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와 ‘읽을 수단’이 넘치는 시대지만, 아이들은 종일 스마트 폰을 손에 쥐고도 ‘읽을거리’보다 ‘놀거리’에 더 매달린다. 사방에서 걱정소리가 들린다. 독서교육자이자 문화콘텐츠로서의 놀이 연구자인 박형주는 『공부머리 만드는 그림책 놀이 일 년 열두 달』을 통해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그만 놀고 책을 읽으라’고 말하는 대신 ‘책 읽으며 놀자’고 권하기를 제안한다.
‘책 읽어주기’ 중요성에 충분히 공감하는 부모라도 ‘책으로 놀아주라’는 말은 좀 부담스러울 수 있을 듯합니다. ‘책을 읽으면 됐지 꼭 놀이까지 해야 하나?’하는 근본적인 궁금증이 있습니다.
책놀이가 아이에게 주는 이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즐거움을 발견하고 감각적으로 기억하게 돕는다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이 아이의 독서 습관을 위해 책장을 꿀을 묻혀 두었더라는 ‘꿀팁’과 비슷한 것이죠. 다른 한 가지는, 책으로 소통하는 재미를 알게 하는 겁니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가족이나 친구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그들과 같은 책을 읽고 그것으로 노는 즐거움은 더 커지죠. 책을 무조건 수용하는 수동적 태도를 벗어나 능동적이고 비판적인 읽기 태도를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놀이의 개방성과 능동성이 책읽기에 접목되는 거죠.
책놀이가 아이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어른은 평소에 보이지 않는 아이의 솔직한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고 성장하는 아이와 수평적으로 대화하는 방법도 익히게 됩니다. 놀이의 특성이 전이되니까요. 실제로 초등 아이들과 책놀이를 시도하셨던 부모님과 교사 분들 중에,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아이에 대해서 훨씬 더 잘 알게 되더라는 것이었어요. 만일 아이와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이런 것들이 모두 충족이 되고, 아이도 어른도 별도의 놀이에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당연히 책놀이는 생략해도 괜찮습니다. 책놀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니까요.
‘책놀이’라고 하면 책을 읽은 뒤에 무언가를 만들거나 그리는 미술활동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 책은 물론이고 이전 책 『공부머리 만드는 그림책놀이 일 년 열두 달』 에서 제안되는 책놀이는 방법이 많이 다릅니다. 놀이를 구상하는 방식이 따로 있나요?
놀이의 방법은 노는 사람들과 상황과 맥락에 따라 무한하게 달라지니, 책놀이 방법도 아주 다양할 수 있겠지요? 미술놀이 방식도 그만의 장점이 있지만, 저희가 두 권의 책을 통해 제안한 책놀이는 ‘읽기’ 과정에 조금 더 집중된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잘 치려면 많은 것들을 능숙하게 해내야 합니다. 당연히 처음부터 잘 할 수 없으니 초보자는 손가락 연습, 감정 표현처럼 하나씩 하나씩 연습합니다. 책을 읽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능숙한 독자에겐 ‘자동으로 처리’되는 것처럼 보여도 읽기 과정에는 다양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하나씩 연습하고 훈련하는 과정을 놀이로 제안한 것입니다. 읽기와 놀이를 하나로 연결하려고 한 것이지요,
‘읽기와 놀이가 하나로 연결되도록 한다.’는 게 좀 모호하게 들립니다. 조금 더 구체적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눈 오는 날’에 관한 책이 있다고 생각해 볼게요. 이 책은 물의 상태변화나 날씨에 관해 알려주는 과학책일 수도 있고, 나라마다 다른 기후와 문화에 관해 소개하는 사회주제 책일 수도 , 눈 오는 날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관계에 대한 문학책 일 수도 있겠지요? 우선은 그 책이 전하는 메시지의 특성, 책이 내용을 구성한 방법에 따라 읽기 방법이 달라집니다. 원리 이해가 중요한 과학책이라면 재구성하는 능력을 키우는 놀이가, 사회책이라면 비판적 시각을 기를 수 있는 비교의 놀이가, 문학책이라면 몰입과 공감에 집중해 볼 수 있는 추론 놀이가 제안될 수 있습니다. 그림이나 글을 자세히 보는 것이 놀이로 제안될 수 있고, 내용을 재조직 하는 것이 놀이로 제안될 수 있고, 역할 놀이나 연극 같은 놀이 혹은 그림 그리기가 놀이의 방법으로 제안 될 수도 있는 거지요.
책놀이를 할 때 어른들이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기왕 노는 거 더 재미있게 노는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책놀이 뿐 아니라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놀이에서 어른이 갖추어야 할 첫 번째 태도는 ‘가르치고 싶다’는 욕망을 놓고, 아이를 수평적 존재, 능동적 존재로 존중하라는 겁니다. 아이랑 함께 하지만 어른이 주도하고, 아이를 수동적으로 만든다면 그것은 어른의 놀이이지 아이의 놀이는 아니죠. 놀이는 ‘노는 즐거움’ 외에 어떤 것도 목적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놀이가 됩니다. 어른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려 들면 놀이의 궤도에서는 벗어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놀다 보면, 아이가 생각보다 잘 못할 수 있는데 그 실패의 경험이 아주 중요합니다. 놀이를 통해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면 된다는 것, 누구나 이길 때와 질 때가 있는 것을 아이가 알게 해야 합니다. 그 경험들이 결과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과정을 즐기게 하는 힘을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요.
