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가 ‘다석 류영모’ 평전을 쓰다
『저녁의 참사람』은 세계에 좀 더 깊고 넓게 알려야 할 다석의 진면목을 추가하는 작업의 한 단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9.03
작게
크게


매일경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아시아경제 등을 거친 중진 기자로 각종 칼럼을 쓰고 다수의 인문교양서를 출간한 이상국 저자. 〈아주경제〉에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시리즈를 3년에 걸쳐 집필했다. 이상국 저자는 다석 류영모의 삶과 사상의 궤적을 짚어가면서, 종교의 참 기능과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선각자이자 K-영성의 독보적 모델이 류영모임을 깨닫게 되었다. 『저녁의 참사람』은 한국의 정신가치와 삶의 의미를 일깨운 대사상가 다석 류영모의 삶과 사상을 우리에게 알려주고픈 저자 이상국의 진솔하고 열정적인 고백이다.




다석 류영모는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인데요. 평전까지 나올 정도면 대단한 분인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룬 산업화·민주화의 스승이 바로 다석입니다. 제자 류달영, 김준은 ‘다석 사상’에 힘입어 새마을운동(농업근대화)으로 비롯된 산업화를 이끌었고, 민주화의 선두에 섰던 함석헌은 바로 다석의 씨알사상을 바탕으로 삼은 핵심 제자였습니다. 또한 ‘다석신학’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삶을 보여줌으로써 김교신과 같은 종교인을 비롯해 많은 지식인들의 우러름을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다석은 개화(開化)의 여명기에 태어나(1890)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은 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경험하고 돌아간(1981) 분으로, 고난의 시대 한반도의 ‘정신의 등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전의 제목이 ‘저녁의 참사람’입니다. 무슨 뜻인지 풀이를 부탁드립니다.

류영모 선생은 ‘다석’이란 호를 썼지요. 한자 ‘多夕’이란 말을 가만히 보면 ‘저녁 석(夕)’이 세 개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아침-점심-저녁으로 시간을 구분해서 살지만, 다석은 오직 ‘저녁’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식사도 하루 중에서 저녁 한끼 만을 하는 1일 1식을 40년간 실천했습니다. ‘저녁의 참사람’이란 말은 저녁에 참을 먹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참’이란 진리를 가리키기도 하고, 끼니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다석은 저녁에 한 끼 식사를 했기에 ‘저녁 참을 먹은(eat) 사람’이며, 또 신을 깨닫는 진리의 시간을 누렸기에 ‘저녁에 참을 만난(meet) 사람’입니다. 바로 그런 이중적인 뜻의 제목입니다.

2008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철학자대회에서 다석이 한국의 대표철학자로 꼽혔다고 하던데요. 

세계철학자대회는 1900년에 시작된 국제적인 행사죠. 아시아에서 처음 개최된 것이 바로 2008년 대회였습니다. 학계에서는 한국 철학자를 소개하는 세션에 근현대사상가로 류영모와 함석헌을 내놓았습니다. 함석헌은 류영모의 제자였으니, 우리 철학과 사상의 국가대표가 바로 류영모였던 셈이죠. 『저녁의 참사람』은 세계에 좀 더 깊고 넓게 알려야 할 다석의 진면목을 추가하는 작업의 한 단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석을 ‘우리 말글의 성자’라고도 부르던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요?

우리는 한자나 영어, 일본어 같은 외국어로 된 학문을 받아들였습니다. 신학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다석은 ‘우리말로 신학을 해야 주체적으로 신을 접할 수 있는 우리 신학이 된다’고 봤습니다. 다석은 자신의 사상을 굳이 이름 짓는다면 ‘정음교(正音敎)’라고 불러달라고 할 정도였죠. 그는 성령을 ‘얼’이라는 우리말로 썼고, 얼이 절대세계에서 존재하는 모습을 ‘빈탕한데(허공)’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이 신과 합치하는 것을 ‘깨달음’이라 말했고, 광주의 영성이 뛰어난 것을 보고 ‘빛고을’이라 불렀습니다. 도덕경이나 천부경을 우리말로 풀어낸 것도 ‘사상의 얼개’자체를 우리에게 두려는 열정이었습니다. 그는 식민지 시대 이 땅의 3대 천재로 불릴 만큼 탁월한 사상을 전개한 분입니다.

