌박물관’ 등 여러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가 있는데요. 작가님만의 특별한 기억이 있는 장소가 있나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2010년에 처음 문을 열었던 ‘나라 갤러리’를 잊을 수가 없어요. 제가 열었던 곳이고,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준 곳입니다. 예술 사업의 세계는 또 다른 영역이지만, 저는 사업은 꽝이었고, 그림을 속속들이 보고 느끼고 쓰는 데 집중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예술 사업가가 아니라 예술 향유자가 됐죠.
책 뒷부분에 ‘예술 취약 계층’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우리 모두는 예술 취약 계층이 아닌가 한다’는 작가님의 말에 많이 공감하기도 했고요.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가님께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예술을 그들만의 리그라고 합니다. 물론 요즘 예술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요. 그래도 아직 멀었어요. 전 반포 도서관에서 8년 전부터 예술 강좌를 기획, 주관했어요. 함께하는 분들과 서초문화네트워크를 만들었고, 한 달에 한 번 전시 탐방도 진행했습니다. 지난 4년간 전국 보육원에 그림을 기증하는 일도 참 열심히 했는데, 50군데 1000점을 넘게 기증했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신문에도 크게 났죠. 우리가 좋아서 한 일입니다. 아이들이 그림 앞에서 활짝 웃는 게 좋더라고요. ‘예술 감성’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으니까요. 요즘은 어린이와 성인 들을 위한 예술 강좌를 기획,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 콘텐츠인데 호응이 굉장히 좋아요.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는 예술 감성 교육을 확산시킬 계획입니다.
‘삶의 속도를 늦추려고 예술에 다가간다’는 표현이 인상적인데요.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위해 예술을 접하고 싶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갤러리에 들어가는 걸 망설이지 마세요. 전시장을 느리게 걸어보세요, 더 천천히, 더 느릿느릿. '어? 이 그림은 오래전 내 모습 같네', 걸음이 멈출 거예요. 바로 그때 인생의 가장 좋은 것이 내게 스며듭니다. 그때의 나는 전과 같지 않습니다.
*임지영 예술에 둘러싸여 살다가 예술로 사업을 했다. 예술과 관련한 글을 쓰다가 예술로 교육을 시작했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우리들의 재밌는 광장을 위해 예술을 보고, 느끼고, 쓰고, 강의한다. 숭례문학당 이사이자, 예술 교육 회사 ㈜즐거운예감 이사로 활동 중이다. 한국미술재단 월간지 〈미술 사랑〉에 ‘예술 에세이’를, 〈매일경제〉 온라인판에 ‘임지영의 예술사용법’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예술의전당, 에코락갤러리, 서울특별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 서초구립반포도서관 등에서 예술 강좌를 기획, 진행했다.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산업예술대학원 문화예술창업전공을 이수했다. 지은 책으로는 예술 에세이 『봄 말고 그림』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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