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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왜 모두 영화화가 됐을까?

『제인 오스틴 무비 클럽』의 저자 최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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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년 이상 된 영미 고전소설들이 가장 대중적인 예술인 영화로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사랑받는 비결이 궁금했어요. (2021.02.09)


『제인 오스틴 무비 클럽』은 영화평론가 최은이 제인 오스틴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참신한 시각으로 읽어낸 책이다. 제인 오스틴은 출간된 모든 작품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며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재해석되는 생명력 넘치는 작가다. 이른바 제인추종자들로 알려진 엄청난 팬덤이 증명하듯, 제인 오스틴은 대중적 인기를 유지하는 고전 작가이자 현대의 대중매체에까지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급진적 작가임에 틀림없다. 제인 오스틴의 원작은 물론 모든 영화와 드라마를 꼼꼼하게 읽어가며 제인 오스틴 현상에 숨어 있는 비밀을 담백하게 써내려간 저자 최은 선생님과 만나보았다. 

먼저, 수많은 소설가 가운데 왜 ‘제인 오스틴’인가요? 제인 오스틴의 무엇이 최은 선생님을 사로잡았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오만과 편견』으로 유명한 제인 오스틴은 장편 여섯과 중편소설 하나를 남겼는데요, 출간된 모든 중·장편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드문 작가입니다. 2백년 이상 된 영미 고전소설들이 가장 대중적인 예술인 영화로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사랑받는 비결이 궁금했어요. 재미있게 매진할 수 있을 것 같아 가볍게 시작한 일인데, 막상 연구와 집필을 하다보니 그간 공부하면서 매료되었던 여러 이론들, 페미니즘에서부터 탈식민지이론, 장르, 각색과 패러디, 작가론과 텍스트이론, 관객성, 그리고 스타와 팬덤 현상까지 영화와 대중문화론의 거의 전 영역을 넘나드는 접근이 가능했어요. 작품마다 각기 다른 포인트로 바라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로워, 저에게는 오스틴-영화세계가 신나는 ‘놀이터’ 같고 테마파크 같았습니다.

서문을 보니 ‘12권의 책과 26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담은 책’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오스틴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작품(원작과 영화 통틀어) 딱 하나만 고른다면 어떤 작품을 고르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요? 

의외로, 영화 <레이디 수잔>입니다. 위트와 풍자가 뛰어난 원작의 유머를 영화로 잘 옮겨냈다고 생각해요. 제 취향이기도 하고, 특히 경쾌하고 재미있어서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오만과 편견>의 위컴이나 <센스 앤 센서빌리티>의 윌러비 같은 바람둥이 조연 캐릭터가 여기서 레이디 수잔이라는 여성 주인공이 됐는데요, 이렇게 오스틴은 기존 젠더관념에 도전하며 당대 관습을 풍자했어요. 영화 <레이디 수잔>에서 케이트 베킨세일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수잔을 얄밉도록 생생하게 되살립니다. 베킨세일은 1996년의 ITV <에마>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적이 있어서 더 반가웠습니다.  

늘 남녀주인공을 결혼시키며 마무리하는 제인 오스틴이기에, 남자주인공의 매력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네요. <오만과 편견> <비커밍 제인> 그리고 <센스 앤 센서빌리티> 같은 주요 작품의 남자주인공 매력 포인트를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제인 오스틴은 그 옛날에, 자신의 남자 주인공들을 반성할 줄 아는 사람들로 그려냈습니다. 그 점은 오스틴의 남성들이 지닌 공통적인 매력이고요, 다아시는 요즘 말로 ‘츤데레’나 ‘차도남’이죠. 톰 르프로이는 <비커밍 제인>에서 시골의 신사 가문에서 자란 제인이 좀처럼 경험하지 못한 원초적인 열정을 가진 인물로 표현되었어요. <센스 앤 센서빌리티>의 에드워드는 무엇보다 약속과 신의를 지키는 남성입니다. 영화 속 휴 그랜트는 여기에 더해 원작에는 없는 유머와 친화력과 ‘센스’까지 장착한 인물이 됐죠.    

오스틴의 원작을 영상으로 해석한 많은 영화감독들 가운데, 선생님에게 가장 인상깊은 해석을 남긴 감독은 누구일까요? 

<맨스필드 파크>의 패트리샤 로제마입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은 유럽사회의 격동기(프랑스대혁명, 나폴레옹 전쟁, 미국의 독립전쟁 시기 등)에 씌어진 것임에도 소위 ‘시시콜콜한’ 사랑 이야기에 천착했다거나 제국주의에 침묵했다고 비판받기도 했는데요. 로제마의 영화는 제인 오스틴 자신이 어쩌면 시대의 한계에 갇혀 차마 꺼내지 못했거나 암시에 그친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파고듭니다.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받는 여성의 삶과 식민지 노예들의 처지를 병치하기도 하고, 패니 이모부와 가족들이 누리는 부와 평화가 식민지에서의 폭력과 착취의 결과라는 점을 상상력을 동원해서 폭로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죠. 원작과 그 시대로 깊이 들어가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입니다. 