다석 류영모

다석사상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신은 인간으로 태어난 독생자 예수에게 ‘너는 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신이고 너는 인간을 가리킵니다. 신과 예수는 DNA상 동일한 존재입니다. 신이 예수를 보내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는 모습을 세상에 전시한 까닭은, 육신의 인간을 벗는 순간 신과 합일하는 기적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은 인간에게 ‘너는 나’임을 증명했고, 예수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동일한 부름을 받는 존재임을 증언하는 자리였습니다. ‘너는 나다’라는 말이 바로 다석사상의 핵심입니다. ‘너는 나다’라는 참을 실현하기 위하여 인간은 상대세계 속에서 유일한 절대의 상징인 ‘얼(성령)’을 신에게서 부여 받았지요. 신의 얼을 지닌 인간은 당연히 신과 같은 영생(永生)의 존재입니다. 몸옷을 벗을 때 예수처럼 얼생명으로 거듭나 신의 자리에 합치한다는 약속, 그것이 바로 ‘너는 나다’입니다.

다석사상을 기독교 사상이라고 봐도 될까요? 기존의 신앙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다석은 15세 때 기독교에 입문을 했지만, 기독교가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강제하는 방식을 띠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석은 이런 방식이 오히려 신앙을 빈약하게 한다고 보았습니다. 다석은 집단 종교가 아니라 자율 종교를 추구했어요. 그는 동양 사상과 신앙을 연구하면서, 믿음을 향한 인간의 기반을 이루는 수신(修身)에 대해 치밀하게 프로그램을 짜놓은 것을 발견했어요. 즉 믿음의 하부단계인 ‘인간 영성의 함양’은 불교와 유교, 도교의 진리 탐구를 활용해 나아가도록 하고(신을 믿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의 신(덕)을 발견함으로써 신과 합일하는 영을 돋우는 것), 신앙의 골격이자 상부 단계를 이루는 신과의 접점과 영성의 합일은 기독교 신학을 중심으로 정립하여, 인류 보편의 신앙체계로 종교를 개혁하는 방안을 찾아냈습니다. ‘동서회통’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코로나시대의 고통과 혼란을 다석사상이 풀어줄 수 있을까요? 가치와 비전의 혼란을 겪는 청년들에게 다석의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으신가요? 

다석은 삶도 불안하고 죽음도 불안한 전환기에, 강건한 인간 영성을 돋우는 ‘삶의 가치 경영’을 말하고 있습니다. 삶 속에서 시련의 뜻을 살피고 그 속에서도 참(불멸)의 약속을 믿고 인간성을 지키는 것이 생명의 뜻이라고 본 것입니다. 다석은 청년에게 하루하루를 세어보며 간절하게 살라고 주문합니다. 부여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여 과도한 물질문명이 불러온 재앙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주역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라, 대전환기 글로벌 시대의 별이 될 준비를 하라고 말입니다. 방탄소년단이 보여주는 따뜻한 인류애의 청년 리더십은, 한국 영성의 에너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은 자신의 DNA를 부여할 만큼 인간을 사랑하며, 아버지가 자식에게 말하듯 너는 나이며, 너의 길은 나의 길이라고 말을 합니다. 종교는 인간에게 가장 따스한 시선을 건네는 신의 얼굴입니다. 책 속에서 다석은 믿음으로 삶의 존엄을 실천하고 죽음의 단절감을 극복할 수 있다고 끝없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왜? 바로 너는 나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국

