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존중 성교육』은 학교에서 매일 맞닥드리는 아이들의 성에 관해 교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과 배움을 담은 책이다. 수업 중에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아이들의 질문이나 행동에서 갑자기 성을 마주하게 될 때 교사들은 당황하고 힘들어한다. 20여 년간 보건교사이자 성교육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이때가 바로 ‘골든 타임’이라고 말한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 있게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변화와 배움을 끌어내는 대처 방법을 자세히 알려준다. 교육현장에서 ‘존중 성교육’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교사도 안전하게 보호받으면서 아이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여준다는 데 있다.
요즘은 성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들이 나와 있어요. 그런데도 왜 많은 선생님들이 아직도 성교육을 어려워할까요?
교육 자료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교사가 기대하는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과거에 비하면 성교육 관련 콘텐츠가 다양하게 나와 있지만, 그 다양함 속에는 공교육 교실에서 다루기에 적절하지 않은 자료도 꽤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성에 대한 부모의 양육 태도에 따라 이미 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다른 상태인 아이들이 한 교실 안에 있기 때문에 학생 모두에게 안전한 성교육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불쾌감이나 수치심이 앞서면 교사가 의도한 배움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미리 제작자의 의도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민감하게 아이들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조심스럽게 제시해야 배움이 일어납니다. 더불어 교사들이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수업 관련한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법적인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움과 장애물을 극복하고 교육해야 할 책임이 교사에게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할 때 어떤 부분이 가장 고민일까요?
선생님들이 성교육을 당당하게 잘하실 수 있게 용기를 드리기 위해 연수를 진행하는 강사로서 저도 늘 궁금해하는 부분이어서 강의 전 사전 질문 형식이나 Q&A 시간을 따로 만들어 선생님들의 성교육과 관련된 고민을 듣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선생님들의 질문 내용은 부모님들이 질문지에 적어주신 것과 비슷했습니다.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가르쳐야 하나? 성취 기준을 무엇으로 해야 할까?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학년 군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까? 왜 그래야 하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언론에서 다루는 성인의 관점으로 수업에서 접근해도 될까? 아이들이 민망한 질문을 할 때 어떻게 반응해야 좋지? 이성 교제 중인 아이들에게는 교사로서 하고 싶은 조언을 해줘도 될까? 동성애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지? 등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부모나 교사 세대는 자라면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서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많이 접하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을 시사상식사전에서 찾아보면 ‘성별간의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춰 일상생활 속에서의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주로 남성이 가해자이고 여성이 피해자인 상황에서 이 단어를 언급한 법정 사례가 기사화되다 보니 온라인상에서는 공공의 적이 된 개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성인지 감수성은 남녀 모두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생겨난 개념이고, 성인지 감수성을 높여야 함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수업에서 성인지 감수성의 개념을 설명할 때, 위의 사전적 표현대로 ‘성별 차이로 인한 차별과 불균형’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언어 표현으로 인한 심리적 반발 때문에 배움을 방해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상자(특히 남성)로 하여금 잠재적인 차별이나 불평등을 유발하는 존재로 느끼게 함으로써 불쾌감을 주거나 반대로 대상자(특히 여성)로 하여금 실제 경험과 무관하게 내가 차별당하거나 불평등을 받고 있나 보다 혹은 가만히 있으면 나도 모르게 차별이나 불평등을 당하게 되나 보다, 라는 불편함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러므로 수업을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킬 수 있는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인지 감수성이란, 상대방도 나와 같은 성적, 인격적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민감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부정적인 감정이 마중 나와 배움을 방해하지 않게 하는 소통입니다.
