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들은 어른 키 세 배쯤 되는 대나무 말뚝과 수면에 앉아 있다가, 그물에 부딪혀 튀어 넘는 새우를 잡아먹느라 날개를 퍼덕이며 시끄러웠다. 그때 해가 나고 감나무 잎처럼 반짝반짝 윤기 돌던 물이 햇살을 꺾어 수천수만 마리 나비를 날렸다. 물비늘 나비를 잡아 어머니 흰 머리에 꽂아주고 싶은지 바다를 바라다보는 자선이 눈빛이 그윽했다. 그물에 갇힌 숭어들이 부엌칼처럼 뛰어올랐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함민복 시인님의 산문집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강화도에 거주하는 시인은 자연 가까이에서 그리고 자연을 가까이에 두고 사는 사람들 곁에서 소중한 순간들을 길어 올립니다. 미리 어둠을 본다고 해서 시인의 명함을 ‘낮달’이라고 말하는 함민복 시인.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는함민복 시인님이 함께 합니다. 저는 함민복 시인님의 맑은 눈을 참 좋아하는데요. 그 눈처럼 맑은 이야기 나누려고 해요. 청취자 여러분의 큰 기대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 함민복 편>
오은: 얼마 전에 첫 시집이 복간됐습니다. 『우울씨의 일일』이라는 제목의 시집인데요. 첫 시집이 절판 상태였다가 다시 나온다는 것이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어떤 기분이셨는지 궁금해요.
함민복: 첫 시집이라서 좀 부끄럽기도 했어요. 지금 봐서는 부끄러운 부분도 많아서 몇 편 빼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아예 지워졌었잖아요. 없는 상태로 오래 있었기 때문에 안타깝기도 했죠. 그러다 새로 이렇게 책을 내주는 출판사가 있어서 반갑기도 했어요.
오은: 작가님 소개를 해드릴게요. “시인. 한때는 개그 작가를 꿈꾸기도 했던 사람. 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문바위’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방문 열면 바로 자연'인 집들로 구성된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아버지와 약초를 뜯으러 다니며, 탈무드를 반복해 읽으며, 또 문학잡지를 탐독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중학생 때는 문예부가 아니라 태권도부에 들어갔다. 이소룡의 영화를 보고 그와 같은 액션스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쌍절곤 연습도 아주 많이 했다. 공부를 잘했고, 중학교 우수 졸업자로 라디오 방송을 타기도 했다. 전교생이 장학금을 받는 한국전력 부속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원자력발전소에 취직했는데 기계가 무서웠다. 3,600RPM으로 돌아가는 기계가, 날카로운 그것들이 무섭게만 느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었다. 4년을 근무했으나 결국 우울증에 걸렸고, 직장을 관두었다.
그러다 1987년,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직장 다니던 시절에 소설 공부를 했었는데 뜻밖에도 대학교 첫 수업에서 교수님에게 받은 질문, ‘시란 무엇인가?’에 나만의 대답을 찾고 싶어졌던 함민복. 그는 그때부터 짧은 시들을 썼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시로 썼다. 양파, 액자, 애프터서비스까지. 그렇게 쓴 시가 엄청나게 많이 모였고, 이듬해에 시 「성선설」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가 안 써질 때는 스무 살 무렵에 쓴 일기를 보곤 한다.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것은 내 앞에 있어서 아무 느낌도 안 주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깊은 본성에는 선한 마음이 있다고 믿는다. 지인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은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무서워하는 것은 전기와 뱀이다. 25년째 강화도에서 살고 있다. 경칩날 결혼했고, 강화도에서 아내와 ‘길상이’라는 나이 많은 개와 살고 있다. 아내와 운영하는 인삼가게 이름은 '길상이네'다.” 여기까지입니다. 수정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을까요?
