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싶은 미래를 앞당겨 시도한다.”
윤여일 선생이 『광장이 되는 시간』에서 사회운동을 묘사한 문장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사람의 역사엔 살고 싶은 미래를 앞당겨 시도한 사람들과 사건들이 늘 있었고, 우리가 지금 사는 현재는 그런 무수한 시도들에 축적이자 결과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로 저는 읽었습니다. 한국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들이 그런 시도의 예일 수 있겠는데요. 오늘은 홍콩의 민주화 운동인 우산 혁명을 다룬 소설을 만나보겠습니다.
<인터뷰 – 조해진 소설가 편>
오늘은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는 순간을 사랑하는 소설가 한 분을 모셨습니다. 최근에는 “우리가 서로에게 ‘살아있음’의 증인이 되어주기를 희망”하며 장편 소설 『완벽한 생애』를 쓰셨죠. 조혜진 소설가님 모셨습니다.
황정은 : ‘작가의 말’에서 “『완벽한 생애』를 처음 구상하고 집필한 건 2019년 봄부터 여름까지였다”라고 밝히셨는데요. 2014년 하고 2019년, 홍콩에 큰 사건이 있었죠. 2014년에는 우산혁명, 그리고 2019년에는 송환법 반대로 시작했다가 홍콩 독립을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가 대규모로 일어나는데요. 이 두 가지 사건은 작가님의 이번 소설에서도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을 합니다. 2014년에 홍콩에서 우산 혁명이 실패한 과정이나 2019년 홍콩 독립 시위들을 보면서 소설을 구상하게 되셨나요?
조해진 : 처음에 2019년 여름에 『자음과모음』이라는 잡지에 발표했는데, 제가 청탁서를 다시 보니까 마감 날짜가 4월 20일이었더라고요. 그때는 아마 송환법 반대 시위가 조금씩은 있었지만 본격적이진 않았던 것 같아요. 단편소설에서는 거기까지는 담지 못했고. 말씀하신 우산혁명의 실패, 결과적으로는 실패라고 할 수 있겠죠, 결국엔 흩어졌으니까. 그래서 거기까지만 얘기했는데 소설을 발표하고 나서,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미정의 이야기가 더 쓰고 싶더라고요. 주변 인물이었는데 미정에 대해서 더 생각이 나고 더 쓰고 싶고, 제가 쓴 소설인데도 알고 싶더라고요. 미정에 대해서. 그래서 미정의 서사를 더 확장하면서 2020년에 '문학3'이라는 웹사이트에 연재를 했는데, 그 사이에 송환법 반대 시위가 엄청 커졌고, 그걸 또 안 담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그 얘기를 썼는데, 출간까지도 1년이 걸렸어요. 중간에 단편집도 내야 됐고 소설도 정리하느라고. 또 1년 사이에는 보안법이 생기면서 사실상 홍콩 사람들이 많은 것을 잃었죠. 자유라고 할 수도 있고 민주주의라고도 할 수 있고. 그런 변화가 있었어요. 한마디로 2년 사이에 홍콩은 그야말로 격변을 했고 외면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얘기들을 저도 공부하면서 쓰게 됐죠.
황정은 : 덕분에 저도 이번에 홍콩에서 일어난 일련의 민주화 운동들에 대해서 공부하는 기회가 됐어요.
조해진 : 감사합니다.
황정은 : 『완벽한 생애』는 방금 말씀하신 미정 외에도 윤주, 그리고 시징, 이렇게 세 명의 화자가 등장하는 소설입니다. 세 사람은 각자의 방을 떠나서 타인의 방을 빌려 머무르게 되는데요. 윤주가 비운 영등포 방을 홍콩에서 온 시징이 빌려 쓰고, 또 미정이라는 인물이 제주에서 남의 방을 빌려 쓰잖아요. 그 미정의 방을 윤주가 같이 빌려 쓰기도 합니다. 이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조해진 작가님은 떠도는 사람들 그리고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저는 알고 있어요. 여태 해온 작업들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조해진 : 네. 말씀하신 대로 디아스포라, 어떤 뿌리가 좀 흔들리는 사람들 아니면 경계에 있다고 해야 될까요, 그런 인물들에게 관심이 많고 쭉 써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타인의 공간에 깃드는 그런 설정도 이전에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이나 『여름을 지나가다』 이런 소설들에도 많이 나왔었고 단편 소설에도 있었고. 타인의 공간에 머물면서 그 타인을 상상하면서 이해하는 그런 이야기에 매혹을 좀 느끼는 것 같아요. 그냥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그 사람의 어떤 공간에서 그 사람을 상상하면서 알아가는, 그리고 결국에는 스스로도 돌아보거나 변화하는 그런 이야기에 좀 매혹을 느끼는 것 같아요.
황정은 : 이런 인물들이 타인의 방에서 타인의 삶을 상상하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할 기회를 갖는 것 같더라고요.
조해진 : 그렇죠. 소설에서도 시징이 윤주의 방에 머물면서 예전의 사랑을 좀 떠나보내는,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자신의 나라(홍콩)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더 깊이 연루되게 되고. 또 윤주도 미정과 제주에서 한 시절을 보내고 나서 예전의 직장 사람들에게, 물론 시징과의 어떤 소통도 있었지만, 전에 직장에 다녔을 때 자신에게 모욕을 준 사람들에게 사과를 요구할 만큼의 용기를 얻은 것 같아요.
황정은 : 세 사람 중에서 미정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미정은 신념을 고민하는 인물입니다. 소설 속에서 이런 얘기들이 나와요.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변호하거나 확신하지 못하는 자기 모순’, ‘그 끝을 확신할 수 없는 신념은 애초에 갖지 않아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애쓰며 투신할수록 엉망이 되는 게 두렵고, 그래서 윤주가 제주2공항 건설 문제에 관심이 생겼느냐고 묻자 미정이 ‘관심이 없으면 안 되냐’ 하고 되물을 뻔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속으로 ‘신념 없는 활동가로 사는 것이 나쁜 것이냐’라고 반문을 합니다. 저는 이 말이 조해진 작가님의 고민으로도 읽혔거든요.
조해진 : 네.
황정은 : 조해진 작가님은 사회적 역사적 폭력과 개인에 대해서 계속 써오셨고 또 현장에서 자주 함께하게 도하셨는데요. 그 과정에서 미정과 비슷한 질문을 품고 비슷한 감정을 겪으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조해진 : 어떤 신념에 대해서 투신하고 또 투명하게 진심을 가질수록 더 고민이 커지는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미정처럼 신념이 큰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자격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도망가려 한 적도 너무 많고, 쑥스러워하고, 오히려 용기가 많이 부족한 사람인데. 미정이라는 인물을 그리면서, 미정이 갖고 있는 그런 신념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흔들릴 때 다른 사람보다 더 마음이 크게 요동치는 모습을 느꼈던 것 같아요. 세상이란 곳에서는 진심일수록 더 상처받을 수도 있구나, 이런 거를 저도 더 많이 쓰면서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미정이라는 인물에 저 자신을 투사하기엔 저는 더 작은 사람인 것 같지만, 미정이란 인물을 통해서 신념 그 자체는 아름답지만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신념은 오히려 공허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랬기 때문에 미정이 더 아름다운 인물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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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