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송은 서울국제작가축제, 한국문학번역원과 함께 합니다. *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siwf.or.kr |
그런데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구원해줄 수 있을까? 그런 게 정말 가능할까? 그때의 나는 다소 희망에 찬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내가 그 단어를 떠올렸던 이유는 실은 지원과 내가 서로를 구원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그저 서로가 어떤 식으로든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는 증거였을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들이었던 게 아니라 마침 구원이 필요했던 두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정영수 소설가의 『내일의 연인들』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정영수 소설가 편>
오늘 모신 분은 일상의 순간과 감정, 사건들을 아주 현실감 있게 그려내는 소설가입니다. 첫 번째 소설집 『애호가들』에 이어, 이번에는 ‘연인생활소설’이라 할 만한 이야기로 돌아오셨어요. 소설집 『내일의 연인들』을 쓰신 정영수 소설가님입니다.
김하나 : 제가 지금까지는 PDF로 책을 봤는데, 오늘 작가님 직접배송으로 책을 가져오셔서 실물을 처음 봤어요. 책이 너무 예쁘네요.
정영수 : 그렇죠?
김하나 : 책 외모에 대해서 만족하시나요?
정영수 : 진짜 너무 예쁜 것 같아요. 저는 엄청 만족하고 있고요. 표지 보시고 만져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하나 : 맞아요. 책 질감도, 무광 코팅이 되어 있고 느낌이 참 좋고 무게도 좋은데. 이 민트그린 컬러에 대해서는 관여하셨나요?
정영수 : 사실 저는 약간 화사한 노란색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시안들 중에서 초록색 계열이 좋다고 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고 ‘많이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맞겠지’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너무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김하나 : 편집자로 일하고 계시기도 하잖아요. 작가로서 책을 낼 때는 판단을 더 못 내릴 것 같은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자기 머리 못 깎는다고...
정영수 : 정말 어렵죠. 오히려 제가 편집자로 일할 때는 확신을 가지고 설득하는 편인 것 같아요. 확신이 오는 순간이 있는 거죠.
김하나 : 이 책은 이렇게 가야 된다.
정영수 : 네.
김하나 : 제삼자의 눈이니까.
정영수 : 오히려 거리를 조금 두고 봐서 그런지. 그런데 제 표지는 (결정하기가) 사실 조금 어렵기는 했어요.
김하나 : 책을 열면 제사가 있어요. “왜 이렇게 뺨이 창백하죠? 장밋빛이 어떻게 그토록 빨리 사라질 수 있나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에서 인용하신 부분인데, 저는 이 부분이 책을 정말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영수 : 네. 사실 제사가 조금 망설여지는 부분도 있어요. 제사를 쓴다는 건 어떤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독자 분들이 이 소설집에 있는 소설들을 다 읽고 자기만의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약간 너무 방향을 정해주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기는 했거든요. 그런데 사실 제 소설이 그렇게 엄청 다층적으로 열려있는 소설들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 정도 느낌을 주고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서 한 번 넣어봤습니다.
김하나 : 이 책에 보면 ‘시작은 다 새로웠지만 마지막은 놀라울 정도로 다 비슷비슷하게 끝나버렸다’는 부분도 있었어요. 사랑을 시작할 때는 영원히 이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고, 이런 놀라운 상태가 계속 지속될 것만 같고, 하지만 그게 놀랍게도 씻은 듯이 사라져버릴 때도 있잖아요. 저는 ‘사랑을 해본 사람이면 이 책을 읽으면 여러 부분에서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특히나 사랑을 처음 해본 사람보다는 이별도 해보고 여러 면을 겪어본 사람이면 이 책을 정말 재밌게 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사랑꾼이신가요? (웃음)
정영수 : (웃음) 질문이 너무 의외여서...
김하나 : 갑자기 훅 들어갔죠? (웃음) 조금 더 점잖게 질문을 해보자면,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에 모두 연인들이 등장하는데요. 그냥 그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아주 다채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영수 : 네.
김하나 : 그러면 연애라고 하는 행위를 내가 할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의 연애담을 듣거나 관찰할 때도 있을 텐데, 그럴 때 생각을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정영수 : 음... 연애 이야기에 관심이 조금 많은 편인 것 같아요. 단순히 ‘연애 이야기’라고 말하면 너무 단순해질 수도 있는데, 편집자님이 ‘연애생활소설’이라는 문구를 써주셨거든요.
김하나 : ‘연애생활소설’, 너무 딱이죠.