함민복: 너무 잘 소개해 주셨고요. 수정할 부분은 딱 하나인데요. 태권도부에 들어간 건 고등학교 때예요.(웃음)
오은: 20대 중반에 대학교에 들어가셨어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거든요. 지금이야 늦게 공부해서 입학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당시는 20대 중반이면 한창 일을 할 시기라고 평가를 받던 시대였잖아요. 문학을 해보겠다고 결정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함민복: 제가 24살까지 직장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계속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결정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도 같더라고요. 사실 집안 형편을 고려하면 경제적으로 집안에 도움을 줘야 했는데요. 어리고 철이 없어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좀 성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집안에 보태는 것이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 좀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많이 도움이 됐다면 망설였을 텐데 어차피 안 되니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 하는 욕심이 앞섰고요. 퇴직금으로 공부를 하자는 생각으로 직장을 나왔어요.
오은: 이번에는 작가님께서 직접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가 어떤 책인지 시인님께서 직접 소개해 주는 시간을 갖도록 할게요.
함민복: 제가 1996년에 강화도로 들어갔습니다. 빈집을 하나 구해 살았고요. 이웃 사람들, 저로서는 아주 낯설기도 한 서해바다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소소한 얘기들을 담았어요. 제 마음을 많이 움직였던,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이 들던 순간들을 기록해보았고요. 그러면서 제 유년의 어떤 기억들이 찾아오기도 했는데요. 그런 것들을 엮은 책입니다.
오은: 저는 이번 책을 읽고 함민복을 키운 한 음절 단어 네 개를 발견했어요. 섬, 꽃, 길, 시예요. 하나 더 추가하자면 봄인데요. 이런 것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물씬 담긴 책 같았어요. 시인님은 도시에서도 살았고, 어릴 때는 산촌 지역에서 지내셨잖아요. 도시의 삶과 섬에서의 삶, 산에서의 삶이 각각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요.
함민복: 어릴 때는 보면 해도 산 위에서 뜨고, 달도 산 위에서 떴어요. 중학교 때 부산으로 수학여행 가서 제일 놀란 게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바다를 보면서 세상에 끝이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죠. 제가 살던 곳은 산 속에 폭 파묻힌 분지 같은 곳이었거든요. 어디에 담긴, 그런 삶의 느낌이었고요. 한편 도시의 삶은 반복되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비슷비슷하고요. 그런데 섬은 내 주위의 변화가 도시에서보다는 많잖아요. 모든 것들이 시간에 따라서 끝없이 변하니까요. 식물의 변화나 자연이 변하는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섬에서의 좋은 점 아닌가 싶습니다.
오은: 꽃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요. 사실 우리는 꽃을 보면 예쁘다, 빨갛다, 분홍색이다, 노랗다, 이 정도의 수식에서 끝나는데 함민복 시인님은 꽃 이름과 나무 이름을 다 정확하게 어떤 나무, 어떤 꽃이라고 명명해 주시거든요. 그게 참 좋더라고요. 첫 시집 시인의 말에도 꽃이 등장하는데 함민복 시인님에게 꽃은 어떤 의미인가요?
함민복: 꽃은 어떤 정점이죠. 전생과 후생의 경계에 있는, 무엇인가를 연결하고 있는 어떤 시간성이 있는 것 같아요. 식물 세계에서 어떤 접속사 같은 역할을 하는 게 꽃이죠. 저는 우리 마음을 연결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우리가 다르다고 나누는 것들, 사물이나 상황들을 찾아내서 연결하는 것들이 시의 마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저는 꽃을 보면서 그런 마음이 부족한 것을 반성도 하고요. 또 꽃에서 그런 꿈을 배우기도 해요.
오은: 도시에서의 길, 섬에서의 길, 그리고 뱃길이라고 해서 바다 위의 길도 있을 텐데요. 길마다 느끼는 것들도 많았어요. 함민복 시인님은 길을 걸을 때 길의 의미를 숨을 들이켜듯이 받아들이면서 가시는 것 같아요.
함민복: 저 혼자 가는 길은 없으니까요. 길은 어떤 작은 길이라도 여러 사람이 써온 곳이죠. 길이야말로 인류의 자서전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길만 한 글이 또 어디 있는가 그런 생각을 갖게 돼요.
오은: 생각해보면 이 길이, 흔적은 남아있지 않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면 뭔가 좀 뭉클해지기도 하거든요.