성교육을 하고 난 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때로는 난처한 질문을 하는 아이들도 있을 텐데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저는 ‘존중 성교육’을 하고 있는데요, 자신의 성을 먼저 존중할 수 있게 성교육을 해야 하고, 성에 대한 아이들의 물음을 문제시하지 말고 존중해주자는 뜻입니다. 지금 아이들이 갖는 성에 대한 물음은 사회와 어른들이 심어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접하는 미디어, 음란물, 게임 등을 어른들이 만들었고,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 사회가 침묵하고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 궁금한 거예요. 미디어에서는 저렇게 속삭이는데, 어른들은 아무 말도, 제대로 된 교육도 안 해주니까요. 아이들이 용기 내어 질문할 때 난처해하면 그 아이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질문을 했고, 그런 자신 때문에 선생님이(부모가) 당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언젠간 당연히 물어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미리 답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데서 잘못된 정보를 접하지 않고 믿을만한 어른에게 질문해 준 것을 칭찬해 주세요. 학교 도서관에 『그러니까, 존중 성교육』, 『성교육이 불편한 교사를 위한 서로 존중 성교육』 같은 좋은 성교육 책들을(웃음) 미리 비치해 놓고 아이들에게 알려주세요.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책들을 도서관에 신청해서 놓았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이죠.
성교육 전문가이지만 저도 가끔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좋은 질문이어서 제대로 답해주고 싶은데, 다음 시간에 답변해 줘도 될까요?” 하고 물어보면 그 학생은 친구들 앞에서 교사의 존중을 받았기에 표정이 환해지며 좋다고 대답합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을 이야기할 때 10대에게도 성관계를 할 권리가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요?
성적 자기 결정권(sexual self-determination)은 성교육 과정 중 피해자의 인지능력과 자존감 향상에 목적을 두고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인데요, 우리나라는 이 용어를 ‘보호법익’, 즉 성범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할 목적으로 가져왔습니다. 상대방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 성폭력이라고 적용해 왔고, 저도 오랫동안 같은 의미로 교실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피고인(피의자)이 상대 아동·청소년(피해자)이 자신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여 성관계를 했으니 성범죄가 아니라는 식으로, 주로 가해자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데 잘못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10대를 약자로 보면서도 10대에게 성관계를 부추기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페미니스트 중 일부에서 10대에게도 섹스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더불어 10대에게도 낙태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죠. 이런 말들이 성적 자극에 약한 아이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너에게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어. 너의 권리를 행사해! 경험해 봐!’라고 속삭이죠. 거짓입니다.
우리나라 의제 강간(성관계에 동의했더라도 동의로 간주하지 않고 강간으로 봄) 대상 연령인 만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이 성관계에 동의했더라도 자기 결정권 행사로 보지 않으며, 성 착취, 즉 강간죄로 형사처분 대상입니다.
법률용어로 질문하셨으니 저도 법률적으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지난 2005년 8월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한 판결문의 일부 내용입니다. “10대는 신체적 정서적으로 미성숙하고 성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아서 성적 수치심이나 불편감 등 주관적인 성적인 느낌이나 감정에 대한 인식과 표현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성적 도덕관념 등 성적 가치 기준이 서 있지 않은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을 스스로 누리긴 아직 어린 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n번방 사건, 불법 촬영, 미투 등 사회적 이슈가 연일 이어지고 있어요. 이로 인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학교 성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해졌는데요. 학교 성교육,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가장 큰 문제는 학교 수업 시간표에 성교육 시간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항상 다른 교과 시간을 얻어서 보건실을 비의료인에게 잠시 맡기고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교직 경력 20년이 넘도록 성교육을 했지만, 제가 수업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 심각한 응급환자 발생이 없었음에도 한 시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업 중에 학교 전화번호가 찍힌 전화가 오면 지체 없이 통화하기로 아이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 놓고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실제로 전화벨이 울린 적은 거의 없지만, 늘 신경이 쓰였습니다. 