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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타인을 살리는 작은 호의 (G. 조해진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158회)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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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옆에 소설을 쓰는 내 삶에 고맙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하는 조해진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0.10.22)


이 방송은 서울국제작가축제, 한국문학번역원과 함께 합니다.

*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siwf.or.kr


지금 올바른 방법으로 그를 보살피고 있는 것일까. 의심스러웠지만 도움을 청할 사람은 없었고, 약국은 문을 닫은 시간이었다. 젖은 수건이나 생강차가 몸살을 치료하기에 허술한 건 분명했지만, 민은 실수 없이 잘하고 싶었다. 나한테 왜 이래요? 어제 아침에 그는 물었고 그때 민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또다시 그 질문을 해 온다면 민은 이곳이 가구점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생각이었다. 가구점이기 때문에, 네가 숨어든 곳이 하필 이곳이기 때문에 너를 향한 호의는 내게 필연적이라고.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조해진 작가님의 장편소설 『여름을 지나가다』에서 한 부분을 읽어드렸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조해진 작가님의 소설에는 등장하죠. 조해진 작가님의 소설은 타인에게 베푼 아주 작은 호의가 사실은 얼마나 커다란 힘인지 자주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소설가 조해진 작가님을 모시고 우리가 품게 되는 진심과 자신의 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찾아주는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인터뷰 – 조해진 편>

오은: 처음부터 짓궂은 질문인데요. 소설 쓰는 삶에 고맙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사실인가요?(웃음) 

조해진: 물론 힘들지요.(웃음) 그러나 제가 선택한 것이니까요. 17년째인데 아직까지는 쓰고 있으니까 고마워요. 

오은: 저희가 작년 ‘대산문학상’을 함께 탔잖아요. 작가님과 <책읽아웃> 녹음을 함께 하게 되니 남다른 친밀감이 느껴지는데요. 작가님 출연 소감은 어떠신지 듣고 싶어요. 

조해진: ‘서울국제작가축제’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서 좋고요. 오은 시인님과 농담을 했었잖아요. “난 언제 불러줘?”(웃음)라고 묻곤 했는데요. 막상 그게 혹시 부담 됐을까 또 걱정이었어요. 장난이었는데 말이에요. 한동안 미안했어요. 

오은: 말씀하셨듯 조해진 작가님을 모신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2020 서울국제작가축제’ 행사의 일환인데요. 먼저 말씀드리자면 ‘2020 서울국제작가축제’는 한국과 세계의 작가 분들이 만나는 행사예요. 올해는 이 행사가 코로나-19 탓에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요. 모든 프로그램은 11월 2일부터 8일까지 축제 공식 웹사이트(siwf.or.kr)에서 감상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행사에서 나이지리아의 작가 ‘치고지에 오비오마’와 대담을 하신 조해진 작가님께서 저희 <오은의 옹기종기>에도 찾아주신 거죠. 실은 저도 얼마 전에 한 세션의 사회를 맡아 사전녹화를 다녀왔는데요. 카메라가 엄청 많더라고요. 해외에 계신 작가님과 온라인 연결을 해야 하기도 했고요. 새로운 경험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님은 어떠셨어요? 

조해진: 저도 그 스케일에 압도를 당했어요. 소규모 스튜디오를 생각하고 갔다가 방송국을 연상케 하는 규모에 놀랐고요. 준비를 많이 해주신 한국문학번역원 스태프 분들께 감사드려요. 온라인 대담이라 미래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느낌도 들고 재미있었는데요. 해외 작가님을 직접 만나면 사적으로 대화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것을 못해서 좀 아쉽기도 했어요. 

오은: 치고지에 오비오마 작가님과는 어떤 주제로 대담을 하셨나요? 

