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혜의 꽤 괜찮은 책] 문학하는 마음 - 『우리들의 문학시간』
다시금 문학을 사랑하게 된 나는 신입생 시절 지루하고 재미없는 고전 대신 이런 수업을 들었더라면, 그래서 문학에서 잠시라도 멀어지지 않았더라면 하고 안타까워하다 그만 졸업하고 말았다.
글ㆍ사진 한승혜(작가)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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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도 좋아하고 문학도 좋아하던 수험생 시절, 나의 진로 희망은 영어영문학과로 늘 명확했다. 영문과에 가서 좋아하는 작가들의 소설을 실컷 읽고 싶었다. 늘어나는 영어 실력은 덤. 그러나 막상 접한 영문과의 실상은 내가 꿈꾸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는데, 좋아하는 작가는커녕 고어로 가득한 길고 긴 시라든지, 도저히 해석이 안 되는 옛 문법으로 쓰여진 고전들을 주로 공부해야만 했던 것이다. 사람을 부를 때 왜 멀쩡한 ‘사람’이란 단어를 놔두고 굳이 ‘피와 뼈’ 따위로 지칭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일시적이나마 내가 문학에서 멀어진 것이. 이후 나는 “영문학 너무 싫어! 하필이면 왜 영문학따위를 선택해서는!”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전공 시간만 되던 죽을상 을 하곤 했다.

그렇게 문학을 가까이 해야 하는 문학도로서 문학에 치를 떠는 사람이 되어버린 내가 다시금 문학에 관심을 둔 계기는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졸업 학점을 위해 <현대영미희곡> 수업을 들으면서였다. 이름처럼 현대 희곡을 다루는 수업이었는데, 다른 학생들과 함께 작품을 읽고, 토론하고, 극중 인물이 직접 되어보는 과정을 겪으면서 사라진 줄 알았던 문학에의 흥미가 놀랍게도 되살아났던 것이다. 문학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인간은 왜 모순과 고뇌로 가득찬 존재인지를 생생하게 경험하면서. 그렇게 다시금 문학을 사랑하게 된 나는 신입생 시절 지루하고 재미없는 고전 대신 이런 수업을 들었더라면, 그래서 문학에서 잠시라도 멀어지지 않았더라면 하고 안타까워하다 그만 졸업하고 말았다.

물론 그로부터 또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안다. 지루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고전 또한 나름의 역할이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삶과 이어진다는 것을. 그러한 작품들도 연구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문학적 소양이 높지 않은 이에게 고전은 때로 강력한 훼방꾼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듣고 몸서리를 치는 이유도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학창시절 배운 문학이 너무 재미없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에겐 와닿지 않는 양반들의 충심 타령으로 가득한 시조와 가사,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사회구조를 그대로 답습한 소설들. 그런 작품만을 대하던 사람에게 문학이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하품 나오는 무언가의 동의어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좋아할만한 작품 위주로 접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문학을 경원시하는 사람들도 대학시절 내가 들었던 희곡 수업처럼 자신의 삶과 맞닿은 작품들 위주로 공부했더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워 읽게 되는 작품이 교재로 등장했더라면? 만약 그랬더라면 문학의 어감이 지금과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수능을 준비해야 하며, 그렇기에 교과서 위주로 공부해야 하는 대한민국 수험생들에게는 언감생심 꿈과도 같은 욕심일 테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처럼 꿈 같은 이야기를 실현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바로 고등학교 국어교사이자 『우리들의 문학시간』을 쓴 하고운 작가의 이야기다.



『우리들의 문학시간』은 하고운 작가가 과학고에서 3년 동안 국어를 가르치며 경험한 일들을 담아낸 에세이집이다. 과학고는 학교의 특성상 수능을 보는 학생 수가 많지 않고, 그렇기에 교과서 위주로 가르치고 공부해야 한다는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는데, 이 점에 착안한 저자는 교과서 없는 국어 수업, 그야말로 삶과 맞닿아 있는 문학 수업을 해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그렇게 교재는 자신이 평소 좋아하던 단편소설부터 영화 시나리오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고가며,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과제 또한 토론부터 라디오 단막극 제작까지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며 수업을 이끌어 나간다. 처음에는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하던 아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수업에 매료되고, 지루함과 따분함의 동의어이던 국어 시간은 새벽부터 한밤까지 공부에 시달리던 과학고 아이들에게 숨통이 트이는 작은 창구가 되어준다.

여기까지 듣고서,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도 아니고 믿을 수 없어! 라고 외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모두 사실이다. <우리들의 문학시간>에는 3년 동안 울고 웃으며 번민하고 고뇌하는, 타인과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그 경계선과 접점을 깨우치며 성장해 나가는 교사와 학생들의 생생한 일상이 담겨 있다. 저자는 경쾌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아이들이 나와 비슷하지만 결코 같지 않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나와 다른 줄 알았던 누군가가 실은 나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고,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을 조심스레 그려낸다.

물론 수업이 늘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때로 수업에 불만을 품기도 하고, 저자 역시 그런 아이들에게 서운함을 느끼거나 교사로서 자신의 능력에 좌절을 거듭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지점은 끝끝내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저자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문학 수업을 계획하고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기르는 것. 나와 다른 타인을 끌어안으려고 애쓰는 것. 비록 실패할지라도 다시금 시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 그야말로 저자가 문학을 통해 배운 좋은 것들을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 문학하는 마음. 그 마음 덕분에 3년간 그에게서 문학 수업을 들은 아이들은 타인과 세상을 사랑하는 어른으로 자랄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졌는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이 책을 다 읽고난 뒤의 나도 조금쯤은.



우리들의 문학시간
우리들의 문학시간
하고운 저
롤러코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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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혜(작가)

작가. 에세이『다정한 무관심』,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