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티 플레저를 은밀히 공유하는 순간이 있다. 신뢰할 만한 친구 입에서 <환승연애>라는 프로그램 이야기를 들은 것은 2주 전쯤. 헤어진 헤테로 커플 네 쌍이 나와서 새로운 연을 만들든 지나간 연을 붙잡든 썸을 타고 데이트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솔직히 친구에게 실망했다. 아니 대체 왜 그런 걸 봐? 그리고 분노를 터뜨렸다. 아직도 그런 연애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그리고 그걸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 지독한 연애 중심주의 사회! 그것도 헤테로 연애 중심주의 사회!
돌아온 주말 내내 나는 환승연애를 보는 데 내 시간을 바쳤다. 그리고 월요일 새벽, 마지막 직전회차를 보느라 기어이 밤을 새웠다. 그 대가로 한 주 동안 회사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1차 백신을 맞은 후유증이 뒤늦게 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금요일 6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가 막 업로드된 마지막 회를 보았다. 내 안에 내재화된 이 지독한 헤테로 연애 서사를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주휘야! 호민아!! 아이고 이 어리석은 놈들... 혼잣말을 하고 성을 내면서 남의 연애를 지켜보았다. 이별의 아픔에 함께 눈물을 흘리고, 새로운 만남에 함께 설렘을 느꼈다. 연애 감정에 속절없이 휘둘리는 출연자들의 말과 행동을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해석하고 촌평을 했다. 유튜브와 SNS를 찾아보니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특정 출연자를 지지하는 사람, A와 B의 커플링을 응원하는 사람, 안쓰러움과 실망감 혹은 배신감을 표출하는 사람 등 이른바 ‘과몰입’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내 곁엔 이미 너무 많은 연애들이 있다. 영화, 드라마, 만화, 음악 등 내가 접해 온 콘텐츠 속에는 수많은 로맨스들이 있고, 그것들로부터 모든 걸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애 강박을 학습시키고 이성애만을 부각시키는 콘텐츠들을 탓하는 것도 입 아플 지경이다. 하지만 환승연애처럼 새롭게 유행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한 차원 더 복잡해졌지 않나 싶다. 출연자들은 배우가 아니며, 작가와 연출의 역할은 존재하지만 어쨌든 그들을 움직이는 주요 동기는 실제 자신들의 관계와 역사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는 과잉 몰입하여 쾌감도 불쾌감도 더욱 격렬하게 느낀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제 와서 분석적인 척 해보지만 나도 그저 평범한 과몰입러 중 하나일 뿐이었다. 밀었던 ‘타코코’커플이 이뤄지지 않아 아쉬운 한편, 보현이는 호민이를 떠나길 참 잘했다 싶다. 그래서 시즌2는 언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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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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