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 수어
작년에 우연히 『수화 배우는 만화』를 읽고 수어 학원을 등록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수어를 배우는 과정을 글로 기록한 건 당시 동료 작가들과 <어떤요일>이라는 연재 프로젝트를 기획하던 때라서 자연스럽게 글로 쓰게 되었고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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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딴’ 시리즈의 첫 책 『수어 : 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이 출간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수화 동아리 언니들의 공연을 우연히 본 순간부터 수어의 매력에 빠진 한 사람이 어른이 되어 수어를 배우게 되면서 깨닫게 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담긴 에세이다.



책에도 짧게 쓰셨지만 작가님께서 ‘수어’를 배우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수어를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수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고등학교 수화 동아리 언니들의 공연을 보고 나서 였는데요. 이후에 수화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어서 오디션을 보았지만 탈락하고 난 뒤로는 기회가 없다가, 작년에 우연히 『수화 배우는 만화』를 읽고 수어 학원을 등록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수어를 배우는 과정을 글로 기록한 건 당시 동료 작가들과 <어떤요일>이라는 연재 프로젝트를 기획하던 때라서 자연스럽게 글로 쓰게 되었고요.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되면 그만두고 싶은 마의 구간이 찾아온다고 하는데요. 수어는 손짓은 물론 표정도 중요한 언어입니다. 수어를 배우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농인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만드는 게 지금도 가장 어렵습니다. 한국 수어와 한국어 문장의 어순이 같지 않기 때문에 한국어로 말하듯 수어 단어만 나열한다고 해서 의미가 전달되는 게 아니거든요. 영어 단어를 많이 알아도 영어 회화를 잘하는 건 아닌 것처럼요. 수어는 공간을 활용하는 시각적이고 입체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제가 농인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수어를 구사하려면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입체적으로 바꾸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반대로 수어를 배우는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면요?

수어를 배워서 칭찬을 해주고 싶다기 보다는 수어 입문반 수업이 평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였는데요. 거의 빠지지 않고 수업을 들었다는 게 뿌듯해요. 제가 아침잠이 정말 많거든요. 매일 아침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작은 성취인 것 같아요.

책 속에는 농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책과 영화들이 등장합니다. 농문화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 한 권, 영화 한 편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와 책 『목소리를 보았네』를 추천합니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농인 부모에게서 자란 청인 자녀인 이길보라 감독이 한국 사회에서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로 살아가면서 겪어야만 했던 일들과 감정, 더 나아가 농문화의 아름다움을 영상으로 전하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책 『목소리를 보았네』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잘 알려진 올리버 색스가 수어라는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고유한 언어를 알게 된 뒤 수어와 농세계에 완전히 매료되어 ‘덕질’하듯 적어 내려간 글입니다. 특히 농인을 위한 세계 유일의 교양학부 대학인 미국의 갤로뎃 대학에 방문해 생생한 수어의 현장을 옮긴 부분은 감동적이기 까지 하답니다.

두 작품 모두 의학적인 시선(귀에 장애가 생긴 사람)으로만 바라보던 청각장애인을 다른 시선(나와는 다른 언어 공동체에 속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추천합니다.

코로나 19 정례 브리핑의 수어통역사들을 통해 그리고 최근 BTS가 발표한 신곡 수어 안무 등을 통해서 수어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수어의 매력은 어떤 것인가요?

언어의 도상성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수어를 보면 지시체를 유추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비’가 내린다는 수어를 보면 수어를 모르는 사람도 ‘비’를 유추할 수 있어요. 특히 시간이나 자연을 표현하는 수어에서 이 매력이 잘 드러나는데요. 수어로 ‘1년’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공전의 과학적 개념을 그대로 시각적으로 표현해서 특별히 좋아하는 수어랍니다.

취미로 수어 배우기 이외에도 영화 에세이스트, 책방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이유와 해낼 수 있는 작가님의 동력은 무엇일까요?

감정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수어에 있어서는 좋은 성격이라고 할 수 없지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해야 할 때는 어떤 일이든 ‘그냥 그래’의 스탠스를 유지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크게 기대하거나 실망하지 않는 태도. 기쁨과 슬픔도 적당히.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 아니고) 일곱 번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정도의 힘이 ‘그냥 그래’의 스탠스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수어는 수지기호(손)와 비수지기호(표정)를 동시에 사용해야만 의미가 정확하기 때문에 수어를 배울 때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성격이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수어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요?

희망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어요. 수어를 공부하면서 발견한 단어이기도 한데요.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요즘 세상에도 곳곳에서 차별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청각장애인의 일자리를 창출한 ‘고요한 택시’, 인식의 거리를 예술로 채우는 아티스트 ‘지후트리’와 농인 극단 ‘핸드 스피크’, 영상 자막 서비스로 장애의 장벽을 허무는 ‘오롯’ 등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행동하고 있다는 걸 수어를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수어를 매개로 알게 된 새로운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수어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쓴 책이니 이 책을 통해 여러분들도 ‘희망’을 발견하면 좋겠습니다.

  


*이미화

가까운 길도 빙 돌아가거나 길을 찾는 데 꽤 많은 시간과 체력을 낭비할 정도로 방향에 약하다. 삶의 방향도 마찬가지. 그럴 때마다 내비게이션이 되어준 건 영화였다. 회사를 그만둘 때, 베를린으로 떠날 때, 다시 돌아와 책방 문을 열 때도, 영화는 내게 인생에 여러 갈래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물론 그 길엔 아스팔트 대신 자갈밭이 깔려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계속 걸어갈 수 있었던 건 나처럼 평범하고 지질한, 영화 속 등장인물들 덕분이었다.



수어
수어
이미화 저
인디고(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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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