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향악 순례』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넘어 대중의 클래식화를 외치는 청년 저자가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시도립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찾아다니며 쓴 교향악 순례기이다. 2019년 12월 27일 성남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시작으로 출발하여 2021년 6월 4일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끝으로 마친, 526일의 순례 기간 동안 20개 도시의 23개 공연장에서 스물네 개의 교향악단, 스물두 명의 지휘자, 서른여섯 명의 협연자(합창단은 제외)가 연주하는, 서른 명의 작곡가들이 쓴 예순 곡(앙코르곡은 제외)과의 만남이 담겨 있다.
클래식 저변이 넓다고는 할 수 없는 국내 상황에서 '대한민국 교향악 순례'를 하셨는데요, 이런 기획을 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대학생이 된 뒤로 방학 기간을 이용해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공연을 보기 위해 해외여행을 종종 다니고는 했습니다. 유명 교향악단의 공연을 순회 관람하기 위해 독일을 일주하거나 이탈리아의 유명 오페라 극장을 순회하며 그곳에서 열리는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는 식이었죠. 그러나 지난 2019년 사회복무요원으로서 군 대체복무를 시작하면서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음악만큼이나 여행을 원체 좋아하는지라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여행을 기획하던 중,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각 시·도를 거점으로 삼고 있는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관람하러 다니는 조금 새로운 여행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우리나라에 많은 교향악단이 있다는 것을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교향악 순례’ 계획을 세우면서 생각보다도 우리나라에 더 많은 교향악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도권, 대도시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각 지역을 거점으로 하고 있는 교향악단의 공연을 통해 수준 높은 교향악을 향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아마추어 교향악 청중인 저의 교향악 순례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교향악, 또 클래식 음악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2019년 12월, 대한민국 교향악 순례를 시작하였고 지난 9월에 무사히 마쳐 이렇게 순례의 기록을 책으로 펴내게 되었습니다.
24개 시도립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그 지역에 찾아가서 들으셨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례길이 있으신지요?
스물네 번의 순례길 모두 잊히지 않는데요, 특히나 대구로의 순례길이 기억에 남습니다.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연주회를 관람할 때에도 비교적 일찍 공연장에 도착해서 기다리는 편인데, 워낙 더웠던 날씨에 운전이 힘에 부쳐 중간에 너무 잦은 휴식을 취한 탓에 공연 시간에 늦고야 말았습니다.(태어나서 처음으로 연주회 시간에 늦어본 것이었죠.) 그날 서곡이었던 페르귄트 모음곡을 결국 놓쳤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메인 프로그램인 협주곡과 교향곡은 놓치지 않고 잘 감상하고, 이를 순례기에 남겼는데요, 아마 이날 협주곡까지 놓쳤더라면 대구에 다시 한 번 갔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번 순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어떤 곡이었나요?
군산으로의 순례에서 만났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9번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현대음악이라고 하면 왠지 어려울 것 같고, 복잡할 것 같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지난 군산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에서 교향곡 9번을 다른 쇼스타코비치의 교향악 작품들과 연계되어 감상해보니, 이 작품에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세계가 투영되어 있음은 물론, 작곡가의 가치관과 사상마저 다분히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9번이 자주 연주가 되는 작품은 아닌데, 이렇게 순례길에서 우연히 만난 소중한 작품을 통해 새로운 작곡가의 면모를 만나고, 현대음악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굉장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향악을 다 사랑하시겠지만, 특별히 더 애정이 가는 교향악이 있으실까요?
『대한민국 교향악 순례』에서도 이에 대해 언급하였지만, 베토벤의 교향곡을 특히나 좋아합니다. ‘베토벤은 언제 들어도 옳다’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줄기차게 주장하고는 하는데, 사실 여기에는 단순히 ‘음악이 좋아서’의 이유뿐만 아니라, 베토벤에 대한 존경심, 혹은 경외심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아들인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부터 브루크너와 말러에 이르기까지 교향곡이라는 장르는 20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점차 그 형식이나 규모가 탄탄하게 다져져 왔습니다.
