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마치 그림 같다. 글자를 읽는데 색감이 떠오른다. 파스텔 톤으로 이루어진 그림은 마치 글 같다. 하나하나의 일러스트에서 깊고 풍부한 이야기가 읽힌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AM327(김민지) 저자가 자신의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물건을 신중히 고르고, 애정을 담뿍 담아 쓰고 그린 『물건이 건네는 위로』에 관한 이야기다. 약 석 달 전, 자기만의 작업실을 갖게 된 저자는 그곳에서 외주 일을 병행하며 이번 책을 준비했다. 지금도 그 공간에서 일주일 중 하루는 오전에 색연필 수업을, 오후에 아이패드 수업을 한다. 알고 있는 것을 나누려고 시작한 일에서 도리어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사물을 대하는 태도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제가 작업하는 그림 에세이가 글로 우선 생각을 풀어낸 후 그것을 이미지화시키는 순서로 진행돼요. 그림 에세이를 위한 글감을 찾기 위해 당시 작업실로 쓰고 있던 거실 주변을 둘러보니, 나를 닮은 물건들이 내 주변을 감싸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생경하게 다가오더라고요. 물건을 구입하던 당시의 사연과 내 마음의 꼴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어요. 어서 종이에 그것들을 끄적여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물건에 대한 글쓰기의 시작이었어요.
어떤 기준으로 책에 담을 물건과 이야기를 고르셨나요?
마음 가는 대로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이 질문을 받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목소리가 큰 물건 순서로 골랐던 것 같아요. 곁에 있는 사물을 지긋이 바라봤을 때 물건과 나 사이의 사연을 제게 가장 큰 목소리로 읊어대는 것부터 골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네요. 글과 그림이 어느 정도 쌓이고 나니 글의 성격이 크게 세 갈래로 분류가 되어서 그 갈래에 맞는 물건을 골라 고르게 작업했어요.
책에 담지 못해 아쉬운 물건도 있는데요. 여름이면 제가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옷과 어울리는, 아끼는 샌들이 있어요. 그 샌들에 관한 글도 써봤는데 비슷한 사연이 있는 다른 물건과 겹치기도 하고, 아끼는 물건임에도 책에 싣고 싶을 만큼 인상 깊게 풀어내지는 못해서 최종적으로 빼게 되었어요.
연인과 관련된 몇 가지 사물(웨딩링, 아카시아 원목 책장, 전기 자전거 등)에 관한 글이 책에 담겼는데요. 연인을 만나고 함께하며 변화한 사고의 방향이라든지 확장된 사고의 폭이 잘 느껴집니다. 실제로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달라진 점이 있나요?
같이 산다는 건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매 순간 느끼게 하는 사건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저와 남편 둘 다 일찍 독립해서 오래 자취 생활을 하다가 만난 거라 타인의 삶이 내 안에 깊이 들어온 느낌이 처음엔 참 생소했어요. 남편의 생활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아, 저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한 것 같아요. 아마 남편도 마찬가지겠죠.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를 체감하면서 전반적으로 내 생각도 유연해지는 것이 느껴져요.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서로를 온전히 닮는다기보다 각자의 영역을 지키되 우리의 중간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 같아요.
저자 소개 글에 ‘이야기를 그리는 작가’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글을 쓰는 작업과 그림을 그리는 작업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게 글과 그림은 공통적으로 생각을 표현해내는 수단이에요. 메시지가 담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우선 짧든 길든 생각을 풀어낸 글이 필요해요. 글로 생각을 풀어내는 단계를 생략할 수도 있지만 제 경우는 글을 바탕에 두고 그림을 그려야 방향성이 더욱 명확해지기 때문에 순서대로 작업하는 것을 지키려고 해요. 일기나 메모와 같은 글을 통해서 한 단계 나아가 이미지로 풀어내는 것이 제 작업 순서이기 때문에, 제게 글과 그림은 과정 중에 있는 단계의 차이 정도로 여겨져요.
지치거나 외로운 순간에 누군가와 소통하며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순간이 있는데요. 그럴 때 스스로 충전하거나 힘을 얻는 방법이 있나요?
지치거나 외롭다고 느낄 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평소 생활의 틀을 지키는 거예요. 무기력할수록 억지로라도 나가서 걷고 귀찮아도 청소기를 돌리고 울적할수록 밥을 직접 차려 먹으려고 해요. ‘지금 우울하니까 이것저것 미루고 대충 때우려는’ 마음이 결국에는 저를 더 가라앉게 만들었거든요. 기본적인 생활을 지키면서 살다 보면 그 감정 또한 지나가더라고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시는 것 같습니다. 회사 생활과 프리랜서 생활, 그사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며 많은 일들을 통과해 맞이한 지금, 어떻게 살아나가고 싶다고 생각하세요?
몇 년째 제 삶의 가장 큰 화두는 ‘균형’이에요. 삶의 균형이라는 게 살아 있다 보니 가까스로 만들어 놓는다고 해서 유지되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기에 매번 균형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꼭 프리랜서이기 때문만은 아닌 거 같아요. 앞으로 어떤 삶을 살더라도 균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것이 목표예요. 그러면 자연스레 건강한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고 생각해요.
창작 활동뿐만 아니라 상업 일러스트 작업과 개인 작업실에서의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계시는데요. 그 일들을 확장시키는 또 다른 즐거운 계획이 있나요?
매년, 이맘때가 되면 다음 해의 달력을 작업하고 굿즈를 만들어요. 제 온라인 스토어나 독립 서점에서 엽서와 포스터, 텀블러 백과 같은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재입고해야 할 것들과 새로 만들 것들을 마음의 숙제처럼 늘 생각하고 있어요. 달력 만들 때 탄력을 받아서 실행에 옮겨야겠어요. 잡지나 사보 등에 들어가는 외주 일은 홍보 없이도 아직까진 감사하게도 계속 일이 들어와서 꾸준히 작업하고 있어요.
그림 수업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같은 꽃을 그리더라도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애착이 생기고 특별해진다고 믿거든요. 처음에는 따라 그리기에 가까운 수업이었는데 이번 달부터는 이야기를 담는 방향으로 변형했어요. 수업의 최종 목표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아닌 그림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되었으면 하는 거예요. 제가 그런 것처럼요.
현재까진 일정 기간 작업해온 것을 엮어서 책을 내다보니 다음 책은 어떤 주제로 작업할까 하는 것보다 다음 개인 작업 프로젝트는 어떤 주제가 좋을까를 생각해요. 물론 책으로 나오면 좋고 감사하겠지만 그것에 연연하진 않아요.
올해 여름 생각만 해오던 작업실을 열고 그로 인해 수업을 진행하게 된 것처럼, 그림과 글이 머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다양한 확장의 길을 열어두려고 해요. 마음을 열어놓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그려나가다 보면 또 인연이 닿는 즐거움이 생길 거라는 걸 믿어요.
*AM327(김민지) 프리랜서 상업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이야기를 그리는 작가이다. 오랜 직장 생활 중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회사를 뛰쳐나왔다. 다행히 아직까지 먹고살 만하지만 고정 수입을 포기한 대가로 삶의 잔바람에도 이리저리 휘청인다. 나답게 잘사는 것에 관심이 많아 미숫가루 탄 물처럼 뿌연 마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게 마주한 생각을 붙잡아 AM327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기록해나가고 있다. 자주 크게 감탄하고 자주 크게 분노한다. 이런 성정을 가진 나를 잘 보듬어서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오래오래 그림을 그리는 게 꿈이다. 인생이라는 롤러코스터에서 요가라는 안전장치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