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세상으로
여린 바람을 타고
네 곁으로 어디에서 왔냐고 해맑게 묻는 네게
비밀이라 말했어
마냥 이대로 함께 걸으면 어디든 천국일 테니
- 엑소, ‘너의 세상으로’
소설 『너의 세상으로』는 노래 ‘너의 세상으로’와 같은 장면에서 출발한다. 창밖의 밤하늘에서 조그만 빛 하나로 떨어진 너, 그것은 불시착이 아니었으며, 어느 별의 반짝이는 사랑이었다. “저는 아이돌이 유니콘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팬들이 판타지적인 순수한 사랑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한다고요. 그 사랑에 언제든 함께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엑소이기를 바랐어요.” ‘너의 세상으로’가 수록된 엑소 1집에는 ‘Baby don't cry’도 실려 있다. 물거품으로 사라져야 했던 인어공주의 사랑이 아니라 인어공주를 자신의 세계로 데려올 수 없었던 왕자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보아의 ‘Listen to My Heart’로 데뷔해 190여 곡의 아이돌 노래를 작사한 조윤경이 작사법이나 에세이가 아니라 로맨스 판타지를 첫 책으로 내놓은 이유는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다. 끝내, 변함없이, 몇 번이라도 다시 빠질 수밖에 없는 사랑.
인스타그램(@cho_yk_cho)에 들어가봤어요. 사인 CD와 음원 소식뿐이고, 작사가로서 느낀 기쁨도 최소한만 노출돼 있었어요. “카이 님도 ‘reason’이 제일 좋다고 하셨어” 정도로만요.
극단적으로 조심하고 있어요. 요즘은 멤버 중 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면 팬들이 그 멤버의 목소리를 지운 클린 버전을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려요. 과거 영상에서 그 멤버의 모습을 블러 처리하기도 하고요. ‘아, 나 그 노래 좋아했는데…’ 정도의 가벼운 감정도 일으키고 싶지 않아요.
첫 책을 소설로 낸 이유를 묻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그것도 로맨스 판타지로.
처음부터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최애’는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지기도 하지만, 천천히 스며들 때도 많잖아요. 입덕 부정기를 거쳤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랑에 빠져 있다는 걸 알게 되죠. 저는 그 마음이 연애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여주와 남주의 이름이 끝내 나오지 않아요. 다만 ‘나’이고 ‘너’이더군요.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나’가 자신이라고 느끼면서 읽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너’는 우리 모두의 케이팝과 ‘최애’라고. 우리가 이래서 케이팝을 좋아하게 됐구나, 너는 그렇게 나의 ‘최애’가 됐구나, 그걸 확인하는 과정이 되기를 바랐어요. 그 과정에서 끝내, 변함없이, 몇 번이라도 ‘최애’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감정들을 긍정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제 몫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열두 곡의 노래를 들으며 하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구나, 내가 지금 그 사랑을 경험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는데…. 제가 제대로 사랑을 했군요.(웃음)
맞아요, 나의 ‘최애’를 사랑하는 과정이 순서대로 담긴 한 장의 앨범 같은 책이 되길 바라며 썼어요.
‘LOVE SHOT’이나 ‘러시안 룰렛’이 아닌 이유도 궁금했어요. 활동곡보다는 수록곡이 많아요.
‘이 곡 정말 좋았죠, 그렇죠?’ 하는 마음인 거죠.(웃음) 아는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팬들과 ‘덕토크’를 하는 마음. 또 하나의 기준은 ‘따뜻함’이었어요. 제가 마음먹고 ‘이 노래들로 한 편의 거대한 서사를 만들겠어!’ 하는 마음이었다면, 다양한 감정을 담은 곡들을 골랐을 거예요. 어두운 세계, 상처받은 마음, 좌절…. 이번에는 상처받지 않는 사랑, 두려움 없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최애’를 향한 우리(팬들)의 사랑이 그러하기를 바라니까요.
조윤경이니까 쓸 수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한 곡의 노래가 한 편의 판타지 소설, 나아가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경험을 우리에게 안겨준 사람이잖아요. ‘너의 세상으로’도 엑소플래닛으로 우리를 초대한 노래고요.
작사가가 아이돌의 세계관을 만들지는 않아요. 다만 회사에서 만든 세계관을 알고 쓰기도 하고 모르고 쓰기도 하는데, ‘너의 세상으로’는 그 팀이 엑소플래닛이라는 거대한 세계에서 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쓴 곡이에요.
아이돌 세계관이 펼치는 서사, 메시지의 방향성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어요. 작사가가 그 모든 일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영향력은 작지 않죠.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는 결국 언어잖아요.
팀마다 고유한 메시지가 있어요. 예를 들어 NCTdream은 팀명부터 ‘dream’이잖아요. 꿈을 이야기하는 팀이에요. 노래에 따라 어두운 정서를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저는 아이돌이 부르는 노래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린 친구들이 많이 들으니까요. 물론 팬들이 ‘저 노래처럼 생각할 거야’ 하고 마음먹지는 않지만, 조금씩 그 정서와 생각에 젖어들어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비록 현실과 조금 떨어져 있을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꿈을 꾸고, 언제나 함께할 것이고, 나는 너의 편이니, 너는 외롭지 않을 거라고, 힘을 내자고 말하고 싶어요. 판타지적 세계를 이야기하는 이유도 같아요.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지 말고, 세상이 정한 한계에 가로막히지도 말고, “거세진 맘의 떨림마다” “힘껏 날아오르자”(‘Rocket’, NCTdream 정규 1집 <맛>)는 거죠.
‘어른의 마음’이라니, 뜻밖의 이유가 있었군요.
단어를 고를 때 신중해져요. 친구들과 대화할 때의 제 언어는 스마트폰에 절여진 사람 태가 많이 나요. 하지만 제가 글로 쓴 언어는 어린 친구들에게 내보이기에 떳떳했으면 해요. ‘이런 어른이 돼야겠다’고 생각한 모델이 되기 위해 끝없이 자기 암시를 해요.
최근 발매된 디오의 솔로 앨범에서는 또 다른 마음이 읽혔어요. 오랜만에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가사의 위로를 받았어요. 조윤경이라는 작사가의 다음 챕터를 본 느낌이기도 했고요.
제가 시그너처가 분명한 작사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아름다운 글자와 발음 안에 차곡차곡 감정을 쌓아나가는 걸 좋아하는 건 사실이에요. 디오의 이번 앨범은 엑소의 디오, 아이돌 디오가 아니라 배우 디오가 들려주는 이야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배우 디오의 소년 같은데, 아직은 어른이 아닌데, 단단한 마음이 느껴지는 얼굴이 좋아요. 그런 사람이 하는 따뜻한 이야기, 공감대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오래 고민했어요. ‘나의 아버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보여주는 한 장의 그림을 떠올리며 썼어요. 멀고도 가깝고, 싫어하지만 닮았고. ‘다시, 사랑이야’에서는 이삼십대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노래가 이렇게 시작해요. “사랑을 주는 것도 사치 같고, 받는 건 더 까마득하고.” 이루어지는 사랑이 아니라 주저하는 사랑, 연애를 포기해버리는 감정. 그 마음이 지금의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의 모양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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