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의 선택
코린 로브라 비탈리 글 / 마리옹 뒤발 그림 / 이하나 역 | 그림책공작소
이야기는 앙통이 수박을 도둑맞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앙통이 수박 밭을 아주 완벽하게 가꿔 놨어요. 이 완벽이 깨진 것은 한 통의 수박을 도난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앙통은 그 수박 하나가 계속 너무 신경 쓰여요. 이 생각이 점점 커지는 거예요. 그사라진 단 하나의 수박을 빼고는 너무나 탐스럽고 보기 좋은 수박들이 즐비해 있어요. 그런데도 앙통은 계속 그 한 자리가 신경이 쓰입니다. 작가는 이렇게 썼어요.
“누구나 말로는 앙통을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과 정성을 쏟은 무언가를 도둑맞아 본 적 없다면. 잃어버린 것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밤낮 없이 슬퍼해본 적 없다면, 누구도 앙통의 기분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급기야 앙통은 ‘내가 도둑맞은 그 수박 한 통은 다른 어떤 수박 한 통보다 탐스럽고 완벽했을 거야’라는 생각에 빠지게 돼요. 그리고 악몽도 꿉니다. 어떤 날은 도둑맞은 수박이 수박 밭 옆에 있는 목화밭으로 굴러가는 꿈을 꾸고, 그 다음 날은 찬장에 있는 수박을 생쥐들이 갈아 먹는 꿈을 꿔요. 또 다음 날은 꿈에서 도난당한 수박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사람이 보이는데, 그 사람이 바로 앙통 자신인 거예요.
앙통은 결심을 합니다. 의자를 하나 가지고 해가 저무는 수박 밭에 가서 비어 있는 한 자리에 앉아요. ‘난 여기서 자리를 지키고 수박밭을 지킬 거야’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밤이 깊어 가니까 사위가 고요해지고, 앙통이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견디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다가올 모든 밤마다 수박 밭을 지키고 싶지는 않다, 더 이상 악몽을 꾸고 싶지도 않고 화들짝 놀라서 잠에서 깨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저 모든 걸 잊고 푹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밤이 더 깊어지자 수박 밭 인근에 사는 길고양이들이 등장합니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잠에서 막 깨어난 고양이들은 밤을 완벽하게 보내는 법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라고 썼어요. 고양이들은 농기구를 넘어뜨리고, 자루에 담아 놓은 씨앗을 흩뿌려서 밤하늘에 막 날아다니게 하고, 밭을 막 헤집고 다녀요. 처음에 앙통이 완벽한 수박밭에 서 있던 장면과 달리, 앙통이 난장판이 된 수박밭을 보게 되는데요. 이때 어떤 걸 느끼게 되고,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되고, 무언가 생각하게 되는데요. 결말은 책에서 확인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한자(황정은)의 선택
앤 보이어 저 / 양미래 역 | 플레이타임
앤 보이어는 1973년에 미국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고요. 2014년, 41살 때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양측 유방 절제 해수를 받은 뒤에 아주 혹독한 항암 화학 요법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몸과 정신이 손상되는 경험을 하는 거죠. 후유장애를 앓게 되는데. 완치 소식을 들었을 때 저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해요.
‘앞으로 41년을 더 산다 해도, 즉 살아온 만큼 더 산다고 해도, 그동안 겪은 일에 대한 복수를 끝마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2019년에 자신의 투병 경험을 글로 적은 『언다잉』을 발표를 하고요. 2020년에 이 책으로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합니다.
저자인 앤 보이어는 『언다잉』에서 암과 투병과 질병을 앓는 몸, 그리고 그 고통을 둘러싼 사회적 거짓말들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예를 들어서 고통을 겪고 있는 몸에 관해서 가장 흔하게 하는 철학적 거짓말들이 있는데요. 고통은 형언할 수 없다, 고통에 전달 가능성은 없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고통을 겪느라고 일그러진 사람이나 동물의 표정을 보면 그걸 느끼잖아요. 앤 보이어는 (그렇게 타인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고, 그 고통 어린 표정을 기쁘다거나 행복하다거나 배부르다거나 이런 표정으로 오해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고통 어린 표정은 고통 어린 표정으로 틀림없이 보인다는 거죠. 이런 점만 생각해도 고통은 전달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라고 저자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누가 대체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고통은 말해줄 수도 없고 전달도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는 고통 받는 당사자를 고립시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실은 그 고통을 겪고 있는 당사자에게는 관심도 없는 그런 거대한 생각이다, 즉 이데올로기이고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이 앤 보이어의 입장입니다.
