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의 하루] 조식에 진심인 나라, 중국 - 심예원
중국의 각종 조식을 섭렵해 본다. 먹다 보니 하나같이 다 맛있다. 그리하여 가끔은 조식을 거의 만찬 수준으로 즐긴다. 괜찮다. 백종원 선생님이 그랬거든. 아침에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 안 찐다고.
글ㆍ사진 심예원(나도, 에세이스트)
202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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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가 진행하는 글쓰기 공모전 ‘나도, 에세이스트’ 대상 수상자들이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에세이스트의 일상에서 발견한 빛나는 문장을 따라가 보세요.


중국 사람들에게 욕을 한 바가지 먹고 싶다면 좋은 방법이 있다. 이렇게 말해 보는 거다.

“전 아침을 절대 먹지 않아요, 차가운 물도 매일 마셔요”. 

당신은 바로 ‘세상에 어찌 이런 인간이 있을 수가’에 버금가는 놀라움과 걱정이 반씩 섞인 중국인들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다. 가까운 사이라면 친근한 잔소리까지 덤으로 획득할 것이다. 

베이징에 살면서 중국인들에게는 건강과 식단에 나름의 확고한 기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우선 물은 뜨겁게, 최소한 따뜻하게 먹어야 하고 양과 음의 조화를 이루는 음식의 섭취는 매우 중요하다. 여름이라도 절대 발을 차갑게 하면 안 되고, 무엇보다 아침을 꼭 먹어야 한다. ‘早餐吃好, 午餐吃飽, 晩餐吃少’라는 말이 있는데 아침은 잘 먹고, 점심은 배부르게 먹고, 저녁은 적게 먹으라는 뜻이다.

예전부터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는 나에게 중국인들은 인사처럼 “아침 먹었어?”라고 묻는다. 처음에 순진하게 “저는 원래 아침을 안 먹어요”라고 대답했더니, 중국인들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몸에 안 좋으니 꼭 먹어야 해요”. 남편의 회사 동료들도 아침을 제대로 안 먹는 남편을 걱정하며 본인들이 챙겨 온 ‘빠오즈(중국식 진빵)’를 전해 주고 가기도 한다. 간헐적 단식이라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도 중국인들의 조식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아침 7시 30분, 아이를 등교 버스에 태워 보내고 다양한 아침을 팔고 있는 마켓에 들려본다. 아침을 포장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분들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일하는 여성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만큼(80%가 넘는다고 한다) 아무래도 중국 가정 내 아침 담당은 남자인 것 같다. 학교에서 ‘지위(地位)’라는 단어를 배웠는데 옆에 딸려 있는 예문이 '우리 집에서는 아빠보다 엄마의 지위가 더 높다'여서 화들짝 놀라기도 했었다. 다양한 조식이 담긴 비닐봉지를 든 ‘지위가 낮은’ 아빠들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아침 길 위에서는 일렬로 서서 큰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조회를 하는 무리를 만날 수 있다. 처음에 단정한 양복을 차려 입고 하나 같이 똑같은 사원증을 차고 있는 그들의 존재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부동산 중개 직원이었다. 극본, 연기, 연출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웰메이드 중드 ‘안지아(安家)’는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일과 사랑을 그렸다. 주인공은 "제가 못 파는 집은 없습니다."라고 늘 강조하는 '팡쓰진'. 피도 눈물도 없이 오로지 실적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점장이다. 집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가 나오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팡쓰진이 매일 아침 사무실 책상에서 조식을 먹던 장면이었다. 그녀는 출근길에 항상 빠오즈와 또우장(콩국) 2인분을 사서 누구와도 나누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 조식을 해치운다. 빨대로 두 잔의 또우장을 연속으로 틀이 켜고(한 번도 입을 떼지 않는다) 커다란 빠오즈를 우걱우걱 씹는다. 뭔가 전투적이면서도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느낌이다. 

시간이 흐르고, 냉혈한 같던 그녀도 의리가 넘치는 동료들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상징적인 장면은 이것이다. 늘 2인분만 사서 혼자 해치우던 조식을 1인분 더 사서 아무런 말도 없이 무심하게 동료에게 건네는 것. 마치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마음 표현이라는 듯이. 이쯤 되니 조식은 단순한 끼니 이상의 의미인 것 같다. 시안이 있는 섬서성에서는 조식을 '먹는다'고 하지 않고 시간이나 인생을 보낸다는 의미의 ‘過’라는 단어를 쓴다고 하던데 그만큼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거겠지. '아침을 보내다'. 참으로 멋진 말이다.

나도 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종종 조식 탐험을 떠난다. 원래 아침을 안 먹는다는 발언이 무색하게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매우 배가 고파온다. 두부뇌(두부 모양이 뇌랑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라는 무서운 이름을 가진 순두부, 바로 튀겨서 또우장에 푹 담가 먹는 요우티아오, 유명한 죽 '빠빠오저우', 후추의 매콤함과 땅콩의 고소함이 인상적인 후라탕 등 중국의 각종 조식을 섭렵해 본다. 먹다 보니 하나같이 다 맛있다. 그리하여 가끔은 조식을 거의 만찬 수준으로 즐긴다. 괜찮다. 백종원 선생님이 그랬거든. 아침에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 안 찐다고.



오전 8시, 똥스 후통 근처에서 사람들이 몰려 있는 가게를 발견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老字號'라는 간판이 보인다. '老字號'는 중국 정부에서 1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지닌 가게에 주는 등록 상표다.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해서 중국 전역에 1,100여 개 밖에 없다. 이곳은 무려 1862년부터 영업했다. 이런 행운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으니 당장 메뉴 탐색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곳에 다시 올 확률은 매우 낮으니 제일 유명한 메뉴를 시켜야 하는데 1위 메뉴가 '小炒肝尖'. 돼지 간으로 만든 탕이로군. 내장 부위에 약한 나로서는 조금 꺼려졌지만, 평생 또 언제 먹어볼까 싶어 용기를 내보았다. 오늘의 '마이크로 어드벤처' 되시겠다. (마이크로 어드벤처는 앨러스테어 험프리스의 『모험은 문밖에 있다』에서 나온 신조어로 짧게, 쉽게, 언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생활 속 모험을 의미한다.) 

오랜 역사에는 역시 이유가 있다. 비리지 않고, 꽤 맛있었다. 150년이 넘은 식당에서 유일한 외국인으로 돼지 간 볶음탕을 먹고 있자니 갑자기 인생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연배의 어르신이 150년 전 이곳에 앉아서 이 돼지 간 볶음탕을 드셨겠지. 그분에게 지금 내 고민을 상담해 본다면 어떨까. '뭐 그딴 걸 고민이라고 하고 앉아 있냐, 인생 별 거 없으니 그냥 니 갈 길 가'라고 말하시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기분이 꿀꿀할 때마다 듣는 노래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건 니 생각이고'를 들었다. 


'내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니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그냥 니 갈 길 가. 이 사람 저 사람 이러쿵 저러쿵 뭐라 뭐라 해도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 가. 미주알 고주알 친절히 설명을 조곤 조곤 해도 못 알아들으면 이렇게 말해버려, 그건 니 생각이고...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너처럼 아무것도 몰라, 결국에는 아무도 몰라, 그냥 니 갈 길 가'. 

 _장기하와 얼굴들 , '그건 니 생각이고' 중


그래서 나는 이 랩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내 갈 길을 갔다.




*심예원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쓰는 도시 산책가




모험은 문 밖에 있다
모험은 문 밖에 있다
앨러스테어 험프리스 저 | 김병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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