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지인, 그 곁의 지인들에게 입소문으로 전해져 온 이명학 교수의 한자 칼럼. 지난 5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을 얻게 됐다. 그의 재치 있는 한자 풀이를 들으며 “우리만 몰랐어요?” “다들 알고 있어요?”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한 방송인 유재석과 조세호의 뜨거운 반응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대중의 눈높이와 절묘하게 맞닿았던 것이다.
그의 한자 강의는 방송 후 유튜브를 통해서도 지속적인 인기를 끌며 연일 조회 수를 갱신하는 중이다. 저자는 그동안 연재해온 글을 책에 담아내고자 문장과 단어를 다시 한번 섬세히 살피고 정교히 다듬으며 첫 단행본 『이명학 교수의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나는 한자』를 완성해냈다.
『이명학 교수의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나는 한자』가 출간되었습니다. 소감이 어떠하신가요?
생각하지도 않은 기회에 이런 결과물이 나오고 보니 세상일은 누구도 장담할 것이 없나 봅니다. 애초 출간을 목적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니었는데 5월 ‘스승의 날 특집’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자 다음 날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가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평소 여러분께 한자어 쓰임에 대해 꼭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이 활자화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주신 덕분에 ‘한자가 재미있다니!’라는 젊은이들의 적잖은 감탄과 호응을 이끄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방송 이후 선생님의 일상에도 변화가 생긴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이번에도 놀랐지만, ‘방송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20여 년 동안 한자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논문도 발표하고, 신문에 칼럼도 쓰고, 여기저기 강연도 다녔는데 늘 ‘고요한 바다’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방송에서 ‘양말’ ‘용수철’ ‘섭씨’ 세 단어를 겨우 1~2분 동안 설명했는데 방송 후 ‘보리차가 끓는’ 듯한 반응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솔직히 지난 20여 년의 세월이 허망하다는 허탈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유튜브 조회 수가 66만여 회가 되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한자는 영어보다는 가깝고 익숙하게 여겨지지만, 막상 공부하기에는 엄두가 쉽게 나지 않는 것 같아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영어는 표음문자로 알파벳을 익히면 일단 읽을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파벳을 익히면 ‘boy'를 ‘보이’라고 바로 읽지요. 그런데 한자는 표의문자입니다. 누군가 ‘天’ 이 글자의 음과 뜻을 알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읽어야 할지 뜻이 무엇인지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표음문자보다 공부 과정이 두 단계가 더 있으니 복잡하지요.
또한 지금 우리 사회는 영어 문화권의 영향 아래 있으니 영어의 필요성이 높지요. 그에 비해 한자는 잘 몰라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조선시대 때도 그랬을 겁니다. 70~80년대와 달리 교과서, 신문을 비롯해 상호, 간판 등 우리 주변에 한자로 쓰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자 학습이 가뜩이나 어려운데 활용도마저 낮으니 배우고자 하는 열의도 당연히 적은 것이지요.
“우리말을 정확하게 하려면 한자를 잘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말의 70퍼센트 이상이 한자어입니다. 즉 한자어는 한자로 만들어진 낱말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학교에서 한자어를 한글로 쓰고 사전적인 뜻을 암기하듯 외우고 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익히면 대강의 뜻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한자어는 한자로 익히는 것이 더디고 힘은 들지만 정확한 뜻을 익힘과 동시에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귀(龜)와 염(鹽)과 같이 복잡한 한자를 쓸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자로 쓰는 것은 개인의 몫입니다. 다만, 문맥 속에서 대강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고 정확한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말하기와 글쓰기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이 한자 학습의 중요한 이유입니다.
각종 언론, 광고판, 안내문 등등 잘못된 한자어 표기를 많이 보셨을 텐데요, 지금껏 가장 어처구니가 없었던 ‘발견’을 꼽으신다면요?
언젠가 지하철을 환승하다가 표지판에 ‘장충단(?忠壇)’의 ‘壇’을 ‘檀’으로 잘못 표기한 것을 보고 사진을 찍어서 서울시에 보내주었던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 후 보니 수정을 했고요.
황당한 것은 방송이지요. 몇 년 전 축의금이 얼마가 적당한가, 하는 내용으로 방송을 했는데 이러저러한 예를 들어 설명을 하고는 봉투를 들고 식장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끝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 피디가 손에 든 봉투에는 한자로 ‘賻儀(부의)’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입니다.
2020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머문 학교를 뒤로하고 퇴임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시는 기분이실 듯도 해요. 조금 앞선 질문일 수 있으나 궁금한 마음에 여쭤봅니다. 다가오는 새해에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으시다면요?
글쎄요. 코로나19가 쉬 종식될 것 같지도 않고요. 따라서 일상생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틀을 잡지는 못했지만, 배운 것이 고전이니 고전에 대해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결국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공존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기회에 인간이 저지른 환경 파괴로 인해 얼마나 큰 피해를 보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명학 교수의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나는 한자』를 접하게 될 많은 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한자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글자 모양도 복잡하고 음과 뜻을 익혀야 하니 당연히 힘이 들 겁니다. 그러나 내 주변 사물과 사람들과 주고받는 대화 속의 한자어에 대한 관심 즉 저 사물 혹은 저 단어는 한자로 어떻게 쓸까? 왜 저런 뜻이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흥미도 생기고 지식도 확장되리라 믿습니다.
한자는 우리의 언어, 문자 생활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한글 창제 이전 오랜 세월 우리의 문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만큼 우리 언어에 미친 영향은 상당합니다. 불가분의 관계지요. 한글과 한자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균형을 이룰 때 우리의 언어생활은 훨씬 풍요로워지리라 생각합니다.
* 이명학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동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정년퇴임 후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한문교육학회 회장, 한국고전번역원 원장을 역임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여 쉽고 재미있게 한자 이야기를 들려줘 화제를 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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