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한테 목매지 말고,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서 잘 사는 엄마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을 바꿨다. 엄마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랄 것인가. 비행기가 추락할 때, 부모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써야 한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면서 아이한테 씌우려고 하면 둘 다 위험해진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이영미 작가님의 『마녀엄마』에서 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7개월 뒤부터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해 일하는 엄마로 살아온 이영미 작가님. 작가님은 아이를 보며 생기는 죄책감이나 미안함은 버리고, 즐겁게 출근해 열심히 일하고, 아이에게 책 읽으라 강요하지 않고, 아이보다 먼저 책 속으로 빠져들며 ‘한 인간으로서 행복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철인3종 대회를 나갔고, 아이는 곁에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와 엄마 사이에 신뢰가 쌓였죠. 엄마가 되는 것이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영미 작가님은 이야기하는데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이영미 작가님이 출연해 일하는 엄마, 운동하는 엄마로 살면서 배운 삶의 태도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청취자 여러분의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 이영미 편>
오은: 2020년 11월에 두 번째 책 『마녀엄마』가 나왔어요. 제가 청소년 시집 『마음의 일』에 ‘몸은 다 자라도 마음은 더 자랄 수 있다’는 구절을 썼는데요. 그게 여실히 느껴지는 책이었어요. 이번 책이 나올 때 눈길을 끌었던 점이 책을 동네책방에 먼저 배포하셨던 거예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떤 계기로 이런 결정을 하신 건지 알고 싶어요.
이영미: 이 얘기를 친구나 출판계 사람들에게 넌지시 비쳤더니 저더러 미쳤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왜 모르겠어요. 편집자로 오래 일했던 사람이고, 제가 만든 책이 예스24 메인에 떴다고 하면 다음 날 회사 나가서 소리를 지르고 했던 사람인데 말이에요.(웃음) 『마녀체력』을 출간하고 지역 곳곳의 동네서점 20여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수혜를 많이 받았어요. 동네책방에 모인 지역 주민들이 뜨겁게 작가를 환호했고요. 이분들이 이야기 듣고 싶어한다는 걸 그때 보았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일개 작가지만 이분들을 도와 해볼 수 있는 것이 있겠다 생각했어요. 더군다나 코로나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게 지역 서점이거든요. 그래서 일단 제가 먼저 출판사에 제안을 했죠. 이왕이면 확실하게 해보고 싶은 마음에 동네책방에 책을 먼저 배포한 거고요. 편집자 출신으로서 이런 저런 실험을 해본 셈이에요.
오은: 『마녀체력』과 『마녀엄마』 두 권 모두 ‘마녀’가 들어가는데요. 이 이름을 지은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마흔 여성을 ‘마녀’라고 지은 거죠?
이영미: 그 단어가 어릴 때부터 담겼던 것 같아요. 어릴 때 보고 자란 드라마가 <삐삐 롱스타킹>이에요. 걔도 약간 마녀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아이를 낳고도 제일 많이 사준 책이 ‘마녀 위니 시리즈’예요. 그 마녀가 너무 귀엽고 재미있었어요. 그러면서 마녀라는 존재가 멋있다고 생각했죠. 마녀는 원래 약초를 수집해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산파 역할도 했대요. 타인을 돕는 강력한 여성의 이미지가 좋았고요. 이것을 나쁜 이미지로 두지 말고 저라도 좋은 방향으로 돌려보자는 생각에 사용하게 됐어요.