사실은 구체적인 항목을 예로 들어서 이 책을 소개하려고 하면 할수록 뭔가 범위가 협소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 책에 추천서를 쓴 전희경(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연구활동가)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결국은 ‘살기’에 관한 책입니다. 다잉(dying), 죽어가는 중이 아니고 죽지 않으면서(undying) 살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그 사는 방법이 이 책의 저자의 경우에는 결국 ‘쓰기’라는 것이고, 그래서 나온 책이에요.
이 책을 소개하는 말로는, 책 뒤에 실린 전희경 선생의 글이 가장 적당할 것 같아요.
“아픈 사람들은 각자의 외로운 장소, 자신의 몸을 살아간다. 그 삶은 쓰여야 하고 이야기되어야 한다. 이 외로움, 이 쓰기의 필사적인 충동을 이해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언다잉, 암 환자를 죽어가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체제에 대한 경고다.”
이 문단의 마지막 문장은 “이 책은 쓰기가 살기에 한 방법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입니다.
단호박의 선택
도대체 글·그림 | Lik-it(라이킷)
작가님이 ‘태수’라는 개랑 같이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길고양이가 눈에 밟히면서 하나 둘씩 밥을 주기 시작합니다. 그런 묘연으로 인해서 태수와 둘이 살던 집에 고양이 ‘꼬맹이’와 ‘장군이’가 들어오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 꼬맹이와 장군이와 태수와 살게 되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한 에세이집이라고 할 수 있고요. 중간중간 그림이 있습니다. 도대체 작가님이 만화도 그리기 때문에, 에세이의 내용과 같이 만화를 즐길 수 있는 책입니다.
길고양이들과 계속 연이 생깁니다. 관계가 생기고, 한 마리씩 이름이 생기고, 얼굴이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 도대체 작가가 묘류학자가 돼버린 거예요. 이 에세이는 사실 묘류학자가 고양이를 관찰한 ‘묘류학의 일기’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길고양이들이 살아남는가’에 대한 논문을 보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이 논문이 도대체 작가한테 밥을 주지도 않으며 학위를 주지도 않으며 자기의 생활에 뭔가 도움이 되지도 않아요. 그리고 주변에서는 이제 캣맘이나 캣대디라고 하면 ‘왜 쓸데없이 고양이 밥을 주느냐’ 이런 시선으로 바라볼 때도 있죠.
도대체 작가가 고양이 밥을 주기 시작했을 당시에 정서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안정된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요. 20대 내내 직장 생활을 했는데 직장생활의 어떤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그만두고 나서 프리랜서로 살고 몇 년이 지났지만 심히 살아서 이름이 날린 것도 아니었고,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었고, 미래가 너무 불투명한 거예요. 미래에 대해서 뭔가 답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울적해지잖아요.
그래서 고양이들을 챙기는 게 도대체 작가한테 위안이 됐대요. 상황이 상황이 아닌데, 희망이 있지도 않은데, 고양이를 돌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래도 적어도 이 세상에서 고양이 몇 마리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겠지, 그것으로 됐다.’
마지막에 나온 문장이 이 책을 쓴 이유가 될 것 같은데요.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길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듯 개도 고양이도 그럴 것입니다. 태어나 보니 개였고 태어나 보니 고양이였을 테죠. 그러고는 다짜고짜 개로서 고양이로서 살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이 친구들이 세상을 뜨면서 ‘한 세상 개로 살아보니 괜찮았다’, ‘고양이로 사는 것도 괜찮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줄 수 있다면 저는 오케이입니다. 태어났으니까 이왕이면 행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게 ‘이왕이면 행복하게 살아야지’ 하면서 고양이한테 밥을 주는 행위가, 결국에는 도대체 작가의 삶에도 영향을 줬던 거겠죠. ‘그렇지, 고양이도 이왕이면 행복해야 되니까 나도 살아가면서 기왕이면 행복해야지’라는 기분으로 좀 우울을 벗어날 수 있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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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