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비평 웹진이라는 정체성을 앞세워 <아이돌로지>라는 깃발이 펄럭이기 시작한 건 지난 2014년의 일이다. 그 중심에 대중음악 평론가 미묘가 있었다. 2000년대 말에서 2010년 초반까지 아이돌 음악의 퀄리티가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그때까지의 아이돌 담론은 연예 매체의 가십성 기사나 보도자료를 옮기는 수준에 머물렀다. 기껏 기존 비평 통로에 발을 들여도 진지함이라는 앵글이 허들처럼 놓여 있었다. 미묘 비평가가 떠올린 건, 팬들이 직접 매체를 만들고 각자의 전공과 관심사를 베이스로 깊이 있는 퀄리티의 글을 올리고 있는 해외 사례였다. 그리고 7년이 흘렀다. 지난해 편집장 타이틀을 내려놓긴 했지만, <아이돌로지>와 미묘 평론가는 여전히 아이돌 음악에 대한 분석적 비평을 성실하게 제출하고 있다. 그 기본 자리에 놓인 건, 아이돌 신을 향한 변함없는 따뜻한 시선이다.
아이돌 신, 케이팝 신에서 <아이돌로지>의 존재 이유를 포함한 현재의 소회가 궁금하네요.
중간에 <아이돌로지>가 욕을 많이 먹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 ‘잘하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글을 쓰는 필자가 많이 생긴 것, 비평 지향 매체에서 아이돌을 진지하게 다루는 걸 보면서, ‘우리가 아주 잘못 짚은 건 아니구나’ 싶었고요.
지난해 <아이돌로지>에 실린 ‘아이돌 세대론’이라는 글이 여기저기에서 언급되더군요. 아이돌의 데뷔 시기를 기준으로 세대를 구분한 글인데, “세대론이 케이팝-아이돌팝의 역사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분석 체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어요.
케이팝을 바라보는 국내의 시선, 케이팝의 시장 변모를 잘 담아낸 글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세대 구분은 <아이돌로지> 내부에서 합의한 결과는 아니고 필자가 제안한 방식이에요. 굳이 제 의견을 더하면, 팬이나 대중은 아이돌이 어디서 나타났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기획사에서 준비해 대중에게 선보이거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하거나, <프로듀스 101>처럼 팬들에 의해 선출되는 단계로 구분하는 방법도 있을 거라고 봐요. 음악적 스타일, 팀 구성의 원리, 아이돌을 둘러싼 주요 사건(동방신기 탈퇴, 2PM 박재범 사건 등)을 하나의 타임 테이블에 올려놓고 거기서 파생하는 분기점을 어떻게 묶어낼까 고민할 수도 있고요. 결과적으로 관심 대목과 관점에 따라 아이돌 세대 구분은 여러 가설이 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평론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아이돌 세계관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아이돌 세계관이 있다면요.
팬과 미디어와 투자자들이 혹할 수 있는 키워드들이 독특한 세계관이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그런 세계관이 있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풀어서 활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엑소의 경우에도 외행성, 초능력 보유, 평행우주 등 설정은 빼곡한데 뮤직비디오나 노래에서 성공했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요. 뭔가 느낌만 주는 것에 머무르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주소녀처럼 잘 활용하는 팀도 있지만, 아이돌 세계관이 정답이자 필수 요소라는 태도, 아이돌 모두가 반드시 지향해야 하는 가치인가에 대해선 의문이에요.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세계관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사례예요. 데뷔 초반에는 라이트노벨, 일본 서브컬처의 향취가 많이 나는 필터를 씌워서 절망적 세계관을 보여줬다면, 최근에는 이모(Emo) 사운드를 가져와서 현실적이고 구질구질하지만 화려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걸 보여줘요. 일관된 정조와 시선을 유지하고 있어서, 여러 앨범을 쭉 들으면 통일감 있고, 밀도 있게 보여주는 효과도 있고요.
2019년에 쓰신 『아이돌리즘: 케이팝은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소개글에 이런 문구가 있어요. “아이돌은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할리우드 시스템의 21세기 극동아시아판 변주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수식의 이면도 있을 것 같아요.
