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우, 조한진희 “아픈 몸이 기본값이 되는 사회”
글을 쓰면서도 환청과 망상을 겪으면서 끊임없이 했던 고민이었는데요.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웠는데 글이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까지 과연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가장 힘들었어요.
글ㆍ사진 신연선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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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조한진희, 박목우 저자‘잘 아플 권리’에 대한 통찰로 화제가 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조한진희. 그의 이야기는 2015년, 아픈 몸으로 살고 있는 동료들을 찾아 나선 때로 돌아간다. “소수자들은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질병과 함께 춤을’, 일명 ‘질병춤’ 모임을 시작한 그는 바로 이곳에서 아픈 동료들과 질병 서사 쓰기를 진행했다. 그 작업은 시간을 건너 『질병과 함께 춤을』이라는 책으로 묶였다. 책의 저자 다리아, 모르, 박목우, 이혜정은 모두 각자의 질병 서사를 솔직하고, 치열하게 기록한다. 조한진희는 “질병 안에는 사회의 모든 문제가 다 들어있다” “아픈 몸이 기본값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좋은 사회”라고 말했다.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가시화해야 해요

조한진희 작가님이 쓴 ‘들어가는 글’에서 작가님이 아픈 몸으로 살고 있는 동료를 찾아 나선 때의 이야기를 적으셨는데요. 아픈 나에게 다름 아닌 동료가 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얘기해보고 싶어요. 

조한진희 : 과거 여성단체에서 성폭력 상담을 할 때도 느낀 건데요. 피해자 자조모임을 하면, 그 과정에서 참석자들은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라는 감각을 갖게 되고요. 그로부터 아주 깊은 위로를 받아요. 나와 동질한 경험을 한, 동일한 혼란과 절망을 겪은 사람의 한 마디가 나에게 엄청난 힘이 되는 거죠. 이 사실을 여러 현장에서 목격했고요. 때문에 아픈 동료들도 만나면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저 역시 외롭고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위로 받고 싶었고요. 그래서 사람들을 찾고, 같이 이야기를 했죠.


조한진희 저자모임을 하는 내내 “질병 경험을 해석하고 설명할 ‘언어’가 중요하다는 결론”(13쪽)에 거듭 도달했다고도 하셨죠. 

조한진희 : 결국 언어가 없기 때문에 소수자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소수자가 언어를 만들어야 소수자성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이때 연구자들이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요. 그와 더불어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하고, 가시화해야 해요. 그러나 특히 질병 영역에서는 당사자들의 언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요. 때문에 일단 당사자의 언어를 모아야 거기서부터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박목우 작가님도 글에서 ‘자신의 삶’을 사는 다른 정신장애인 동료들을 만나고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115쪽)고 하셨는데요. 그때의 장면도 듣고 싶어요. 

박목우: 저는 누군가 정해준 금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었어요. 20대 때 강제입원의 경험을 하면서 그런 삶의 태도가 몸에 배었던 것 같아요. 정신병원을 나와서도 그랬고요. 더구나 의사는 “약을 먹으면 완치될 수 있다”는 말을 했으니까요. 완치가 되면 공부도 할 수 있고, 직업도 가지게 될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45년이 되도록 저는 여전히 공부도 하지 못하고, 직업도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였어요. 정신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내가 정신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 거예요. 그때 정신장애인 등록을 결심했고요. 비슷한 시기에 다른 정신장애인 동료를 만났죠. 너무 놀라웠어요. 누구는 연애를 하고, 누구는 시를 쓰고, 누구는 노동을 하고 있었어요. 삶이 있던 거죠. 그때의 마음은 정말 ‘가슴이 뛴다’고밖에 표현을 못할 것 같아요. 

박목우 작가님의 글은 나를 다 드러내기로 한 마음, 손 내미는 마음이 느껴지면서도 워낙 고백적이라 쓰면서 힘들진 않으셨을까, 생각했어요. 