오은: 이제 작가님 소개를 해드릴게요. “작가, 운동 마니아, 강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는 사람. 책 읽을래, 나가서 놀래, 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책을 택하는 아이였다. 모범생 트랙에서 이탈해본 적이 없는 무난한 성장기였다. 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무려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시사잡지 기자로 합격했고, 이전까지 시험에는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취직한 줄 알았다. 그러나 인턴 기간이 끝나자 탈락했고, 그렇게 이영미는 처음으로 좌절의 쓴 맛을 보았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시작했다. 강금실, 손미나, 이적, 구혜선 등 유명인 전문 편집자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감각 있고, 기획력 좋은, 능력 있는 편집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지리산 여행을 갔는데, 남편을 포함한 몇 사람이 지리산 등반을 하겠다고 했다. 저질 체력이던 이영미는 함께 하지 못했고, 그게 너무 서러웠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혼자 짐을 싸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결심했다. 운동을 하자고. 마음 속에 생긴 작은 균열을 외면하지 않았던 이영미는 그때부터 새벽에 수영장을 다니고, 밤에는 공터를 달리고, 바구니 자전거로 슈퍼를 다니기 시작했다. 마흔 살에 시작한 운동은 그를 올빼미족 게으름뱅이에서 아침형 근육 노동자로 바꾸어놓았다. 지금도 TV를 켜는 순간은 요가매트를 꼭 같이 펴고, 운동하는 시간을 중요한 미팅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반드시 지킨다.
운동을 하고 난 뒤 이영미는 겁 없고, 담대한 사람으로 진화했다. 롤러코스터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신나게 탄다. 남의 시선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스트레스에도 강해져서 운동을 시작하고 난 뒤 13년 동안은 한 번도 이직하지 않았다. 2012년에 출판인회의에서 주는 출판인상 ‘편집부문’을 수상했고, 펭귄클래식코리아 대표, 웅진지식하우스 1호 대편집자를 지낸 후 퇴직했다. 틈날 때마다 두꺼운 SF를 읽으며 밤 시간을 보내는 독자. 42.195km 마라톤 중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시청하는 사람. 대금과 해금을 배우기도 했던 국악덕후이며, 귀걸이를 좋아하고, 물건을 사면 오래 쓰는 편이고, 여행도 같은 곳을 여러 번 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제보다 나은 인간으로 살기를 희망한다. 바라는 것은 튼튼한 마녀체력 할머니로 살면서 죽는 순간까지 명철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혹시 정정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신가요?
이영미: 딱 하나 있어요. 지리산에서 혼자 오지 않았어요.(웃음) 그게 너무 부끄러워서 밖으로 내색은 못했고, 꾹꾹 참으면서 일정을 다 소화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같이 올라왔어요.
오은: 운동은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새해 다짐도 하지만 보통은 실패로 돌아가잖아요.
이영미: 그런 일이 있을 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그냥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어요. 저도 사실 그런 편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때는 좀 달랐어요. 부부동반 여행이었거든요. 나도 오랜만에 시간을 내서 온 건데 남편은 다른 사람들과 등반을 한다는 게 다르게 느껴졌죠. 지리산 등반은 대단한 추억이잖아요. 문제는 제가 그걸 못 따라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결심을 한 거예요. 내가 체력 때문에 못 할 일은 없게 만들자는 게 그때의 결심이었어요.
오은: 이제 본격적으로 『마녀엄마』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이 책을 작가님께서 직접 소개해주시는 시간이에요.
이영미: 우선 너무 기뻐요. 『마녀엄마』는 이야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거든요. 특히 <책읽아웃>이라는 제가 제일 출연하고 싶었던 팟캐스트에 나오게 되어서 정말 기쁘고요. 제 정체성을 세 개로 나눈다면 제일 큰 것은 편집자, 다른 하나는 운동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하나가 여성, 아내, 주부로서의 삶이거든요. 다들 아시겠지만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일이죠. 그게 편집자, 운동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고요. 더구나 운동하는 삶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어떻게 시간을 내서 운동했어요?”라는 거였는데요. 처음에는 단순히 잠을 좀 줄여야 한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엄마로서의 태도를 바꾸면서 가능해진 거더라고요. 그 얘기를 해보고 싶어서 책을 썼어요. 살림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웃음) 조력자가 있었던 것 등이 제가 체력을 쌓는 데 중요한 조건이었으니까요. 그 얘기를 하고 싶어 쓴 책이에요.
오은: 시간을 따라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첫 직장에서 결혼한 여성 편집자도, 임신한 편집자도 없던 시절에 결혼을 하고, 임신 시기를 보냈잖아요. 가장 힘들었던 건 뭐였나요?