단언하긴 어렵지만, 팬들이 느끼는 실상에 비해 주먹구구가 많다는 점이에요. 할리우드 시스템이라는 게 고도로 시스템화된 매너리즘이잖아요. 그게 갖춰지진 않았죠. 아이돌이라는 종합 콘텐츠는 다양한 사람이 기여하는데, 작사가들의 노동력을 갈취하는 문제 등 선진화에는 한계가 있는 형태로 부피만 커진 것도 사실이에요. ‘극동아시아판 변주’라는 수식에는 ‘사람을 갈아 넣는다’는 현실이 포함되어 있고요. 물론 그 앞면에는 매번 다르고, 제약이 없는 새로운 발상과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케이팝의 힘이 존재하죠.
짓궂은 질문일 수 있는데, ‘최고’가 붙는 몇 개의 사례를 꼽아주실 수 있을까요? 가령 최고의 데뷔, 최고의 재능 같은….
짓궂고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1996년부터 현재까지 최고의 데뷔는 ‘오마이걸’. 사실 데뷔가 화려하지도 않았고 오랜 시간이 걸려서 정상에 오른 팀이에요. 당시에는 팀 이름이 의아했지만 데뷔곡 자체가 가진 팀 설정과 보여준 방식, 미니 앨범 전체의 음악적 조율도 정말 좋았어요. 자극적이지 않은 약간 보수적인 음악적 컬러, 품위를 지향한 사운드로 데뷔했을 때 한 방에 치고 나가기 어려워 모험일 수 있는데도 좀 더 굿 테이스트한 부분을 지향한 것 역시 점수를 주고 싶어요. ‘최고의 재능’은 지드래곤과 가인. 둘 다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게 강점인데, 중요한 건 그 맥락 속에서 미칠 수 있느냐가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노래를 잘 만드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선을 넘는 부분을 선택하는 결단력이나 돌파력이 진정한 재능이 아닐까 싶은데, 지드래곤과 가인은 기어이 그걸 해내는 사례들이라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애정 어린 시선으로 아이돌 신을 바라보면서 아쉬운 지점도 있을 것 같아요.
생산자들에 관한 부분이에요. 아이돌 시스템이라는 게 아이돌에 관계된 모든 걸 중앙 컨트롤하는 거잖아요. 의상, 노래, 뮤직비디오, 안무 스타일은 기본이고, 거기에 텍스트적인 부분도 컨트롤하는데, 문제는 통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에요. 아티스트 인터뷰나 보도자료에 최대한 안전한 이야기, 정해진 이야기만 반복하는데, 결국 내부 이야기를 좀 더 다양하게 알고 싶은 팬들의 입장에선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는 데 한계가 있는 셈이잖아요. 최근 흥미로운 점은 유튜브를 통해 작업기가 공개되는 사례인데, 레드벨벳이 앨범 작업기 성격의 영상을 공개하면서 녹음을 어떻게 하고, 어떤 안무 포인트를 뒀는지 자세하게 보여줬어요. 정답이 아닌 이야기, 관심을 가진 팬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실질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달 '서울신문'과 멜론이 함께 진행한 ‘케이팝 100대 명곡’ 선정에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혹시 추천 리스트 중 몇 곡만 귀띔해주실 수 있을까요?
전체적으로 여성 아티스트를 많이 추천했어요. 전략적인 투표를 한 셈인데, 1위, 2위곡을 생각한 게 아니라 하위권에 내려가지 않았으면 하는 곡에 표를 줬고요. 몇 곡 귀띔하면, (여자)아이들의 ‘라이언’,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현아의 ‘빨개요’, ‘버블팝’ 같은 곡이에요. 세대 구분에서 남성 아이돌 위주로 보는 경우도 있고, 시장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건 보이 그룹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그런 틈새에서 각개전투 하듯 나름의 의미를 확보하고 족적을 남긴 여성 아티스트가 존재해요. 투표에 임하면서 그런 방향점을 잡았는데 결과 역시 만족스러웠어요. 100곡 중 여성 아티스트의 노래가 51곡, 10위씩 끊어서 봤을 때도 상위권을 많이 차지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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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