박목우 : 사실 부모님도 “이 글은 주변에 추천 못 하겠다”고 하시긴 했는데요.(웃음) 책이 나오고 룸메이트에게 선물을 했더니 그 친구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어요. 제가 정신장애인 자립생활주택에 살고 있는데요. 함께 사는 친구가 말이 별로 없었거든요. 친구의 변화를 보면서 내가 뭔가를 솔직하게 내놓는 것이 타인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다만 글을 쓸 때는 과연 제 글이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줄지 부끄러움을 줄지, 계속해서 재게 됐어요. 글을 쓰면서도 환청과 망상을 겪으면서 끊임없이 했던 고민이었는데요.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웠는데 글이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까지 과연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가장 힘들었어요. 

 

박목우 저자워낙 사회 전체가 질병과 통증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하는 압박을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를 책에서는 ‘건강 중심 사회’라고 말하죠. 

박목우 : 정신장애인을 이상하고, 위험하고, 불길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사회로부터 추방시켜버리던 역사가 있었잖아요. 한 번도 정신장애인이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거나 권리를 위해 싸우거나 선거권을 획득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요. 이제 조금씩 그런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반가워요. 제게는 그 운동을 알게 된 것 자체가 엄청난 축복으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여전히 사회는 정신장애인을 병원에 보내고, 그 사람의 존재를 지우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우리 삶을 뒤흔드는 것은 생의학적 질병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사회적 태도”(21쪽)라는 문장이 떠올라요. 

박목우 : 정치인들, 언론 등에서 누군가를 비하하기 위해 번번이 ‘정신장애’라는 말을 사용하죠. 그게 너무 화가 나요. 무슨 일만 있으면 “정신 질환이 아닐까 의심된다”, “집단 조현병 발발이다” 라는 식으로 말을 하잖아요. <마인드포스트>라는 당사자 언론이 있는데요. 그때마다 반박 기사를 내고 있어요. 대부분은 사과를 하지만 안 그러는 정치인도 있죠. 누군가를 비하하기 위해 소수자를 비하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은 오히려 소수자에 대한 낙인을 강화시키는 거예요. 적어도 책임 있는 정치인이나 언론이라면 그런 언사는 피해주면 좋겠어요. 



아파도 괜찮은 사회를 만드는 게 좋은 사회

한편 나라는 존재 역시 이런 사회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갖고 있는 ‘건강 중심 사회적 인식’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조한진희 : 여성 안에도 여성 혐오가 있는 것과 같은 건데요. 저는 원래 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아침마다 수영 20바퀴를 돈 뒤에 출근하고, 주말에는 암벽 타고 그랬어요. 마흔이 되면 철인3종 경기에 나가는 게 꿈이기도 할 정도였죠. 그래서 투병 생활도 스포츠 하듯 한 거예요.(웃음) 표를 짜서 산책하고 그랬어요. 건강해져야만 내 삶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노력하면 반드시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은 곧 타인에 대한 엄격함이 됐어요. 가령 아토피가 있는 사람이 튀긴 음식을 좋아한다고 하면 속으로 ‘그러니 그렇지’라고 생각한 시간이 있었어요. 아픈 사람에게 생활 습관을 지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를 강연에서도 많이 하는데요. 저도 무심코 그런 생각이 올라오곤 해요. 아픈 것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것에 계속 문제제기 하지만 나 자신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구나, 생각할 때가 많아요. 

아픈 몸을 향한 차별의 말들이 너무 많죠. 듣기에 가장 불편했던 말은 뭔가요? 이런 말은 불필요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조한진희 : “노력하면 반드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어”라는 말인데요. 그게 응원의 말이라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건강을 회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주 많거든요. 그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내가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 노력이 부족해서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해요. 저도 그런 시간을 거쳤고요. 노력해도 건강이 회복되지 않으면 당사자는 자책하는 시간을 갖게 되기 쉬워요. 따라서 이 말이 응원의 말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하면 좋겠어요. 