1961년 경북경주에서 태어났으며 매일경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아시아경제 기자생활을 거쳐 아주경제에서 논설실장을 맡아 글을 쓰고 있다. 시와 인물과 고전과 예술에 관심이 많아 『남자현 평전』 『옛시 속에 숨은 인문학』 『미인별곡』 『옛사람들의 걷기』 『눈물이 빗물처럼』 『추사에 미치다』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아주경제〉 곽영길 회장의 권유로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시리즈를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에 걸쳐 집필하면서 운명처럼 류영모를 만났다. 글을 쓰는 동안, 류영모와 함께 식민지의 암흑과 동족상잔의 전란을 살았고, 전쟁 이후의 혼란과 격동기를 압축 성장하듯 살아냈다. 류영모의 삶의 궤적을 보며 경탄했고 그의 사상을 알아가며 전율했다. ‘다석앓이’의 고해를 담아 『저녁의 참사람: 다석 류영모 평전』을 냈고, 이후 다석 관련 저술에 집중하여 『다석문답: MZ세대와 K영성을 논하다』, 『다석의 노래』 등을 준비 중이다. 



저녁의 참사람
저녁의 참사람
이상국 저 | 박영호 감수
메디치미디어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채널예스 #예스24 #7문7답 #저녁의 참사람 #이상국 #인터뷰 #류영모 #평전 #eBook
2의 댓글
User Avatar

leonard

2021.09.04

한국은 세계종교유교국.수천년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숭배.해방후 조선성명복구령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복귀.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국중 하나인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강점기를 겪으며 대중언론등에서 유교가 많이 왜곡되고 있음.

http://blog.daum.net/macmaca/3131

@동아시아는 수천년 유교사회입니다. 공자님 이전의 始原유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 이전의 구약성서 시대에 해당됩니다. 하느님(天).神明,조상신 숭배가 유교의 큰 뿌리입니다. 유교는 국교로, 주변부 사상으로는 도가나, 음양가, 묵가사상등이 형성되었고, 법가사상은 이와는 다른 현실적인 사상이며, 국가의 통치에 필요한 방법이었습니다(진나라때 강성하고, 유교나 도교와 달리, 한나라때 율령이 반포되어 이후 동아시아에 유교와 별도의 성격으로 국가통치에 활용됨).



@ Royal성균관대(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승계,한국 最古.最高대).Royal서강대(세계사반영,교황윤허,성대다음예우)는 일류,명문.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항거해온 패전국奴隸.賤民불교Monkey서울대.주권,자격,학벌없는 서울대.추종세력 지속청산!

http://blog.daum.net/macmaca/733

http://blog.daum.net/macmaca/2967
답글
0
0
User Avatar

leonard

2021.09.04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나, 서유럽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 초월자이십니다.

@ 공자님의 시호. 하늘이 보내신 성자이신 성인 임금 공자님은 황제 칭호인 문선제(文宣帝).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圣文宣王)의 오랜 전통으로 호칭되어 오고 있습니다.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신 공자님. 참고로 하면, 공자님 아버지 시호는 계성왕(啓聖王)이시고 공자님 어머니 시호는 계성왕 부인(啓聖王夫人)이십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주권없는 패전국잔재 奴隸.賤民이자, 하느님.창조신을 부정하는 Chimpanzee계열 불교일본서울대Monkey와 추종세력들이 학교교육 세계사의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윤리의 종교교육 유교, 국사등과 달리, 일본강점기때 일본이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했으니까, 유교가 종교아니라고 최근 다시 왜곡하는데,이는 일제잔재 대중언론에 포진하여 루머수준으로 유교에 도전하는것임.한국은 미군정때,조선성명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국교 유교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임은 변치않으며 5,000만이 유교도임.@인도에서 불교도는,불가촉賤民.조계종승려賤民한국과비슷.강점기 하느님에 덤비며(창조신내리까는 부처처럼)유교부정,불교Monkey일본.하느님보다높다는 성씨없는 일본점쇠賤民.후발천황(점쇠가 돌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옹립.
답글
0
0
Writer Avatar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Writer Avatar

