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든다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만큼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노화의 증거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이제 더 이상 괜찮아지지 않고 복원되지 않는 일들이 늘어간다.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도 늙어가고 뭔가를 돌아볼 사이도 없이 정신없이 달려온 세월이 원망스럽다. 『오늘부터 나를 돌보기로 했습니다』는 자기 몸이 보내는 신호를 듣지 못하고 전속력으로 달리던 50대 여자 사람이 삶의 속도와 방식을 바꾸기 위해 100일 동안 몸 쓰기에 대해 글을 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이미 노화의 물레 바늘에 찔렸다”로 시작하는 프롤로그가 정말 인상적이에요.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았던 시간들에 대한 반성과 돌아보는 과정이 진솔하게 담겨 있습니다. 성공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고 사소하게 매일 나를 돌보고 챙긴 이야기라고 예고하고 계시는데 이 책을 쓰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100일 글쓰기 첫 번째 시즌에서 제가 운동을 한 이야기에 대해 제 글벗들이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주었어요. 말이나 마음만으로 지지를 보내준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지지를 보내주었죠. 그 친구들도 달리기 시작했어요. 그중 한 명은 “당신의 달리기 이야기는 정말 멋지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달리고 돌아오는 자리에서 맛있는 것을 준비해서 기다리겠다. 달리기는 이번 생에 내가 할 일은 아니다”라고 몇 번이나 선언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 사람이 돌연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하더니 얼마 뒤에는 달리기를 시작하더라고요. 100일 동안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가 달린 이야기를 읽었더니 자기도 달리고 싶어졌다고, 그리고 달리기를 해보니 삶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했죠. 이 이야기는 우리끼리만 볼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책으로 나오면 비슷한 처지의 지인들에게 운동 권유 선물로 주고 싶다고 저의 등을 떠밀더라고요. 그래서 썼죠.
작가님의 글에는 누군가를 설득하고 동기부여를 하겠다는 욕심 자체가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솔직해도 될까 싶은 구절들도 많고요. 그런데 읽다 보면 달리고 싶고 글을 쓰고 싶어집니다. 이 책을 쓰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염두에 두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생의 대부분은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실은 사소한 것들이 대단한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을 꾸준히 해보라고 ‘강력하게’ 설득하는 책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요?(웃음) 저는 ‘100일의 설득’을 생각했어요. 제가 비루한 달리기로도 큰 기쁨을 얻은 이야기를 100일 동안 읽은 친구들이 완전 넘어왔거든요. 비운동권에서 운동권으로. 제 책의 독자들 마음에도 슬금슬금 스며들어 많은 독자들이 생활 운동인으로, 매일 글 쓰는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득 담았어요. 읽다보면 달리고 싶고 글을 쓰고 싶어진다고 하시니, 저 성공한 건가요?
달리기를 중단하고 다시 시작하는 지난한 날들을 넘어 생활러너로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하셨는데요. 달리기가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자 생활이 되기 위한 팁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이를 닦거나 세수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고 있지는 않아요. 지금도 매일 달리지 않아도 되는 핑계를 찾죠. 달리러 나가는 일에 의지를 끌어 모으지 않아도 되었던 날은 하루도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전보다는 쉬워졌죠. 전에는 의지를 100만큼 끌어 모아야 했었는데 지금은 10 정도? 달리기가 생활에 완벽하게 녹아들도록 하는 비결이 있다면 제가 배우고 싶네요. 그래도 전보다 수월하게 달릴 수 있게 된 비결이 있긴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비루한 달리기’를 받아들이는 거예요. 어제는 30분을 달렸지만 오늘은 10분밖에 달리지 못할 수도 있고, 지난주에는 주 5일을 달렸지만 이번 주에는 주 1일밖에 못 달릴 수도 있어요. 그래도 ‘달렸다’는 것 자체에 주목하면 계속 달릴 수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 계속 저에게 당근을 줘요. 이번 달에 10회 이상 달리면 새 운동화를 사겠어, 하는 식으로 말이어요. 채찍은 절대 금지! 저는 매일의 힘겨운 노동 틈새에 운동을 끼워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영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 담아두신 글쓰기에 대한 팁들이 매우 실제적이고 유용합니다. 작가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글쓰기 비법을 간략하게 말씀해주세요.