마침 보건실에 있을 때 응급상황을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마다 보건교사를 2명씩 배치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날이 올까요? 아직도 작은 규모의 학교에는 보건교사가 없는 곳도 많고, 30학급 이상 큰 학교에도 보건교사 1명이 근무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적나라한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입니다. 우리가 학령기 시절이던 때와는 다르게 요즘 아이들은 마음고생, 몸 고생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보건실은 숨 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상담실처럼 예약하고 가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문을 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죠. 보건교사가 모든 학년 전체 학생들을 맡아 성교육을 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만약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다면 교육의 질이 아주 낮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러면 지금 현재 우리 아이들을 위한 학교 성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저는 모든 교과에서 성 관련 단원을 건너뛰거나 어물쩍 넘어가지 않고, 제대로 자기 교과 범위 안에서만이라도 성 관련 단원을 책임져 준다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성교육이 불편한 교사를 위한 서로 존중 성교육』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성교육이 불편한 선생님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왜 나는 성교육이 불편한가를 생각해 보고, 다른 선생님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보면서 스스로 성인지 감수성을 높여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용기 있게 성교육하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그림책으로 하는 성교육 수업 사례가 인상적입니다. 그림책으로 성교육을 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바로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교육 수업 시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런데 성교육의 목표는 ‘바른 성 가치관 내면화’이기 때문에 한 주제를 깊이 있게 여러 차시에 걸쳐 다루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힘을 빌려 한 차시 안에 흥미 유발, 자기 성찰, 배움의 확장, 삶과 연결 짓기까지 할 수 있는 수업 방법을 찾다가 그림책을 발견했습니다. 그림책 『똑, 딱』을 예로 말씀드릴게요.
많은 교사가 수업에서 다루기 어려워하는 이성 교제 수업 첫 번째 시간에 시를 활용하여 스킨십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그런 다음 이성 교제 두 번째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지내는 비결’이라는 주제로 그림책 『똑, 딱』을 활용했죠. 이성 교제에 관심이 없거나 상처를 경험한 학생을 위해 남녀 간의 이성 교제에 국한하지 않고, 대상을 넓혀 ‘관계’로 접근했어요. 교사가 미리 여러 번 낭독 연습을 해보고 강조해야 할 문장과 오래 머물러야 할 페이지를 정하고 나서 최선을 다해 잘 읽어 줍니다. 그러면 이야기와 그림의 힘으로 아이들의 마음이 활짝 열리면서 관계로 상처 입은 속내를 보여줍니다. 이어서 관계 회복과 유지를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들 스스로 발견하죠. 저는 그림책을 읽을 때 생각나는 사람에게 시를 쓰는 활동으로 이어갔습니다. 아이들의 시가 얼마나 근사하고 아름다운지 몰라요. 아무래도 책을 보셔야겠네요.(웃음)
마지막으로 성교육에 어려움을 느끼는 많은 선생님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왜 어려워하는지 스스로를 직면하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답이 있습니다. 이 책이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 줄 겁니다. 그래도 아쉬움이 있다면 제 이메일 kimhksungedu@naver.com 으로 연락주시면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김혜경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아홉 해 동안 국군병원에서 간호장교로 근무했다. 전역 후 사회 진출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뉴스를 통해 서울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교복 차림의 한 여중생이 자신이 막 낳은 아기를 변기에 버리고 도망가는 CCTV 장면을 보게 되었다. 한동안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고, 학교에 가면 뭔가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인생의 방향을 바꿔 교원임용시험을 거쳐 공교육 안으로 들어왔다. 20년이 훌쩍 넘어가는 동안 아이들 가까이에서 함께 호흡하고 대화하면서 아이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 잘 배우는지를 알게 되었다. 중학교 시기는 자신이 평생 가져갈 성 개념이 만들어지고 확립되는 때다. 아이들이 갖는 성에 대한 물음을 존중하고, 성이 얼마나 소중한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교사가 먼저 아이들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섬세하게 수업을 진행하면 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성도 소중하다고 스스로 깨닫게 된다. 이렇게 성을 배우면 평생 안전하고 아름답게 성을 누릴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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