이상국

본명보다는 인터넷 블로거들 사이에서 '빈섬'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빈섬'은 조회수 100만을 훌쩍 넘은 히트 블로그의 운영자인 그의 아이디이다. 빈섬이라는 아이디는 사랑이 지나가는 허탈(빈)과 사랑 한복판의 고독(섬)을 뜻한다. '빈섬'이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한 때 '이솜'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추사가 태어난 지(1786년 6월3일) 175년 1개월째 되던 날, 빈섬은 경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추사가 태어나던 날 우물물이 마르고 예산 오석산과 팔봉산의 나뭇잎들이 일시 시들었다고 하는데, 빈섬이 태어나던 저녁답은 경주 남산이 표정 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만 모친의 꿈에 봉황이 집 앞의 오동나무에 앉았다가 무지개를 타고 붉은 하늘을 날아올랐다. 어린 시절 추사는 예산 화암사를 드나들었지만, 빈섬은 경주 불무사佛無寺에 이름을 올렸다. 한 스님이 와서 어린 빈섬을 보고 불문佛門에 들면 한몫을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10세 때 추사는 박제가를 스승을 삼아 북학을 배우기 시작한 그때 빈섬은 초등학교에서 공부의 즐거움을 가르쳐준 김무열 선생을 만났고 그림과 만화에 심취해 있었다. 추사가 연경에 가던 25세 때 빈섬은 군에서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해서 연애에 빠졌다. 그가 초의를 만나던 30세 때, 빈섬은 결혼을 했고 신문사를 옮겼다. 북한산 순수비를 발견하던 31세엔 빈섬은 언론의 역할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32세 때 4월 29일 추사가 경주에 와서 무장사비 비편을 발견하던 날, 빈섬은 서울에서 신문사 야근을 하느라 바빴다. 추사가 규장각 대교가 되는 38세에 빈섬은 호암아트홀에서「세한도」를 만나고 이후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추사는 두 번 결혼을 하고 첩을 하나 두었으나, 빈섬은 한 번 결혼을 해서 그 아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추사의 인생시계로 보자면 지금은 효명세자 시절 피어났던 그의 정치적 꿈이 좌절된 뒤, 재기를 모색하는 때이다. 부친이 귀양을 간 뒤 그는 궁궐 앞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억울함을 알리는 꽹과리를 울렸다. 그런 오기와 격정의 시대에, 빈섬은 신문의 위기를 맞아 한 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 시와 역사를 공부하고 신문과 책들을 읽으며 잠을 줄여 글을 쓰면서 나름의 문제의식을 벼르고 있다. 그리고 김노경이 풀려나는 9월 이전에, 빈섬은 추사를 쫓아다닌 10년의 흔적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고 있으리라. 현재 한국언론재단의 편집 전문 교수로 10여 년째 활동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에서 편집 강의를 맡았고, 2009년 하반기부터 건국대학교에서 스토리텔링 강의를 한다. 현재 중앙일보에 정기 칼럼을 쓰고 있고, 월간중앙의 기획 취재와 편집을 맡아서 하고 있다. 신문사의 컨설팅도 하러 다니고, 블로그네이버'옛날다방'http://blog.naver.com/isomis에 글도 부지런히 쓴다. 같은 경주 출신인 아내와 재기 발랄한 딸 둘, 속이 넓은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저서로 『누드김밥의 노래』, 『러브레터 읽어주는 남자』(이상 산문집), 『옛 공부의 즐거움』, 『추사에 미치다』, 『눈물이 빗물처럼』(역사서), 『신문, 세상을 편집하라』, 『1인 미디어, 기획에서 제작까지』『옛 사람들의 걷기』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