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을 통한 우리 역사 바로 보기
역사적으로 수천 년의 관계를 맺어온 한국과 중국의 왕조 흥망과 문화사, 현대사 등 두 나라의 공존과 교류 이야기를 통해 한국사에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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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저자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같이한 3000여 년의 역사를 시대별로 구성한 책이다. 중국사를 외면한 채 한국사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근대 이후 우리가 서구 문물을 수용해온 것처럼 근대 이전에는 중국 문명의 장점을 수용하고 재창조하며 정체성을 지켜왔다. 역사의 주체성은 단절과 고립이 아닌 공존과 교류에서 나온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중 교류는 이제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 되었다. 역사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는가에 귀 기울이며, 그저 있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지 말고 한 발 뒤로 물러서 숲을 보자.



『한중 3000년, 그 애증의 역사』, 책이 꽤 두툼한데 집필 동기를 듣고 싶습니다.

1998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쳐 왔습니다. 언제부턴가 한국사를 읽고 가르치는 게 답답했습니다. 마크 피터슨이 지적한 대로 현행 한국사 서술은 ‘우물 안 개구리(the frog in the well)’였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유발 하라리는 인류 문명사를 대서사시로 담아내 한국 독자들의 갈채를 받는데, 한국사 서술은 여전히 ‘갈라파고스’입니다. 교과서는 말할 것도 없고, 교양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중 교류사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근대 이전 동아시아 세계는 중국 문명의 자기장 안에서 변화해 왔기 때문입니다. 밀폐 공간에 작은 구멍을 뚫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한국사 서술이 우물 안에 갇힌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내셔널리즘(근대 민족주의)의 영향이 큽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사기』『자치통감』 등 중국사를 주로 공부했습니다. 이에 대한 반발로 근대 내셔널리즘 역사학이 ‘국사’를 강조했습니다. 망국의 시기 민족의 정신적 구심체가 필요했고, 그 선봉에 ‘열혈 청년’ 신채호가 있었습니다. 신채호는 내셔널리즘의 한계를 느끼고 아나키즘으로 옮겨갔지만, 한국사 서술은 점점 한반도 안에, 단일 혈통 안에 구속됐습니다. 민족 주체성을 강조하다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셈입니다. 현재 북한 체제처럼 말이죠. 주체성은 비교 대상이 있어야 존재합니다. 단절과 고립이 아닌 공존과 교류 속에서 주체성이 나옵니다.

한국사 서술의 ‘민족 과잉’에 대한 비판인데, 뉴라이트 역사학과 결이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올 것 같습니다.

저도 뉴라이트 역사학을 옹호하지 않지만, 뉴라이트 역사학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 열 개 가운데 ‘쓴 약’이 한두 개는 있겠죠. 한국사 서술의 ‘민족 과잉’ 지적이 그렇습니다. 역사에서 민족을 강조하다 보면 계급 문제, 삶의 구체성을 놓칩니다. 가령, 고려 시대 삼별초 항쟁을 민족 항쟁으로만 규정해버리면 무신정권과 그 행동부대 삼별초에 핍박당한 백성의 삶이 은폐됩니다. 해방 이후 남북한 독재 권력이 ‘국사’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제 역사 서술은 좌파 민족주의와 뉴라이트의 중간 그 어디쯤 서 있습니다.

동아시아 세계에 내셔널리즘이 득세하고, 남북한 통일을 지향하는 한국인에게 내셔널리즘은 필요악 아닐까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죠. 한국 내셔널리즘의 딜레마입니다. 결국 플러스·마이너스 문제인데, 내셔널리즘은 마이너스가 더 크다는 게 중론입니다. 가령, 현재 한국 사회는 저출산 문제가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현재 고1 학생들이 41만 명인데, 2020년 출생아 수가 27만 명입니다. 지금 이대로 가면 국가 운영이 어렵습니다. 결국 해법은 피부색 다른 ‘이방인’들과 더불어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미 한국은 외국인 220만 명이 더불어 사는 다민족 국가입니다. 다민족 국가에 내셔널리즘은 자승자박입니다. 내셔널리즘의 고향이 역사 서술이니 한국사 서술부터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태곳적부터 한국인은 여진, 거란, 몽골인 등 이방인과 더불어 살아왔음을 서술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역사를 공부하며 영향을 받은 선학들이 계실 텐데 몇 분만 소개해 주시죠.