많은 경우에 어른들이 아이가 잘할 때 아이보다 기뻐하고, 아이가 잘 못할 때 아이보다 더 실망하거나 화를 내는데, 이런 태도는 오히려 아이에게 놀이의 자유를 앗아갈 수 있습니다.
전작인 『공부머리 만드는 그림책놀이 일 년 열두 달』도 그렇고 『초등독서력 키우는 읽기놀이 일 년 열두 달』에서도 ‘공부머리’나 ‘초등독서력’처럼 학습이 연상되는 제목이 쓰였는데, 정작 책의 내용에서는 ‘독서=공부’라고 인식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 반복 등장합니다, 모순으로 여겨질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의 독서에 학습 역량 향상을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웃음) 그럴 때 이런 예를 듭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의 형편이 좋지 않아서 내가 희생이라고 할 만한 행동을 해야 할 상황이에요.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은 기꺼이 그 희생을 감내합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자식을 키우는 힘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어떤 사람이 내게 자신을 위한 희생을 요구하고, 그래야 사랑하는 관계가 되겠다고 하면 과연 그 관계가 원만히 맺어질까요?
독서는 궁극적으로 공부가 되고 공부하는 역량을 향상시킵니다. 하지만 공부를 위한 독서는 공부가 버거워지는 초등 중학년 이상의 아이들이 독서에서 빠르게 이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독서가 공부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즐거운 일로 여겨져야, 공부와 상관없이 평생 독자로 남는 거지요.
‘공부머리’는 제가 책에 밝혔는데, 학교 시험을 위한 교과공부의 개념보다는 ‘세상의 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그것을 탐구하는 힘’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저는 독서가 그것을 만들어 주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라고 믿어서 그렇게 썼습니다.
두 권의 ‘일 년 열두 달’책이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이유 중에는 ‘책 소개’가 큰 몫을 했습니다. 두 권 모두 엄청난 양의 책들이 소개되는데 그 책들을 어떻게 선별하신 것인지, 여기에 소개되지 않은 다른 책들을 고를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보면 좋은지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아이에게 어떤 책을 권할까?’는 제가 이 책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동기 중에 하나였어요. 어린이 책 평론가를 비롯해서 전문가들께서 권하는 책과, 흔히 맘카페로 통칭되는 부모들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이 높은 책, 실제로 아이들이 먼저 손을 뻗어 잡는 책이 모두 달랐거든요.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 욕망들을 이해하고 절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첫 번째 기준은 당연히 ‘아이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였습니다. 아이들의 취향에 맞춘다는 의미는 아니고 발달과정과 경험, 취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다음엔 거꾸로 너무 아이들의 입맛이나 부모들의 교육 욕심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스스로의 품격과 개성을 지키는가를 따졌습니다. 그 다음엔 아이들의 실제 생활에서 추출된 기준으로 분류해서 소개했습니다. 책에 소개할 때는, 읽기 난이도, 작가 특징, 메시지 전달 방법 등도 고려해서 조절했습니다.
책 선택을 두고 ‘싸운다’고 할 만큼 아이와 갈등이 생기는 경우는 아주 흔합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기주장이 생기는 것은 반가운 일인데, 어른 입장에서는 ‘쉽고 편하게 볼 것으로 짐작되는 책’, ‘메시지나 재미가 직접적인 책’만 보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서점이나 도서관 나들이 전에 미리 어떤 주제의 책을 고를 것인지에 대해 합의하고, 그 후보군 등을 찾아서 나서면 좋습니다. 후보 안에서 아이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고 어른이 다른 책을 골랐다면 그 책들을 모두 함께 보면서 서로가 찾은 재미를 공유하는 과정을 축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책을 고르는 능력이 아주 중요한 독서능력이기도 하니까요.
아이를 책 좋아하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읽기 발달 연구자들은 크게 세 가지 요소를 말합니다.
첫째, 읽기 관련 지적 능력 혹은 읽기 기술을 갖추게 하는 겁니다. 실제로 초등 3학년 이상의 아이들이 책에서 멀어지는 진짜 이유는 책이 싫어서가 아니라, 책에서 재미를 발견하는 실질적인 능력 즉, ‘읽기능력’이 없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능력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 아이들이 이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그동안의 독서교육에 부족함이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둘째는 읽기에 대한 흥미 즉, 동기·태도·신념 같은 정서적 호감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책놀이를 권하는 것도 같은 이유죠. 책읽기보다 게임이 재미있다는 아이들에게 게임처럼 재미있는 책읽기를 경험하게 해주자는 겁니다.
세 번째는 가정이나 학교의 환경이 아이의 읽기 활동을 북돋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겁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책놀이도 아이에게 좋은 독서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박형주 잡지나 방송 등에 글을 쓰면서 두 아이를 키웠고, CJ오쇼핑 쇼호스트로 어린이책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책과 아이들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어린이책 출판사에서 일을 하면서부터다. 지금도 여전히 대학과 기업, 도서관에서 부모교육을 하고 학교 안팎에서 아이들을 만나는데, 첫 책 『공부머리 만드는 그림책놀이 일 년 열두 달』을 낸 뒤, 초등학생을 위한 ‘좋은 책과 재미있게 책 보는 법, 제대로 읽히는 법’에 대한 질문이 많아져, 그 질문에 답하는 마음으로 『초등독서력 키우는 읽기놀이 일 년 열두 달』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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