이러한 교향곡 장르의 역사를 통틀어 놓고 보았을 때, 베토벤이야말로 ‘교향곡 역사의 가장 큰 변곡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토벤은 과감한 형식의 탈피, 화성의 대담한 사용 등을 통해 과거 부속악곡에 머물렀던 교향악의 지위를 한껏 끌어올린, ‘교향악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향악 애호가로서, 이러한 베토벤에게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갖게 되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따라서 베토벤의 교향악을 매우 좋아하고, 또 아낍니다. 베토벤의 아홉 교향곡 모두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꼭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베토벤의 중기(中期)를 여는 <교향곡 3번 ‘영웅’>을 꼽고 싶습니다.
'클래식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클래식화'가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클래식의 대중화’라는 표현은 현실화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케스트라가 영화음악을 연주하거나 대중음악을 연주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클래식의 대중화’가 아닌, 그저 오케스트라가 클래식이 아닌 다른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향악단이 해설 음악회를 열거나 가벼운 레퍼리의 연주회를 여는 등, 음악을 만들어내는 음악인들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대중 스스로의 노력 역시 필요합니다.
요즘에는 이러한 대중들의 노력이 눈에 많이 띄는 것 같습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크리에이터들도 있고, 공연 후기를 SNS를 통해 공유하는 청중들도 있고, 또 저와 같이 이렇게 책을 통해 클래식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고자 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대중들이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단순히 ‘어렵다’, ‘지루하다’, ‘길다’와 같은 부정적인 마음이 아니라 ‘재미있다’, ‘편안하다’, ‘웅장하다’ 등의 긍정적인 인상을 갖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대중의 클래식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아직 클래식을 잘 접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클래식을 듣는 것 자체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듯합니다. 클래식 듣기에 대한 팁 같은 것을 주실 수 있으실까요?
대개 클래식 음악 작품은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의 두 범주로 구분됩니다. 표제음악이 특정한 주제나 회화, 시 등을 모티프로 하여 작곡된 음악이라면, 절대음악은 음들의 조화, 그 자체가 하나의 형식이 되고, 형식 그 자체가 하나의 음악이 되는 음악을 말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표제음악의 경우, 음악을 감상하며 머릿속에 특정한 심상을 떠올리기가 절대음악에 비해서는 용이합니다.
따라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제음악’을 먼저 들어볼 것을 권유 드리고 싶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장면을 상상하고,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며 점차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디오나 CD, 음원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도 물론 좋습니다만, 가급적이면 직접 연주회장에 가셔서 현장감 넘치는 음악을 들어보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생생한 음향으로 클래식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감상하는 경험을 통해 음악의 기승전결을 느껴보고, 군데군데 숨어 있는 마음에 드는 패시지(passage)들을 쏙쏙 찾아보는 재미있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을 독자님들께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클래식 음악에 대한 넘치는 열정에 비해 아직 필력이나 음악적인 지식은 많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책을 읽으시며 군데군데 빈약한 부분을 발견하실 수도 있고,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의 본질이 ‘한 아마추어 교향악 청중의 성장기’에 있음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고, 스물여섯 젊은 청중의 교향악에 대한 넘치는 열정을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신동욱 아마추어 교향악 청중이자 예비 초등학교 선생님. 1996년 인천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다니며 교향악과 가까워졌다. 이후 교향악은 삶의 곳곳에 녹아들었고, 2016년 서울교육대학교 입학 이후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을 밥 먹듯 드나들며 교향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교향악과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대중의 클래식화’에 기여하고 싶다. 또, 음악을 통해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돕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다. ‘음악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삶’을 꿈꾸며 ‘페르마타’라는 필명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어쩌다 보니 클래식 애호가, 내 이름은 페르마타』가 있다. (페르마타fermata : 늘임표. 본래 박자보다 두세 배 길게 늘여 연주하라는 기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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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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