제 고향이 충남 당진입니다. 당진(唐津)은 그 지명이 말해주듯 그 옛날 중국을 오가던 나루터였습니다. 아마 제 조상도 중국인일지 모릅니다. 중학교 때 역사를 가르쳐 주신 신양웅 선생님은 제게 역사의 영감을 심어줬습니다. 조선 왕조 말기, 당진 난지도에서 일본군에 맞서 항전하다가 전사한 의병 150여 명의 유골을 수습해 묘역을 조성한 향토사학자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3년 동안 고려대 출신 담임선생님을 만났고, 자연스럽게 고려대로 진학했습니다. 고려대엔 유명한 학자들이 워낙 많아 열거하기 어렵지만, 강만길 교수, 류승주 교수, 김현구 교수 등이 영향을 줬습니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제가 입학하기 전 학교를 떠나셨고 그에 얽힌 ‘전설’을 들었습니다.

평소 생활 스타일이나 특별한 취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 아내는 ‘도대체 당신은 무슨 재미로 살아요?’라고 묻습니다. 실제로 제 일상은 단순하고 건조합니다. 골프도 못 치고, 여행도 많이 다니지 않고, 외모와 달리 소심하고 낯가림이 심해 각종 모임에도 잘 나가지 않습니다. 퇴근길에 동료 교사들과 가끔 술을 마시거나 책방에 들르는 게 ‘일탈’입니다. 주말엔 책을 읽고 반젤리스 음악을 듣거나 동네 뒷산(광교산)에 혼자 올라가 ‘멍 때리기’가 취미라면 취미입니다. 작가 김훈 선생은 한국의 사회 문제 중 상당수가 사람들이 혼자 있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패거리 문화, 쏠림 현상 등을 지적한 것 같은데, 공감합니다. 결국 사람은 혼자 왔다가 혼자 떠나니까요.

향후 집필 계획이 궁금합니다.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 즐겁게 학생들을 가르치며 떠오르는 주제가 있으면 ‘글 감옥’으로 걸어 들어가야죠. 글을 써서 큰돈을 벌지도 못하는데 컴퓨터 자판을 독수리 타법으로 눌러 나아가는 게 힘들지만 즐겁습니다. 글쓰기는 결국 자기 성찰이더군요. 훗날 제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딸이 제 저서를 보며 ‘우리 아버지가 큰일을 이루진 못했어도 세상을 나름대로 진지하게 살았구나’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것도 꿈같은 이야기죠.




*이태영

1971년에 태어나 충남 당진에서 자랐다. 고려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고, 현재 경기도 효성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펼쳐지는 그의 역사 수업은 학생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오랫동안 근현대사를 가르치면서, 일제시대가 지나치게 항일과 친일의 역사로만 기억되는 데 아쉬움을 느껴왔다. 역사의 큰 수레바퀴 아래 함께 살아 숨 쉬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복원해 학생들이 ‘역사의 동시성’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일제시대의 인물, 사건 등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현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것임을 환기시켜 ‘역사의 연속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 당시 신문과 잡지는 물론 수많은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일제 식민지시대를 감각적으로 복원했다. 일제 식민지시대를 250장면으로 재구성한『다큐멘터리 일제시대』는 독자들을 탄압과 저항, 욕망과 좌절이 뒤섞인 역사의 현장으로 초대한다. 작가 황석영과 김훈, 음악가 반젤리스, 두산 베어스를 좋아하며, 역사와 일상이 만나는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20세기 아리랑』, 교과서『고등학교 세계사』(공저) 등이 있다.



한중 3000년, 그 애증의 역사
한중 3000년, 그 애증의 역사
이태영 저
살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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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