조해진: ‘나를 둘러싼 모험’이라는 소주제로 이야기를 나눴고요. 세부적으로는 ‘마이너리티’에 대해서 주로 얘기했어요. 한국에 번역된 치고지에 오비오마 작가님의 책 제목이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1, 2』예요. 그 책과 저의 단편 「산책자의 행복」을 중심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오은: 소수자성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가 오갔을 것 같네요. 이 행사에 참여한 세계 25명의 참가작가 작품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고 해요. 서울국제작가축제 공식 웹사이트에 전자책이 배포된다고 하니까요. 꼭 조해진 작가님의 작품과 다른 멋진 작가님들의 작품을 즐겨주세요. 이제 조해진 작가님 소개를 해드릴게요. 소설가. 진심주의자. 내향적인 어린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혼자 시간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와 몽상이었다. 가장 처음으로 매료된 책은 『어린 왕자』였고, 가상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 재미있어 언젠가 나도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수업시간이나 자율학습시간에 선생님들 몰래 참고서 아래에 소설책을 숨겨놓고 읽어가며 꿈을 키우던 조해진. 그러나 작가나 소설가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소설가는 너무 대단해 보였고, 먼 곳에 있는 아득한 존재로만 느껴졌다. 

밤에 혼자 고속버스터미널에 가서 들어는 봤지만 가본 적 없는 소도시의 이름을 대고 표를 한 장 사서 그 길로 짧은 여행을 떠나기도 했던, 불안을 미리 가불해서 쓰던 시절로 조해진은 자신의 청춘을 기억한다. 대학에서 처음 소설창작 강의를 들었는데 의외로 호평을 받았고, 계속 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서른이 되던 해에 <문예중앙>에 「여자에게 길을 묻다」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등단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등단한 지 10년쯤 되었을 때는 너무 일찍 등단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등단은 했지만 청탁도 없고, 책을 내보자는 제안도 없던 때.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어 강사 일을 하다 폴란드 포즈난까지 가게 됐다. 그곳에서 나라는 사람이 그 어떤 곳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언제든 불안전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절감했던 것. 소속감 없이 떠도는 사람의 고독과 불안은 조해진은 큰 정체성 중 하나이다. 인생의 큰 스승이라고 여기는 작가는 프리모 레비, 인생의 영화는 차이밍량의 <애정만세>다. 가장 좋아하는 향은 커피향이고, 하얀 고양이 나무 그리고 귀여운 고양이 단심이와 살고 있다. 나무는 슬프거나 힘들 때면 평소보다 더 물끄러미 바라봐주는 고양이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가 가장 정신이 맑은 시간. 그 시간에 소설을 쓴다.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이기적인 사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라, 쓰는 게 유일한 계획이다. 잘 쓰고 싶다. 누군가에게 어떤 문장을 선물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 여기까지입니다. 

등단 10년쯤 됐을 때 너무 일찍 등단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것은 왜일까요? 

조해진: 제 느낌에 내 스타일을 찾는 것이 등단 직후보다 조금 더 늦게 왔던 것 같아요. 등단하고 5-6년 후에 조금 더 제가 저한테 맞는 글, 문장을 찾아갔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등단할 때는 준비가 안 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던 거죠. 

오은: 폴란드에서의 경험이 조해진의 소설 세계에 아주 중요할 것 같아요. 이방인의 느낌, 소수자의 느낌이 작가님의 소설에는 많이 담겨 있잖아요. 

조해진: 그렇죠, 저는 임시직이었지만 직장도 있고, 합법적인 신분증도 있고, 기타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었는데요.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나도 이렇게 불안한데 그런 것이 없는 사람들은 어떨까,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로기완을 만났다』를 그때 쓴 것이고요. 합법적인 조건들을 갖고 있어도 나 역시 언제든 사라질 수 있고, 나 역시 부유하는 디아스포라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서 그런 생각이 작품에 많이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오은: 이번에는 작가님이 직접 『여름을 지나가다』에 대해 소개해주시는 시간입니다. 

