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마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을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어쩌면 당신이 찾고 있는 것
당신을 찾고 있는 것
둘 다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이문재 시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당신을 찾고 있다」
『혼자의 넓이』 52~53쪽
왓챠 파티를 아시는지? 시대의 변화와 기술의 진보에 따라 삶의 모습은 달라진다. 바야흐로 혼자의 시대인데다 밀집과 밀폐를 꺼려하게 되면서,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도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OTT를 통해 혼자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혼자 보기 아쉬울 때, 같이 봐요, 우리!라는 슬로건이 말해 주듯 왓챠 파티는, 같은 영상 콘텐츠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채팅할 수 있는 기능이다. 철저하게 개인화된 감상이라는 이전에 없던 트렌드가, 내가 느낀 재미와 공포를 타인과 즉각적으로 공유하거나 확인하려는 새로운 트렌드로 이어진다. 트렌드는 끊임없이 변하니까 트렌드다. 그래서 트렌드를 지나치게 중시하다 보면 언제나 트렌드의 뒤꽁무니만 쫓게 될 수밖에 없다. 내가 보고 싶을 때 내가 있는 곳에서 나 혼자 보고 싶은 것도 인간이요, 내가 보는 것을 누군가와 같이 보면서 같이 웃고 같이 놀라고 같이 공감하며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찌하여 이다지도 트렌드에 집착하는 걸까. 소비의 트렌드, 패션의 트렌드, 컬러의 트렌드를 넘어 레저의 트렌드를 따라 차박과 써핑에 관심이 가고 디저트의 트렌드를 좇아 민초단인지 아닌지 서로에게 묻는다. 예전에는 캐롤이나 구세군의 자선남비 같은 것들로 한 해의 끝자락을 실감했다면 요즘은 내년의 트렌드에 관한 책이 서점에 깔리자마자 곧 베스트셀러 자리에 등극하는 놀랍지도 않은 소식을 들으며 한 해가 가는 구나 안다.
법칙은 또 어떤가. 드라마나 영화가 크게 성공하면 우리는 찾으려 한다, 흥행의 공식을. 주식에 성공한 사람에겐 주식투자 대박의 법칙을 묻고, 유명한 작가에게선 글 잘 쓰는 법칙을 알아내고 싶어 한다. 예스24에 들어가서 법칙이라 검색어를 쳤더니 마음의 법칙, 인생의 법칙, 말하기의 법칙, 브랜딩의 법칙, 다이어트의 법칙, 오만 가지 법칙에 관한 책들의 리스트가 끝도 없다.
트렌드는 남들의 경향과 대세에 대한 강박이고, 법칙은 쉽게 지름길을 찾으려는 욕망이다.
광고계 최신 트렌드는 무엇입니까? 성공하는 카피라이팅의 법칙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같은 질문을 받으면, 나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김밥 생각이 난다. 지금은 없는, 성산동의 순진김밥.
순진김밥은 카피라이터 후배가 낸 김밥집이었다. 후배는 김밥집을 시작하기 전에 창업의 트렌드나 성공하는 판매의 법칙 따위 검색조차 하지 않았다. 맛있기로 유명하다는 다른 김밥집의 맛과 메뉴를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김밥집을 하기로 한 이유의 팔할은 그저 자기가 김밥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김밥집에 흔한 참치김밥이 그곳엔 없었는데 이유는 자기가 참치김밥을 싫어해서였다.
인테리어의 기본 콘셉트도 본인이 잡았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그곳에서 가장 오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였다. 답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기 자신이었고 김밥을 만들며 가장 오래 거기 있는 사람이 그 공간을 좋아해야 즐겁게 일할 수 있고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야 찾아오시는 분들도 좋지 않겠냐 하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광고를 만드는 현업에 있을 때도 일 잘하는 카피라이터였던 그는 촬영세트의 칼라와 톤을 결정하듯 세심하게 타일을 골라 바닥에 깔았고 본인이 좋아하는 영국 FM을 디자인이 예쁜 스피커로 틀어놓았다. 벽에는 줄을 맞춰 일러스트 액자를 걸었는데 김밥의 재료가 되는 당근이며 참기름을 아티스트에게 부탁해 일러스트로 받아 거기에 재치 있는 카피를 스스로 썼다.
이를 테면 깻잎 일러스트에 붙인 카피는 이렇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머리 중에서 가장 이쁜 머리는요 하버드 나온 수재의 머리도 아니고요, 헐리우드 배우의 금발 머리도 아니고요, 홍익여자중학생의 깻잎머리랍니다.” 우엉이나 오이나 어느 하나 안 좋은 카피가 없어서 하나만 더 예를 들고 싶다. “무지무지 좋은 사람들과 무지 사소한 이야기 나누며 무지하게 맛있는 거 먹는 삶. 그게 저 단무지의 꿈이에요.”
순진김밥은 어느 일요일에 멋진 갤러리나 소규모 콘서트장으로 변신하기도 했는데 후배가 인연을 맺은 아티스트들을 그 공간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다. 아니, 주인공이 아티스트였다고 하면 틀린 말이 될 것이다. 평소 순진김밥을 좋아하던 동네 주민들과 멀리서 찾아온 아티스트의 팬들과 여유로운 휴일의 햇살과 그 햇살 같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모두 함께 주인공이 되는 마법의 공간이었으니까. 폴 스미스의 후원으로 베를린과 파리에서 전시한 적이 있는 김시종 작가의 사진전, 『스페인 디자인 여행』의 작가 유혜영의 일러스트 전, 그리고 싱어송라이터 오소영의 콘서트 등이 그 곳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나는 지금 열 평짜리 동네 김밥집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상기해주기 바란다. 후배는 좋아하는 손님들의 사진을 직접 찍고 동의를 얻어 전시를 하기도 했고, SNS에 #오늘의손님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긴 이야기들을 올리기도 했다. 듣자니 그걸 보고 아주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손님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네이밍 얘기를 빼놓을 순 없겠다. 오징어채무침이 들어간 김밥을 순진김밥에선 동해김밥이라 이름 지었고 소고기가 들어간 김밥은 시드니김밥이라 네이밍했다. 재료 중에 소고기는 호주산을 썼다는데 호주산 소고기가 들어가서 이름이 시드니김밥.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김기택 시인의 시를 떠올렸다. 굳어지기 전까지 저 딱딱한 것들은 물결이었다, 로 시작하는 시, 멸치. 밥상 위에 놓인 딱딱한 멸치에서 시인이 거대한 바다의 부드러운 잔물결들을 상상했다면 후배는 오징어채무침에서 동해로, 호주산 소고기에서 시드니로 유쾌하면서도 납득이 가는 상상을 펼쳐 네이밍에 담았던 것이다.
후배는 보여주었다. 광고 만드는 일이나 김밥을 싸는 일이나 어쩌면 다 같은 거라고.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집중해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내가 하는 일과 잘 연결할수록 내가 행복해진다는 걸 말이다. 내가 하는 일에서 내가 행복할 때 내 주변 세상도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니 트렌드나 법칙을 제 아무리 꿰고 있다 한들 자기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남을 보는 시선의 반만큼이라도 나를 들여다볼 일이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궁금해 하는 것의 반만큼이라도 나를 궁금해 할 일이다. 남들 다 아는 이야기, 책에 다 있는 것들은 남들도 나에게서 궁금하지 않다.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시작은 결국 나 자신이다.
이문재 시인의 시를 읽다가 생각했다. 내가 찾고 있는 것,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던 것, 어쩌면 그것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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