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 언니에게
제가 언니라고 부르는 것을 언니는 분명 이해해줄 것 같아요. 우리 사이에는 서른세 살의 나이 차 말고도 다른 것이 많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가까이 닿아 있다고 믿는 것들에 대해 오늘은 이야기하고 싶어요.
언니의 책 『해러웨이 선언문』과 다큐멘터리 <도나 해러웨이: 지구 생존 가이드>를 저는 무척 좋아해요. “여신이 되기보다 사이보그가 되겠다”거나 “혈육 없이 친족을 만들자”는 언니의 선언들은 늘 제 가슴을 뛰게 하죠. 사실 언니의 글은 어려워요. 그래서 다 알 수 없는데도 아름답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어요. 시집을 읽듯 저는 언니를 읽고 또 읽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언니라 부르며 지면에 편지까지 쓰는 용기를 낸 건, 언니도 저처럼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을 아는 감각이 더 중요한 사람일 거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저는 언니가 픽션을 진실, 공존, 관계 같은 단어들로 설명할 때 짜릿함을 느껴요. 사실보다 진실에 가까운 허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생각은 스토리텔링으로 빚어진다”(<지구 생존 가이드>에서)는 말은 무너져가는 세계를 이야기가 구원할 거라는 말보다 더 믿음직스럽죠. 촉수 끝에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최근 몇 년 사이 SF소설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정확히는 SF소설가들을 좋아하게 되었죠. 왜일까, 이유를 더듬어가는 와중에 언니에게서 힌트를 얻었어요. “나의 사이보그 신화는 경계 위반과 융합의 잠재력, 위험한 가능성을 탐색하며 진보 정치의 자원을 찾아보는 것과 관련된다.”(『해러웨이 선언문』 중 「사이보그 선언」에서, 이하 같은 책 인용)
경계 밖으로 밀려나본 사람은 때때로 ‘경계’를 높이 솟은 벽이 아니라 깊게 파인 틈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그 속에는 기묘한 판타지가 도사리고 있죠. 그래서 “시스터 아웃사이더가 세계 내 생존의 가능성을 암시할 수 있는 힘은 순수성이 아니라 경계에서 살 수 있는 능력”이라거나 “우리는 경계에 책임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다” 같은 언니의 문장을 읽을 때 저는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게 돼요. 해체되고 연결되고 뒤섞이는 이야기를요. 언니의 SF 우화 「카밀 이야기」도 그렇게 어떤 경계의 틈에서 길어 올려진 것일지 모른다고 저는 멋대로 생각하고 있어요.
다큐멘터리 속 언니의 가족들을 본 뒤로 저는 종종 제가 갖게 될 새로운 친족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요. 보통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관계로 연결된 사람들과 개와 새들과 나바호 바구니까지, 언니는 언니가 말한 그대로 다양한 구성원을 친족으로 두었죠. 저는 지금 고양이와 식물들과 살아요. 이제껏 반려인은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상상해보고 있어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방식의 친족에 대해서요.
그리고 그렇게 연결된 타자들과 서로의 “이야기에 거주하면서 관계의 진실을 말하고, 진행 중인 역사 속에 공존하는 것”(「반려종 선언」에서)에 대해서도요.
도나 언니, 언니를 몇 번이고 언니라 부르는 동안 저는 아이가 된 기분이에요. 아직 시간이 충분할 것만 같고, 그래서 오지 않은 것들을 기쁘게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언니와 함께 실뜨기를 하고, 언니의 이야기 뒤에 제 이야기를 덧붙이고, 그렇게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 속으로 호명되는 순간을 상상해요. 가슴이 뛰어요.
- 무루 드림
*무루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안내자.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썼으며 『섬 위의 주먹』, 『마음의 지도』, 『할머니의 팡도르』를 번역해 국내에 소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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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루(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