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로의 지옥이 되지 않기 위해서
소설은 스쳐가는 삶의 심상한 풍경들을 의미가 있는 듯이 의미가 없는 듯이 그려내고, 그 인생의 단면들은 쓸쓸하고, 아이러니하고, 때때로 웃긴다. 죽음 앞에서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부드럽고도 날카롭게. 그러니까,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글ㆍ사진 권은경(엘리 편집자)
202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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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에 어긋나는 책들이 있다. 내게는 『어떻게 지내요』가 그랬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나’는 암 말기 진단을 받은 친구를 만나러 낯선 도시로 간다. 어느 날 친구가 집으로 돌아온 나를 찾아와 불쑥 제안하기를, 안락사 약을 구했고, 평온한 곳에서 끝을 맞으려고 하는데 함께 있어달라고 한다. 나는 그 제안을 수락하고, 친구와 함께 떠나는데....... 처음 원고를 읽어 내려갈 때는 약간 의아했는데, 그때 나는 이 작가를 잘 몰랐고, 책 소개를 보고 안락사를 둘러싸고 갖가지 사건 사고 들이 펼쳐질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담담히,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장면 앞에 멈춰 서길 반복하면서 흘러간다. 소설은 스쳐가는 삶의 심상한 풍경들을 의미가 있는 듯이 의미가 없는 듯이 그려내고, 그 인생의 단면들은 쓸쓸하고, 아이러니하고, 때때로 웃긴다. 죽음 앞에서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부드럽고도 날카롭게. 그러니까,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그 심상한 풍경 속에서 흘러가버리고 마는 목소리들을 포착한다. 길거리에서, 술집에서, 평범한 대화에서 들려오는 스쳐가는 말들. 주로 나이 들어가는 여성들의 이야기인데, 따라가노라면 많은 것을 상실한 후에도, 상실해가는 와중에도 마지막에 다다르도록 진실과, 언어와 분투해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소설의 제목 ‘어떻게 지내요’는 시몬 베유가 한 말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웃을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어떻게 지내요?’ 하고 물을 수 있다는 뜻이다.” 원문인 프랑스어로는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라는 의미를 담은 안부 인사라고 한다. 말하지 않은, 말하지 못한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 그 고통을 살피는 것, 언어가 실패한다고 해도 질문하고 듣기를 계속하는 것, 그것이 곧 타인을 향한 사랑이라는 의미일 터다. 그렇게 애를 써야 한다고.

‘나’와 친구는 “모든 인간 경험을 통틀어 가장 고독한 경험”이 될 죽음을 향해, 함께하지만 어느 때보다 혼자인 채로 떠난다. 그러나 그 여정 속에서 두 사람은 말조차 불필요한 강렬한 유대를 쌓고 “난파당한 후 뗏목을 타고 표류하는” 두 사람처럼 서로에게 기대게 된다. 그렇게 결국,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고통은 무엇이냐고 묻고, 가망 없는 채로도 서로를 부여잡고,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묘사할 적확한 단어를 고르며, 애를 쓴다. 그리하여 우리 개인은 어쩔 수 없이 소멸하더라도, 이 세계만은 언제까지나 지속되도록, 서로의 삶이 지옥이 되지 않도록.



추천해주신 신형철 선생님은 두 번 내리 읽었다고 했는데, 나도 그랬다. 검토용 원고를 조금 읽다가, 어, 하고는 고쳐 앉아 다시 읽어 내려갔다. 덮고 나서는 뭐였을까, 곰곰 되씹게 돼서 결국 다시 손에 들었다. 예상에 어긋나게, 예상보다 훨씬 좋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오랜만에 누렸다. 이 책을 먼저 읽어본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더 많은 독자들이 시그리드 누네즈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기를, 이 책이 지닌 사려 깊은 성찰과 다정함에 위안받기를 바란다.



어떻게 지내요
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저 | 정소영 역
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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