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 20년간 170개의 진부함을 기록하다
클리셰는 인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클리셰지요. 그래도 하나 골라본다면 전 공룡 이야기와 영화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지금의 지식이 반영되지 않은 구식 공룡들을 고를 거 같아요. 앞으로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을 거 같아서 더 정이 가지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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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 월간 Chaeg 53호

누구보다 대중문화를 즐기고 사랑하는 SF 작가 듀나. 그가 20년간 연재했던 영화, 드라마 클리셰 글이 '재미있는 영화 클리셰 사전'이란 부제를 나란히 달고 두 권의 책, 『남자 주인공에겐 없다』와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로 출간됐다. 

악당은 자기 계획을 털어놓기 일쑤고, 주인공들은 쉽게 기억상실증에 빠지며, 호러 영화에서 호기심 많은 조연은 꼭 목숨을 잃는 것들이 흔히 보이는 영화, 드라마 속 클리셰다. 너무 뻔해서 한편으로는 웃음을 주기도 하는 이러한 클리셰들을 작가가 정리한 것이 무려 170여 개이다. 좋은 예와 나쁜 예, 처음 시작된 계기와 재치 있는 변형 등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풍부하고 사려 깊은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소설가이자 비평가였던 움베르토 에코는 "클리셰 2개는 웃기지만, 100개는 감동을 준다."라고 말했다. 1999년부터 2020년까지 약 20년간 듀나가 기록해온 클리셰가 즐거움과 함께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개인 홈페이지에서 오랜 기간 연재하셨던 ‘클리셰 사전’이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원고를 다듬는 과정에서 이 책이 “보르헤스가 언급한 우스꽝스러운 중국 백과사전”과 비슷한 모양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는데요, 완성된 책의 소감은 어떠신가요?

생각보다는 정상적인 모양으로 나왔어요. 편집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월이 어느 정도 흘러서 과거에 그 글을 쓰던 저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책에 새로운 일관성을 부여할 수 있었어요.

책에 정말 많은 클리셰가 실렸습니다. 이중 작가님이 특별히 여기시는, 혹은 기억에 남는 클리셰가 있을까요?

클리셰는 인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클리셰지요. 그래도 하나 골라본다면 전 공룡 이야기와 영화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지금의 지식이 반영되지 않은 구식 공룡들을 고를 거 같아요. 앞으로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을 거 같아서 더 정이 가지요.

옛 클리셰 글에서 ‘후일담’을 통해 변화된 현재 시점의 상황과 생각을 남기시기도 했습니다. 짧은 글을 통해 1~20년의 변화를 느껴볼 수 있었는데요. 과거에 비교해 대중 창작물에 생긴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윤리적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엔 당연시 여겼던 혐오적인 사고방식이 더 이상 습관 속에서 자연스러운 척할 수 없게 되었죠. 그에 대한 반발이 상당하지만, 지금은 그게 역사의 진행 방향입니다. 당연히 같은 주제에 대해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20년 전과는 다른 식으로 보고 이야기하게 되지요.

20년간 쌓인 많은 양의 원고를 책으로 만드는 과정 중에도 ‘파란 눈의 예수’, ‘부장섹스’, ‘성급한 (또는) 덜 익은 화해’ 등 새 클리셰들을 추가해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창작물에서 과거만큼 다양한 클리셰들이 새로이 등장하게 될까요?

당연하지요. 우리는 새 이야기를 갈구하는 것만큼이나 진부함 속에서 편안하려 합니다.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새로운 것 중 일부는 곧 따분할 정도로 자주 반복되겠지요. 이미 팬픽이나 웹 드라마의 소비자들은 이 영역에서 어떤 것들이 게으르게 반복되고 있는지를 알고 있어요. 이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단지 이를 과대평가하며 불필요한 의미를 부여할 때 문제가 생기지요.

코로나 사태로 문화산업에 큰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요즘 영화관, 서점 등 방문이 어려운데요. 작가님은 적극적인 콘텐츠 소비자로서 이 시기를 어떻게 살아가시는지 궁금합니다.

전 여전히 영화관에 다니고 있어요. 횟수는 줄고, 거기서 보는 영화의 종류도 달라졌지만요. 여러 불길한 조짐이 보이긴 하지만 전 여전히 영화관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오로지 영화관 안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이 있지요. 

그래도 OTT와 VOD가 고마운 대안이고 이들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보건교사 안은영>은 오로지 넷플릭스라는 OTT 안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었던 프로그램입니다.

최근 관심 있게 살펴보시는 책이나 영화가 있으신가요? 이 글을 읽을 독자들에게도 추천해주세요.

최근엔 넷플릭스에서 <뤼팽>을 보고 있어요. 3회까지 봤는데, 지금까진 고정 캐릭터를 현대식으로 이용하는 방식이 BBC의 <셜록>보다 나은 거 같아요.

현재 준비하고 계신 차기작을 귀띔해주세요!

몇 년 전부터 말로만 쓴다고 했던 『평형추』의 장편 버전이 곧 나옵니다. 지금은 옛날 영화들에 대한 논픽션을 쓰고 있고요. 그리고 언제나 단편 작업은 하고 있어요.




*듀나 (Djuna) 

소설뿐 아니라 영화 평론 등 여러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SF 작가. 1992년부터 영화 관련 글과 SF를 쓰며, 각종 매체에 대중문화 비평과 소설을 발표하고 있다. 장편소설 『민트의 세계』, 소설집 『구부전』, 『두 번째 유모』, 『면세구역』, 『태평양 횡단 특급』,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연작소설 『아직은 신이 아니야』, 『제저벨』, 영화비평집 『스크린 앞에서 투덜대기』, 에세이집 『가능한 꿈의 공간들』,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등 약 40권의 책을 냈으며, 영화 [무서운 이야기]의 각본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 발표한 『구부전』이 미국에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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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