함민복: 멋진 생각이십니다. 안 보이기 때문에 더 많은 발자국이 우리한테 다가올 수가 있겠죠.
오은: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공간을 마음에 담아 돌아오더라도 함민복 시인님의 글처럼 생생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함민복 시인님의 글을 보면 대사 하나 그리고 풍경 묘사 하나가 너무 치밀하더라고요. 함민복 시인에게는 어떤 다른 장치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새겨 두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쓰시나요?
함민복: 메모를 하나 남기긴 남깁니다. 길게 남기지는 않고요. 짧게, 단어 하나를 붙들어 놓습니다. 단어라도 붙들어 놓으면 느낌이 오래 가고, 구체적인 풍경들이 좀 오래 남아요. 느낌이라는 게 휘발성이 있어서 날아가잖아요. 그래서 하나를 붙잡아 놓는 거죠.
오은: 이번 책은 강화도를 잘 몰랐던 사람, 강화도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큰 울림을 주는 책이더라고요. 그런데 책 말미로 가면 강화도가 변화하고 있다,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계속 바뀌고 있다고 쓰셨는데요. 지금 강화도 상황은 어떤가요?
함민복: 강화도 주위에 김포 신도시가 엄청 커졌고요. 또 검단 신도시 등이 생겨서 사람 사람들이 많이 오고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그에 맞춰 숙박시설도 많이 생기고요. 사람들이 오니까 이런 것이 생기는 건 당연해요. 그렇지만 자연과 조화롭게 생기면 좋겠어요. 또 사람들이 붐비고, 섬에 가득 차는 느낌이 드는데요. 무언가가 찰 때는 비움의 공간도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이라는 개념이 지금은 어떤 열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옛날처럼 차단하는 것이 성이 아니라 개방하는 것이 성인 것이죠. 개방하는 것이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고요. 53개의 작은 성들이 강화에 있다면 지금은 53개의 공원이 생겨서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쉴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도 해봅니다.
오은: 개발이라는 것이 수직의 느낌이 강하다면 농촌이나 섬 생활은 수평의 느낌이 강하거든요. 시인님은 가끔 서울에 올 때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어떻게 수평적 생활과 수직적 생활 차이를 절감하시는지 듣고 싶어요.
함민복: 섬에는 수평적인 것들이 주로 더 많죠. 일단 해발 제로가 섬이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벗어나기 시작하면 고도가 올라가기 시작하고, 수직화 되죠. 수직화가 되는 삶은 인간의 욕망을 닮은 것 같아요. 자연에서 보는 춤은 수평으로 돌아가거든요. 가령 파도는 금방 솟구치지만 금방 사그라져요. 한편 도회지에서 보는 춤 중 제가 재미있게 본 춤이 ‘만득이’의 춤이었어요. 어느 매장이 신장 기업할 때 많이 사용하는 바람 간판 있잖아요. 그 친구를 보면서 인간의 욕망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것은 수직의 춤입니다. 바람이 부는 날은 얘네들이 철수를 해요. 그런데 자연의 바람에 의해서 추는 나무들의 춤은 그렇지 않죠. 그것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마음도 수직화 되진 않을까 염려가 들기도 해요.
오은: 시인님은 그 시대를 응시하는 시를 많이 쓰셨습니다. 「김포 평야」, 「구제역 이후」 같은 시도 그런데요. 코로나19 상황도 왠지 남다르게 지켜보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함민복: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중요한가, 보이지 않지만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이 없을까, 이런 것들을 깨우쳐준 게 코로나19 같아요. 제가 화살표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코로나19가 갖는 무방향의 방향성이 참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사람의 비말이라든가 손발 움직임의 흔적을 타고 순식간에 움직여오는 것이죠. 이것은 인간이 서로 연결된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연결된 하나의 길이라는 거예요. 단순히 전염병이 아니라 그 안에 함의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영업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함민복: 누가 추천을 이미 했을 것 같은데요. 『잃어버린 영혼』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짧지만 충분히 던져줄 수 있는 그림책이고요. 많은 분들이 힘들게 지내시는데 이럴 때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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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