생각이 머리에서 맴도는데 글로 꺼내놓으려고 하면 잘 안 되서 고통스러웠던 경험,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을 거예요. 이럴 때 사람들은 글쓰기 스킬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글쓰기 비법을 담은 책을 찾거나 글쓰기 강좌를 찾죠. 하지만 많은 경우, 그건 생각이 부족해서거든요. 그렇다면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글을 쓰면 안 되는 걸까요? 그럴 리가요. 신기한 것은 그 생각이라는 것이 글쓰기를 통해 정리되고 풍부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 무조건 쓰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완성된 문장으로, 일정한 분량을 채워서 쓰세요. 스킬은 나중 문제죠.
그리고 일기가 아니라면, 쓴 글은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게 좋아요. 글은 소통의 도구예요. 단 한 명일지라도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면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담아 대충하는 글쓰기’처럼 글쓰기 팀을 만들고 함께 쓰는 것이 최고죠.
달리기와 글쓰기를 함께하게 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그 두 가지를 함께해야 했었던 이유도 궁금하고요.
우연이었죠. 달리기를 하고 있었는데 글쓰기를 하게 되었고, 당시 제 관심이 오직 달리기에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쓸 이야기가 그것밖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 달리는 이야기를 100일 동안 쓰게 된 거예요. 당시 저는 어떻게 해야 꾸준히 달리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정말 간절하게 알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글로 쓰니까 정말로 꾸준히 달리게 되더라고요. 달리고 오면 그걸 자랑하고 싶어서 꾸준히 글을 쓰게 되고요. 정말 중요한 인생의 무림비급을 몸으로 깨쳤죠. 아, 간절히 원하는 일이 있다면 그걸 꾸준히 글로 쓰면서 실천하면 되는구나.
글벗들과 함께 100일 동안(이후로도 쭉) 달리기도 하시고 글도 쓰셨습니다. 자신을 돌보는 것에서 시작해 타인의 삶에도 그 모습이 흘러가고 함께 연대하는 모습에 가슴이 두근대더라고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연대하는 삶, 특별히 여성들끼리의 연대하는 삶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누군가와 어떤 일을 함께 한다면 그건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서는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여행은 하고 싶은데 혼자서는 여행할 수 없어서 친구를 찾는다거나 혼자 식당에 밥 먹으러 갈 수 없어서 밥 친구를 찾는 마음은 곤란하다는 거죠. ‘혼자력’은 필수적인 능력이죠. 그렇지만 홀로 서기가 고립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나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힘으로만 살아가겠다, 이런 식이어서는 곤란하죠. 저는 상대방에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내미는 손을 덥석 붙잡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잖아요? 그러니 폐 안 끼치고 살아가겠다, 하는 고고한 마음보다 남에게 폐도 끼치고, 남이 폐 끼치는 것도 잘 받아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연대 아닐까 싶어요.
특히 자기만의 방을 욕망하는 여자들은 연대할 수밖에 없어요. 세상은 여전히 여자들에게 불친절하고, 우리가 하는 일들은 대부분 전례가 없는 일들이거든요. 보통의 우정에서 특별한 연대로 나아가고 싶다면,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하고 진행해보기를 권해요. 상대방의 눈물을 닦아주는 우정도 좋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을 내공을 쌓아가는 연대는 더 좋거든요.
오늘 하루, 작가님이 자신을 돌보기 위해 하신 일이 있다면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다시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장마가 시작되어 계속 비가 내려요. 자꾸 마음이 꾸깃꾸깃해지는 일요일이지만 저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안양천을 따라 39분 동안 달렸어요. 달리면서 생각했죠. 내가 달리기를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하고요. 달리기는 역병의 시대에도 계속할 수 있고, 비 내리는 장마철의 반짝 틈새에도 할 수 있으니까요.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공들여서 천천히 스트레칭을 해요. 오늘도 달렸다, 라는 만족감이 온몸에 스며들어요. 보송보송해지는 기분. 이럴 때 저는 저를 조금 더 좋아할 수 있게 되죠.
그리고 친구들과 매일의 운동을 인증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해보았어요. ‘마음을 다해 대충하는 달리기’ 정도 될까요? 따로 운동하지만 함께 인증하는 팀이죠. 재미있을 것 같죠?
*박현희 사소한 일들이 쌓여 분명 무언가가 된다는 믿음으로 매일 몸을 쓰고 글을 쓴다. 고등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고 희곡 낭독 모임을 비롯한 여러 독서 클럽을 운영한다. 멋진 언니들과 신나는 일들을 작당하는 재미로 산다.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수상한 북클럽』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라면』 『나는 내 편이니까』 『상식이 정답은 아니야』 등 여러 책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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