박목우 : 누군가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간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죠. 그런데 누군가 환청이 들린다고 하거나 이상한 생각이 든다고 하면 그 사람 자체를 낙인 찍고, 배제를 해버리는 것 같아요. 정신장애인에 대한 이해도, 지식도 없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 같은데요. 당사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죠. 병리학적 시선만 있는 게 갑갑할 때가 많아요. 최근 WHO(세계보건기구)에서 ‘목소리 듣기 운동’을 공식 서비스로 인정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환정이나 망상을 목소리 듣기로 재해석 해내는 거죠. 당사자 운동이 그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잖아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 



책 뒷부분에 실린 ‘아픈 몸 선언문’ 가운데 “우리는 모드 아픈 몸이거나 아플 몸이다”(271쪽)라는 말이 있는데요. 무엇보다 이 말이 중요할 것 같아요.

조한진희: 지금 아프지 않은 사람도 연대자이자 조력자가 될 수 있고요. 그러다가 언젠가는 자신 역시 당사자가 될 거거든요. 저의 바람은 이래요. 질병이 있는 상태를 너무 비정상적으로, 특수한 일로, 예외적인 상태로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건데요. 생로병사가 우리 삶에서 다 살아나게 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해요. 물론 아픈 건 그렇지 않은 상태에 비해서 힘들죠. 하지만 누구나 아플 수 있고, 아파도 괜찮은 사회를 만드는 게 좋은 사회죠. 아픈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라면 결국은 다 함께 지옥으로 가게 된다고 생각해요. 질병, 죽음, 나이듦이 모두 마찬가지인데요. 노화도 삶의 일부고, 질병도, 죽음도 모두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평등한 사회, 좋은 사회가 되는 길일 거예요.

 


박목우 작가님의 “삶 노동”(111쪽)이라는 말도 뜻깊었어요. 사회 일원의 범위를 확장하는 개념이라 이 개념을 한국 사회가 더 폭넓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목우: 최근 조한진희 작가님 소개로 ‘돌봄윤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돌봄윤리는 인간을 상호의존적인 존재로 보는 데서 출발해요. ‘삶 노동’도 마찬가지 같아요. 중요한 건 관계성이고요. 근대사회가 구조화되면서 배제시킨 수많은 타자들을 다시 관계성 안에 놓고 이들을 환대하자는 거거든요. 그럴 때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억압들이 보이고, 숨죽였던 목소리들이 발화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픈 몸 선언문’에 누구나 의견을 보낼 수 있도록 QR코드를 수록하셨잖아요. 어떤 의도가 담긴 건가요? 

조한진희: 저는 2015년부터 자신의 질병 이야기를 사회에 꺼내면 좋겠다고 말해왔어요. 그래서 언젠가 “우리 사회에 소소한 질병 이야기가 더 많이 돌아다니는 장면을 보고 싶다”고 쓰기도 했는데요. 책을 읽는 즐거움도 있지만 분명히 쓰는, 발산의 즐거움이 있거든요. 그래서 ‘들어가는 글’의 마지막을 “이번에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차례다.”(23쪽)라고 적었어요. 하지만 글쓰기의 장벽을 크게 느끼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QR코드를 통해 들어오셔서 한 줄이라도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아픈 사람들이 직장에서 어떤 차별을 받는지,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하는지, 한 마디라도 해볼 수 있었으면 했죠. 그래서 이 책은 뭔가를 우리와 같이 하자고 손을 내미는 책인 셈이에요. 책을 읽고 ‘내 얘기도 해볼까?’ 라는 생각을 더 많은 분들이 하게 되시면 정말 좋겠어요. 

박목우: 아픈 몸으로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질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아픔이 고립되고 무가치하게 버려지는 경험이 아니라 자신을 긍정하고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자원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게 되면 정말 좋겠거든요. 무엇보다 아픈 몸이 더 이상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아픔으로 인한 실존적,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질병과 함께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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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몸들 기획 | 조한진희 편 | 다리아 모르,박목우,이혜정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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