정영수 : 네. 이게 ‘연애 생활 소설’ 이렇게 따로 읽히기도 하는데, 하나로 ‘연애생활소설’이라고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삶에서 되게 중요한 부분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게 연애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연애를 안 한다고 삶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건 아니지만, 연애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들도 굉장히 많은 것 같아서, 저는 그런 관계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김하나 : 『내일의 연인들』에 여덟 편의 단편이 들어있는데, 첫 번째 단편이 「우리들」입니다. ‘나’가 등장하고 ‘정은’과 ‘현수’ 커플을 만나게 되죠. 그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계기는 글쓰기입니다. ‘나’는 편집자 경력이 있는 사람이죠.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참 기묘하게 전개가 되더라고요. 약간의 반전 같은 게 있고, 그러면서 정은과 현수에 대해서 ‘나’가 느끼는 감정이 이들은 너무 보기 좋은 커플이고, 세련되기도 했고,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에게 깊이 의지하고 있는 것도 느껴지고... ‘나’가 정은과 현수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걸까요?
정영수 : 조금 더 추가 설명을 해보자면, 저는 기본적으로 관계가 오해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오해를 하면서 관계가 진전돼 나간다고 생각해요. 특히 연인 관계에서는 더 오해가 발생하고. 왜냐하면 기대하는 것들이 있고 그러니까. 기대하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오해로 표출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굉장히 흔한 대사 있잖아요. ‘너답지 않게 왜 그래?’
김하나 : ‘나다운 게 뭔데?’ 언제나 세트로 가는 문장이죠.
정영수 : 사실 되게 다층적인 의미가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너답지 않게 왜 이래?’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이 실제로 뭐 다운지는 그 사람이 판단하는 건데, 상대가 ‘그 사람이 이러리라’고 생각했던 걸 일종의 강요하고 있는 거죠. 자기만의 기대였던 거죠. 그래서 ‘나다운 게 뭔데?’라고 하는 건 ‘왜 네가 원하는 대로 나를 보고 있니?’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는 거죠. 질문하신 것과 연결 짓자면, 주인공은 이 사람들(정은과 현수)을 부러워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자기가 발견하고 싶은 어떤 사람들의 모습, 이 사람들이 이랬으면 하는 모습을 그 사람들한테 입혀놨다고 볼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본인이 그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면서 그것들을 강화하는 일을 하게 되는, 그런 과정을 그렸던 것 같아요.
김하나 : 작가님의 소설들을 보면 연애 생활도 중요하지만 글쓰기 생활도 중요한 것 같아요. 같이 협주를 한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혹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화두인가요?
정영수 : 그런데 여기에서는 글쓰기라는 행위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인 것 같기도 해요. 글쓰기는 사고를 조금 더 체계적으로 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고, 결국 우리가 이미 겪은 일들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 그것들을 다시 판단하잖아요.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나쁜 일은 아니었어’, ‘아니야, 그건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어’ 이렇게 계속 생각이 바뀌잖아요. 그리고 생각하다 보면 잊어버렸던 것들도 문득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그냥 죽을 때까지 계속 과거의 일들에 대해서 재평가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그걸 글로 쓰면 더 체계적으로 되기는 하겠지만, 누구나 하고 있는 과거를 재해석하는 일들을 어떤 행위로써 표현을 해본 거죠.
김하나 : 이전 소설집 『애호가들』을 읽으면서도 그랬고 『내일의 연인들』을 읽으면서도 그랬고, 작가님에게 여름이 피어 올리는 것들은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나 매미 소리 같은 것, 여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여름이 또 늘 사건사고가 많지 않습니까? 연애 사건사고도 많고, 뭔가 뜨거운 계절이기도 하고. 여름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세요?
정영수 : 제가 어렸을 때는 겨울을 좋아했거든요.
김하나 : 너무 신기한 게, 여름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쓰시는 작가 분들이 나오셨을 때 ‘여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면 ‘여름 싫어요, 겨울 좋아요’라고 많이들 말씀하시는데...(웃음)
정영수 : (웃음) 황인찬 시인이 그렇게 이야기했죠? 그 방송 들었어요.
김하나 : 아, 그러셨어요? (웃음) 어렸을 때는 겨울을 좋아하셨는데...
정영수 : 그 느낌이 왜 좋았냐 하면, 코끝에 다가오는 시베리아의 향기 그리고 추울 때 느껴지는 살아있는 감각 같은 것들 때문에 좋았거든요. 그런데 조금씩, 살아있음에 대한 감각이 내가 느끼는 것보다 눈앞에 펼쳐지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여름이 되면 나무가 무거울 정도로 나뭇잎들을 가득 달고 무성해지잖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 무서울 정도로 생명력의 기운이 느껴져요. 전체적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이 너무 풍기고, 한여름에는 풀벌레 소리 매미 소리 같은 것들이 정말 시끄럽잖아요. 그게 진짜 너무 생생히 다가오는 거예요. 겨울에는 느끼지 못하는 생명의 기운이. 그게 저한테 종종 압도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어요. 그 생명력의 기운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에 좋고, 그래서 어떤 과거의 시점을 회상할 때 더 선명한 거죠. 겨울에 여름을 떠올리면, 아직은 단풍이 있지만, 한겨울이 돼서 깜깜해졌을 때 나뭇잎이 없는 나무를 보고 있으면 여름의 생명력들이 다 꿈같아요. 있었던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거죠.
* 책읽아웃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