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의 마음이든 타인의 마음이든, 마음을 돌보는 데 큰 관심이 없다. 몸의 병은 가벼운 감기만 앓아도 이상을 느끼지만, 마음의 병은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방치하기 십상이다. 우울증, 공황장애, 조현성 성격장애(은둔형 외톨이), 반사회적 성격장애(사이코패스), 자기애성 성격장애(나르시시즘), 번아웃 증후군 등 현대인을 괴롭히는 이 마음의 병들은 모두 초기에 돌본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외면하고 방치한다면 심각한 상태에 이르는 병이다. 이러한 마음의 병이 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내 마음’과 친밀해지는 것. 『친애하는 내 마음에게』는 문학(소설)으로 우리의 마음을 배우는 책이다.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 , 『멋진 신세계』, 『사랑손님과 어머니』, 『변신』 등 국내외 고전 문학작품 속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마음’을 알고 심리학 이론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문학작품으로 마음(심리학)을 이해하는 책’이라는 콘셉트가 신선합니다. 어떻게 이런 책을 쓰실 생각을 하셨나요?
사람 마음을 다룬 심리학 책들은 솔직히 일반인들이 읽기에 부담스럽죠. 가벼운 심리 에세이가 아니라면 쉽게 읽기 어려워요. 그런데 가벼운 에세이는 읽는 순간에는 좋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지식이나 개념이 남는 게 별로 없죠. 자기계발서도 그렇고요. 그래서 뭔가 교양으로서 지식도 남기고, 그러면서 적당히 몰입할 수 있는 친근한 책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문학은 독자 스스로 자기 자신을 등장인물에 투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심리적인 개념을 문학으로 풀어낸다면 재미와 심리학적 지식을 함께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잘 알려진 작품을 대상으로 하면 작품 이해의 부담을 줄이면서 문학과 심리학의 교양을 두루 쌓을 수 있겠다는 의도도 있었죠. 개인적으로는 몇 해 전부터 배웠던 심리학을 본래 전공인 문학과 연계해보려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문학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을 다루고 있습니다. 굳이 문학만이 아니라 영화도 그렇고 게임도 그렇죠. 특히 현실의 금기를 깨는 것일수록 흥미 있고 재미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욕망을 무의식에 억압해 둘 때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자기 안에 억압된 것들을 확인하게 되죠. 아, 나도 저런 낭만적 사랑을 하고 싶다. 아, 나도 저런 치열한 전투에서 의지를 불태우고 싶다. 아, 나도 저런 럭셔리한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식이지요. 문학은 우리 안에 감춰진 무의식을 바로 눈앞에서 보여줍니다. 그래서 자신이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마음을 알게 해줍니다. 예전에 학생들에게 수업할 때,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가 뭐냐고 묻고는 그게 바로 너의 무의식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학생들 중에는 자기가 미처 느끼지 못한 자신의 낭만적 성향, 우월의식, 콤플렉스, 심지어는 폭력성을 확인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문학작품은 자기 마음을 확인하게 해주죠. 그러니까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무의식에 숨어있는 마음을 찾아가는 일종의 고고학적 발굴 작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요즘 청소년이 겪는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할 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청소년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청년, 중장년 모두 비슷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보는데요. 지나치게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면 안전에 대한 욕구가 과도하게 커집니다. 강박적으로 자기 것을 더 쌓아두고 챙기려고 들죠. 이기적으로 변하는 겁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남이야 어찌 됐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기심이 들끓게 되죠. 당연히 경쟁이 치열해지고 한정된 목표를 얻는 것은 더 어려워집니다. 폭등하는 집값, 더 치열해진 양질의 일자리, 더 들어가기 어려운 상위권 대학. 모두가 불안이 만든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죠. 청소년들도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어요. 오히려 기존 세대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훨씬 크죠. 저는 우리 사회가 불안 지수를 낮추는 데에 사회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봐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사회안전망이 더 나아져야겠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기회가 많아야 하고요. GDP는 3만 달러를 넘겼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불안 지수는 계속 오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20년 넘게 학교에서 일하면서 잘못한 일이 많아 저를 거쳐 간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우선 큽니다. 제 자신이 불안이 높고 강박적인 성향이 있던 탓에 학생들을 지나치게 통제하려고 했던 일들이 부끄럽게 느껴지네요. 오래 전에 자해를 하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 학생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알고 보니 부모의 정서적인 학대를 경험하던 아이였습니다.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 자식에게 냉담한 부모였죠. 그 친구는 마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제제처럼 자기를 알아봐달라고 몸부림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깊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죠. 그래서 말해줬죠.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숀 교수가 방황하는 윌에게 말해주듯이 말이죠. 그 후로도 오랫동안 방황의 시간이 있었지만 다행히 그 친구는 정신적으로 성숙해졌고, 대학에도, 군대에도 잘 적응했습니다. 질책이나 분석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친구였습니다.
요즘 심리학과 뇌과학 등을 공부하신다고 하셨는데, 이런 공부가 실질적인 생활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심리학과 뇌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제 삶을 뒤바꿔 놓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강박이 심한 편입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거나 통제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런데 정작 강박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두 딸을 어릴 때 모질게 키웠죠. 다행히 문제를 깨닫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 심리와 이상심리를 파고 들었죠. 그리고 제 자신이 성격적으로 심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뒤로 두 딸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고, 학생들을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변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심리학은 그걸 가능하게 해주죠.
뇌과학은 청소년기를 겪고 있는 두 딸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어요. 영화 <지랄발광 17세>에서처럼 걸핏하면 짜증내고 충동적인 행동을 일삼는 10대들이 사실은 뇌가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10대들의 뇌를 들여다보자 두 딸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 후로 관계가 매우 좋아졌습니다. 심리학, 뇌과학은 삶을 변화시키는 좋은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지치고 힘든 현대인에게 위로가 될 만한 문학작품 하나를 추천하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문학작품은 제 책에 많이 소개되어 있으니, 문학이 아닌 책을 권해드립니다. 오래 전 출판된 책인데,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입니다. 루게릭병 선고를 받고 죽어가는 노교수 모리를 그의 제자가 방문해서 서로 주고받은 이야기를 책으로 옮긴 것이죠. 책 속에서 죽어가는 모리 교수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지금 스스로에게 목적과 의미를 주는 일을 하고 있느냐고?” 현대인들은 불안 때문에 강박적으로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하고 늘 지쳐 있죠. 그런데 그런 일이 과연 스스로에게 목적과 의미가 있는 일일까요? 명문대학 입학과 출세, 명예, 권력, 그런 것들을 추구하다 혹시 지쳐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것들을 얻지 못해서 실망감, 상실감에 빠진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그것들이 죽음 앞에서 큰 의미가 있을까요?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 그것들을 생각해본다면, 아마 사회경제적으로 스스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사소한 실패에 불과할 것입니다. 모리 교수의 말이 기억납니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면 어떻게 살지도 배울 수 있다는. 아마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친 일상에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내 마음에게』를 읽는 독자들에게 특별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 책을 안 읽은 사람은 많아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두고두고 보시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주제별로 나눠놨으니 한 번 읽기보다는 마음에 어려움을 겪을 때, 혹은 갈등이 심할 때, 뭔가를 두려워할 때, 강박이 심할 때,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지칠 때, 이럴 때 한 번씩 꺼내두고 곱씹으며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죠. 책꽂이에 꽂혀 있기보다 아무 곳에서나 펼쳐 들고 잠시 읽을 수 있는 책이라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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