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미.” 최근 네 번째 EP <안녕, 낯선 꿈>을 내놓은 CIX의 멤버 배진영은 재킷 촬영 현장이 담긴 CIX의 리얼리티 영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자신들의 밝고 명랑한 콘셉트에 대해 멤버들이 신나게 소개를 하자, 단 한 마디로 이를 일축하며 또다시 금세 입을 다문 청년. 여기서 ‘금세 입을 다문’이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제로 말수가 적기 때문에. 둘째, 부끄러움이 많아 카메라조차 또렷하게 쳐다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모든 시즌을 통틀어 가장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던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에서 배진영은 마지막에 우승기를 흔든 강다니엘 옆에서 형들과 얼싸안고 울던 소년이었다. 그리고 그날이 오기 이전까지, 배진영은 말수가 적고 부끄러움이 많으며 자신감까지도 없는 어둡고 왜소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볼캡 모자를 쓰고 나타나 말을 자주 더듬고,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지 못하면서 “잘생긴 얼굴을 왜 저렇게 가리고 다니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듣던 고등학생. 이 고등학생은 <프로듀스 101 시즌 2> 마지막 편에서 드디어 센터에 섰고, 그 무대를 할 때 비로소 자신감을 채우며 서서히 익어온 얼굴을 보여주며 팬들의 안도와 환호를 동시에 불렀다.
어떤 화려한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될 것 같은 조그맣고 예쁜 얼굴에 긴 팔과 다리, 어느 누가 봐도 아이돌로 손색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진영은 본래의 소속사인 CIX로 돌아와 다시 무대에 서면서도 여전히 부끄러움이 많다. 빨간불이 들어오는 온에어의 카메라 앞에서 조금 빠르게 시선을 내리거나, 아예 시선을 돌릴 때도 있는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아직 프로페셔널 하지 못하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습 자체로 배진영은 여전히 자랄 수 있고, 여전히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내보인다. 걷는 속도가 빠른 사람에게 맞추려 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 걸어가고 있는 이 청년의 모습을 웃으면서 응원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인간은 빠르기도, 느리기도 하면서 나아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아간다’는 사실 그 자체이고, 배진영은 그 예시가 되기에 너무나 적절하다. 나아가 쉽지만은 않은 가요계 생활을 계속해나가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아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은 배진영뿐만 아니라 CIX 멤버들에게도 고스란히 비춰진다. 과거의 배진영이 그랬던 것처럼 어떤 멤버는 자신감이 없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더 나아진 자신을 칭찬할 수 있고, 본래 카메라에 두려움이 없던 누군가는 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연습을 계속한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서 이번 <안녕, 낯선 꿈>의 타이틀곡인 ‘시네마(Cinema)’의 밝고 명랑한 “소년미”를 만들어냈다. 계속 나아가는 소년들, 그리고 그 중간에 서서 영화의 개봉을 알리는 도입부로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만나는 배진영은 분명 언젠가 지금보다 빛을 발할 것이다. 아니, 사실은 이미 스스로가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빛난다. CIX를 부르는 애칭이 ‘씨앗이들’이라는 점은 공교롭게도 이런 그들의 모습과 겹쳐지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것을 바로 ‘성장’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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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아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