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고 아름다운 둥우리 이야기가 담긴 『새는 건축가다』, 지금 이곳의 청소년을 그려낸 『토요일의 세계』,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장소들을 답사한 기록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를 준비했습니다.
톨콩(김하나)의 선택
차이진원 글그림/박소정 역 | 현대지성
표지를 보시면 새 둥우리가 그려져 있어요. 이 둥우리의 느낌이 펠트 같지 않나요? 부드럽게 축 쳐진 주머니 같이 만들어져 있는, 사이사이 이파리가 나와 있는 둥우리가 있고요. 그 위에 귀여운 통통한 새가 앉아있는 그림입니다. 이런 그림이 책 속에서 계속 나와요. 도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목이 『새는 건축가다』인데요. 새의 둥지를 이 안에서는 둥우리라고 계속 둥우리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 책은 새의 둥우리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둥우리가 얼마나 천차만별이며, 둥우리를 짓는 데 쓰는 재료와 습성도 있고, 어떤 것은 얼마나 건축적으로 기묘하게 지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것을 다 멋진 그림으로 그려놓았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우리가 이소영 작가님을 모시고 식물 세밀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있잖아요. 식물 세밀화도 개체를 잘 묘사하기 위한 과학적으로 필요한 그림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우니까 보고 있을 때 쾌감이 있죠. 이원영 박사님의 책에도 펭귄을 직접 그리신 그림들이 있었는데요. 그런 그림으로 개체의 모습이나 습성을 보는 게, 그것 자체로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우울증이나 우울한 상태를 겪는 사람의 마음이 자연에서 많이 치유를 얻을 수 있다고 하잖아요. 식물의 구조라든가 동물들의 모습이나, 아니면 새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그렇게 좋대요. 이 책을 넘기면서 새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예쁜 그림들로 기분이 아주 좋았고요. 추천사의 제목이 “벽에 걸어놓고 감상할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새의 둥우리와 그 옆에서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부모 새의 그림도 있고, 열심히 구애를 하거나 집을 짓고 있는 새들의 그림도 있는데요. 이것들을 벽에 걸어놓고 바라봐도 참 마음이 편안하고 좋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주에 제가 너무 격앙되어서 울면서 방송을 하는 바람에 제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지난 2주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짐작하실 수 있을 텐데요. 사실 다른 책은 잘 읽히지 않았어요. 그런데 『새는 건축가다』는 아주 흥미롭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저자인 차이진원은 대만 사람입니다. 한자어를 쓰는 문화권이기 때문에 비유해둔 한자 같은 것들도 많고요. 서문의 제목은 ‘일생지계재어소(一生之計在於巢)’예요. ‘일생의 계획은 둥우리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간간이 등장하는 한자 표현들도 마치 한시를 읽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림과 한자를 통해서 그런 느낌을 즐기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냥의 선택
라일라, 글피, 김소희 글그림/이동은 글/정이용 그림 | 창비
창비 출판사에서 나온 ‘창비만화도서관’ 시리즈 중에 한 권입니다. 청소년과 어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출판 만화 시리즈인데요. 『토요일의 세계』는 ‘청소년 성장 만화 단편선’이라고 해서 네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라일라 작가님께서 그리신 「토요일의 세계」, 이동은 정이용 두 작가가 함께 만든 「캠프」, 부부작가단 글피의 「전학생은 처음이라」, 김소희 작가의 「옥상에서 부른 노래」가 실려 있습니다.
표제작인 「토요일의 세계」를 그린 라일라 작가님은 「나는 귀머거리다」라는 작품으로 데뷔하셨어요.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셨었는데, 작가님께서 청각장애를 갖고 계시고요. 그 이야기를 유치한 필치로 그려내셨었습니다. 「토요일의 세계」에도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작가님이 다섯 살 때부터 열세 살 이전까지 살았던 동네에는 농학교가 있었대요. 마을에서 청각장애인 아이들을 보는 일이 특이한 게 아니었던 거예요. 동네 안에서 나와 비슷한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고, 주변의 비장애인들도 청각장애인 아이들을 만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거죠. 그러다가 열세 살에 이사를 가게 돼요. 그곳은 청각장애인을 잘 볼 수 없는 동네였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로 넘어간 거죠. 라일라 작가님은 토요일이 되면 예전에 살던 동네로 가서 친구들을 만났다고 해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같이 놀고, 그러다 날이 저물면 새로 이사한 동네로 다시 돌아오고요.
표제작으로써 「토요일의 세계」가 함의하는 바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책은 지금 이 시기를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 어떤 고민을 하면서 어떤 시간을 관통하고 있는지에 관한 네 편의 작품이 실려 있거든요.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에서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 어디에 속해서 살아가야 하는지, 그러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세계와 어울리는지’ 그 고민 자체가 청소년기를 대변해준다고 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토요일의 세계」를 표제작으로 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단호박의 선택
박래군 저 | 클
박래군 저자님은 노동 운동과 인권 운동의 대표격으로 계속 이야기되는 분이죠. 학생 때부터 학생 운동, 노동 운동을 계속 해오셨는데 동생 박래전 씨도 학생 운동을 하셨어요. 박래전 씨는 1988년에 당시 노태우 정부에 항의하면서 분신을 하셨고, 이후에 박래군 저자도 본격적으로 인권운동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지금 ‘인권재단 사람’의 소장으로 있으시고요. 굉장히 다양한 문제와 관련해서 활동을 하셨어요. 양심수 석방, 고문 추방, 의문사 진상 규명, 주거권, 최저 임금, 비정규직...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인권 문제에 관여하신 분인데요. 가장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건 아무래도 세월호 사건 이후였을 거예요. 4.16 연대에서 상임운영위원 하시면서 여러 번 구속 수사가 되기도 했고요.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의 현대사의 대표적인 현장들을 답사한 기록을 남긴 책입니다. 제주 4.3 사건과 관련된 장소, 전쟁기념관, 소록도, 광주 5·18의 현장, 남산 안기부 터,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마석 모란공원, 세월호 참사 현장을 돌아본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처음은 제주 4.3 현장에 대한 답사 기록인데요. 4.3 사건이 지금은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10년, 20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기억 속에 묻힌 사건이었죠. 냉전 당시에 한반도에 미국과 소련이 들어오면서 남한에서는 미군정이 들어오고 이승만 정부가 단독 선거를 하려고 했었는데 제주도에는 아직 남로당이나 인민위원회가 남아 있어서 선거를 보이콧하는 시위를 했고요. 그 이후에 여러 가지 사건과 맞아떨어지면서 굉장히 잔혹하게 제주 시민들을 학살한 사건이었습니다. 거의 3만 명을 학살했다고 하는데요. 그것도 추정치이고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4.3 관련해서 특별법이 제정된 게 2000년이래요.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책에는 박래군 저자님이 4.3 평화공원에 간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 공원의 특징은 탑이 없다는 거래요. 대개 평화공원은 아주 거대하고 웅장한 탑이 있습니다. 관의 주도로 만들면서 멋있고 기릴만하고 예산을 들일만 한 것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탑을 짓는데요. 4.3 평화공원은 민관 합작으로 만들었대요. 그렇기 때문에 탑을 세우지 않았다고 하고요. 저자는 이 공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로 ‘다랑쉬 특별 전시관’을 꼽았어요. 4.3 당시에 다랑쉬 오름에서도 여러 만행이 저질러졌는데 ‘다랑쉬 특별 전시관’은 그 당시에 사람들이 동굴에서 살았을 때의 모습을 재현해놨다고 해요. 사진을 보면 굉장히 사실적으로 구현을 해놓았고 생과 사가 같이 있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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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2020.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