이영미: 요즘 젊은 분들은 상상 안 되실 거예요. 그때는 너무 이상하게도 결혼을 하면 회사를 그만 두는 분위기였어요. 어떻게 그런 시절을 살았나 싶은데요. 일단 저는 뱃속의 아이가 다칠까봐 너무 무서웠어요. 러시 아워의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한다는 것의 무서움이 너무 컸죠. 누가 제 배를 건드릴까봐서요. 그 기억이 지금도 있어서 배가 부른 여성은 무조건 보호해줘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어요. 또 한창 성장해야 하는데 결혼하고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저만 빠지게 된다는 것도 무서웠어요. 아쉽고, 속상하고요. 그래서 다시 사회생활을 하면 임신, 출산을 겪는 여자 후배들을 많이 생각하는 선배가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오은: 일하는 엄마가 자식한테 줄 수 있는 가장 큰 건 ‘독립심’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영미: 곁에서 지켜봐주는 전업 엄마의 시간과 정성을 어떻게 따라잡겠어요. 그런데도 욕심을 갖고 안타까워하는 게 문제 같아요. 어차피 못 따라갈 거면 자기합리화를 해야죠.(웃음) 아이가 혼자 결정해야 하니까 독립심이 늘어나겠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해주자, 그게 부모의 역할이다, 하는 식으로 합리화를 한 거예요. 황현산 선생님의 말씀처럼 꽃이 언제 피는지 들여다보고 있으면 진짜 안 피지만 내 일 하다가 어느 새 보면 확 피어 있잖아요. 자연도 그러한데 아이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어요. 그게 아이가 자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도 편해요.
오은: “내가 택한 최선의 부모 노릇은 “엄마나 잘 살자”였다”(8쪽)고 말씀하세요. 일하는 엄마, 그리고 운동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이영미: 아이가 어릴 때는 옆에 있지 못하는 엄마라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시간이 생각보다 짧아요. 엄마의 관심, 참견이 필요 없어지는 때가 너무 빨리 오거든요. 똑같이 주어진 24시간 중 저에게 운동할 시간이 많았던 건 아이를 쳐다보고 신경 쓰는 시간을 저에게 쏟은 덕이에요. 사춘기가 지나면 저절로 자기 세계가 형성이 되기 때문에 그 이후 부모는 조언을 하는 정도의 역할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때 시간과 정성을 엄마가 자신에게 쏟으면서 즐겁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훨씬 더 좋은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즐겁게 하는 모습이고요.
오은: 지금을 사는 젊은 엄마들, 특별히 일하는 엄마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이영미: 기대감만 낮추면 돼요. 제가 SNS에 자식에게 바라는 점을 이렇게 썼어요. 돈은 먹고 살 만큼만 벌면서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면 좋겠다, 여건이 되면 약한 사람을 도왔으면 좋겠다, 라고요. 친구가 그걸 보고 정말 자식한테 바라는 게 그뿐이냐고 되물었는데요. 저는 정말 그거면 다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만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데에는 재산이나 돈이 크게 필요하지 않아요. 이 정도면 됐지, 하고 흡족해할 때 오히려 행복하게 사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거든요. 저는 아이도 출세나 성공보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시간이 많은 어른으로 오래 건강하게 살길 바라요. 그래서 바라는 것이 체력과 독서, 악기 같은 거죠. 딱 그 정도의 기대감이니까 다른 욕심이 별로 생기지 않는 것 같아요. 그것만으로도 아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어요.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먼저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영업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영미: 황정은 작가님의 『계속해보겠습니다』예요. 주인공 자매의 옆집에 사는 순자 씨가 자매가 쉰 떡을 먹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보여주는 태도가 정말 좋거든요. 떡이 쉬었다고 하면 아이들에게 수치심을 줄까봐 떡이 참 맛있다, 우리집에 가서 밥이랑 바꿔 먹자고 말하는데요. 이 내용을 담은 원고가 있는데 『마녀엄마』에서 빠져서 아쉬운 마음으로 추천해요.
오은: 두 번째 질문, 『마녀엄마』가 한 권 있다면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으세요?
이영미: 남편과 아들에게 공동 상속하고 싶습니다. 제가 먼저 죽으면 남편이 유언장 내용을 아들과 상의하고, 남편이 먼저 죽으면 아들이 알아서 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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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