조해진: 이 소설은 ‘수호’와 ‘민’이라는 두 인물에 관한 이야기예요. 수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신용불량자가 된 상황이고요. 민 역시 자신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회사의 어떤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에요. 두 사람 모두 그렇게 살려고 했던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 역시 어떤 상처를 안게 된 인물들이죠. 이 둘이 폐업한 가구점에서 만납니다.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거예요. 적극적으로 서로를 보살펴주고, 치유해주진 않지만 조금씩 겹치면서 조금씩 서로를 보살펴주는 이야기입니다. 

오은: 2015년 문예중앙 출간판의 개정판이기도 한데요. 개정을 하시면서 특히 공들여 고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조해진: 민의 원래 직업은 회계사였는데 어떤 사건에 연루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 충동적으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인물이에요. 그러면서 매물로 나온 누군가의 집에 30분씩 머물며 그의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장면들이 있어요.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고, 지금의 삶이 고통스러워서겠죠. 예를 들어 비행 승무원의 집에 가면 내가 승무원이 됐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게 2020년에는 불편한 지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조심스럽게 쓰려고 많이 공들였고요. 수호도 이름을 바꿨어요. 원래는 ‘수’였거든요. 제가 성별이나 성격을 유추하기 힘든 중성적인 이름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는데요. 지나고 생각하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물을 이름으로 너무 감추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요. 그래서 이름을 고쳤어요. 그밖에 소소하게 명칭을 바꾼 부분도 있고요. 

오은: 수호의 경우, 옥상 아르바이트를 하면 시급이 약 1천원 정도 올라간다는 대목들이 있죠. 지금 이 시대 청년들의 삶이 어떤 모양으로 흘러가고 있는지가 너무 잘 드러나요. 그런 부분을 읽는 것도 참 좋았어요. 

조해진: 맞아요, 2015년에 발표한 소설이지만 여기 등장하는 거주지의 불안이라든지 임대료 폭등, 노동자의 죽음 등은 5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죠. 

오은: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저마다의 여름을 지나가는 청춘들에게 이 소설을 안부 인사처럼 전하고 싶었다” 는 바람을 적으셨는데요. 이 바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조해진: 지금은 생각이 좀 다른데요. 5년 전의 저는 저를 기성세대라고 생각했어요. 기성세대 혹은 어른으로서 세상의 잘못된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애틋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고요. 노력한 만큼 얻지 못하는 세대에 대해 미안해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나 아직 어려(웃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은: 한편 ‘호의’라는 단어를 조해진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겠죠. 타인을 살리는 작은 호의는 단편 「빛의 호위」에도 중요하게 등장하는데요. 작가님의 인물들이 이런 작은 호의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이유가 뭘까요?

조해진: 등단 초기에는 좀 폐쇄적이고, 스스로를 몰아가며 괴로워하는 인물을 썼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로기완을 만났다』를 쓸 때부터 인물과 인물의 연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순간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폴란드 경험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로기완을 만났다』 보다는 『여름을 지나가다』가, 그보다는 『단순한 진심』이 조금 더 열려 있고, 타인에게 적극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글을 써온 과정이 열려 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결국 그런 순간들이 우리 삶에 잠깐씩 반짝이는 순간들인 것 같고, 그 다음 시간도 견디게 하는 것 같아요.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먼저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영업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조해진: 최근에 부산에 다녀왔어요. 다른 도시에 가면 그곳의 작은 서점에 가서 책 사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주책공사’라는 작은 서점에서 허수경 시인님의 유고 산문집 『오늘의 착각』을 사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읽었어요. 최근에 시인님의 2주기였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오은: 두 번째 질문, 『여름을 지나가다』가 한 권 있다면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으세요?

조해진: 요즘 치과를 다니고 있는데요. 서글펐어요. 그런데 간호사님이 손을 꼭 잡아주시더라고요. 다 그렇다고, 이런 일 다들 겪는다고 말씀해주시는데 그게 고마웠어요. 그분에게 작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분이 떠오르네요.(웃음) 

오은: 작은 호의가 마음을 움직였네요. 소설과 삶이 일치하는 경험을 들으니까 정말 좋습니다. 

조해진: 아마 못 드릴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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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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