제인 오스틴은 조연급 인물들에게도 주연 못지않은 만만찮은 존재감을 부여해주었습니다. 필자님이 애정하는 조연(여성/남성 통틀어) 캐릭터로는 누가 있을까요? 

<오만과 편견>의 샬롯인데요, 제인 오스틴도 가장 애정을 갖고 그려낸 조연이었을 것 같아요. 샬롯은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였어요. 그런데 콜린스라는 남자가 엘리자베스에게 거절당하자 샬롯에게 청혼을 했고 샬롯은 뜻밖에도 이를 받아들입니다. 엘리자베스는 몹시 실망했지만, 곧 샬롯의 지혜로움을 인정하게 돼요. 샬롯은 한계 많은 현실과 최상의 ‘타협’을 이루어내며 콜린스와의 결혼생활에서 주도적인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거든요. 이때 샬론의 나이가 스물일곱인데요, 제인 오스틴 자신이 해리스 빅 위더라는 남성의 청혼을 거절하면서 사실상 비혼을 결심했던 나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자신이 했을지도 모를 선택의 기회를 샬롯에게 제공하고, 그에게 행복의 공간과 최소한의 여백을 마련해준 오스틴의 시선이 뭉클하게 다가왔어요.   

언급하신 대로, 러디야드 키플링은 「제인아이트」(제인 추종자들)라는 단편소설에서 ‘힘들 땐 제인 오스틴이지’라고 선언했는데요. 팬데믹의 나날을 살아가는 21세기의 독자님들께 2백년 전의 제인 오스틴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과연 무엇일까요? 

인간에 대한 예의와 품위라고 생각해요. 언제부턴가 우리는 목소리가 커야 주목받는 시대를 살게 된 것 같습니다. 모두가 억울한 나머지 직설과 통렬한 말들로 타인을 몰아세우고 배척하는데, 종종 그 무례함이 오늘날 우리를 더 고단하고 외롭게 하죠. 자신이 지지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멸시하지 않고 품어내는 여유, 못마땅한 세상을 향해 분노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비웃어주면서도 결국은 조근 조근 할 말을 다해내는 제인 오스틴의 단호하면서도 사려 깊은 문체와 품위 자체가 주는 위로가 있습니다.  

물론, 오스틴의 작품들이 틈틈이 시름을 잊고 부담 없이 몰두할 수 있는 좋은 벗이 되어주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겠죠. 외출과 모임이 쉽지 않은 팬데믹 시절을 오스틴의 책과 각색된 영화들을 정주행하면서 넉넉히 즐겨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인 오스틴의 고향 영국으로 문학기행을 떠나고픈 독자님들이 많으실 듯합니다. 다녀오신 경험자로서 가장 이상적인 여행 루트를 공유해주심 어떨까요? 

‘초턴-윈체스터-라임 레지스-바스-런던’의 경로를 권해드립니다. 제인 오스틴이 생애 마지막 8년을 보낸 초턴에는 ‘제인 오스틴 하우스 뮤지엄’과 넷째 오빠 소유의 ‘초턴 하우스’가 있습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윈체스터에는 오스틴이 사망한 집과 윈체스터 대성당의 무덤이 있고요,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오스틴이 사랑했고, <설득>에도 나오는 바닷가 라임 레지스가 있습니다. 라임에서는 ‘Granny’s Teeth’라 불리는 콥 계단을 꼭 보여야 합니다. 바스는 오스틴이 고향을 떠나 4년 동안 거주했던 곳이고, <설득>과 <노생거 사원>의 배경인데요, ‘제인 오스틴 센터’가 있어요. 특별히 오스틴이 머물렀던 다섯 집을 따라 바스 거리를 걸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런던에서는 국립초상화박물관과 대영박물관에서 제인 오스틴의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최은

영화는 좋은 선생이자 인생에 주어진 선물이라고 믿는 영화평론가. 영화가 현실을 어떻게 해석 하는지, 영화의 언어가 문학의 언어와 일상어를 어떻게 번역하는지 늘 흥미롭게 관찰한다. 문학작품이 원작인 영화를 좋아해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다가 제인 오스틴을 만났다. 문학의 언어가 영상 언어로 바뀔 때, 수백 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의 일상에 말을 걸어올 때, 고전으로 불리는 서사가 가장 대중적인 장르영화의 관객에게 가닿을 때 생기는 균열과 모순, 유혹과 저항, 감춤과 드러남의 긴장을 사랑한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중앙 대학교에서 영화이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대와 성균관대,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고, 서울시교육청 고전인문학 프로그램 ‘고인돌’과 ‘도서관 대학’, ‘길 위의 인문학’ 등 인문학 강연과 CBS TV 아카데미 ‘숲’, EBS TV 기획특강 등을 통해 대중과 만나왔다.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부집행위원장 및 수석프로그래머로 활동하면서 라디오 ‘최은의 문화칼럼’에 출연하고 있다. 공저서로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청소년 인문학수업』, 『퇴근길 인문학수업』, 『영화와 사회』,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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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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