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확산되면서 며칠 만에 모두의 일상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전파력이 강한 바이러스인 만큼 특히 ‘사회적인 거리두기’가 강조되고 있는데요. 자연스레 공연계도 취소나 중단, 연기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배우를 만나러 가는 길이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인터뷰는 오래 전에 잡혀 있었지만, 개막 2주 만에 갑작스레 공연 중단이 결정됐기 때문입니다. 바로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 : THE LAST>로 색다른 연기를 보여준 배우 최수형 씨인데요. 2월의 끝자락, 세종문화회관 인근 카페에서 최수형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준비도 많이 했고 작품도 잘 나왔는데, 허탈하고 섭섭하죠. 그래도 상황이 안 좋으니까요.
저도 인터뷰 전날 밤 소식을 접해서 어떤 질문을 하고 어디까지 기사화해야 하는지 난감하네요. 사실 배우나 제작진은 2~3달 준비해온 공연이 갑자기 중단되는 경우를 종종 겪잖아요.
그렇죠, 이번 경우와는 좀 다른 얘기지만. 어쨌든 준비한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다들 강제 백수가 되는 거니까요. 수입이 저보다 더 없는 배우들은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들거든요. 사태가 빨리 수습됐으면 좋겠어요. 저도 가족들이 모두 대구에 계시거든요.
모두 무탈하신가요?
네, 저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괜찮다고 해요.
오늘은 그냥 ‘공연 전 편하게 커피 한잔 한다’ 생각하시죠. 사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캐스팅 발표 뒤에 바로 최수형 씨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2014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 <살리에르> 때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최근 2~3년간은 <안나 카레니나>, <노트르담 드 파리>, <오이디푸스> 등으로 전국 투어를 많이 하셨잖아요.
전국의 대극장을 다 다닌 것 같긴 해요. 공연장 구경하는 걸 아주 좋아하는데, 객석의 분위기도 좀 다르더라고요. 대구가 활기 넘친다면 광주나 전주는 조용한 편이에요. 부산 같은 경우는 먹을 데가 많아서 좋고, 여수는 극장에서 나오면 바로 바다가 보이더라고요. 반해서 매일 숙소에서 극장까지 걸어 다녔을 정도예요.
최근작들만 보면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리해랑이 좀 의외긴 했습니다.
제가 데뷔를 장군(<노트르담 드 파리>의 페뷔스) 역으로 했고, 이미지나 음색 때문인지 진중한 역할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실제 성격은 그렇지 않거든요. 오랜만에 모든 걸 내려놓고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극을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해랑이를 하면서 많이 풀었죠. 작품에 가장 늦게 합류했는데, 배우들이 처음에는 저를 많이 어려워하더라고요. 연출님도 걱정하셨다고 하고. 그런데 과묵할 줄 알았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웃길 줄은 몰랐다며 많이들 좋아해주셨어요. 제가 이렇게 춤을 많이 춘 뮤지컬도 처음이에요(웃음).
<쓰루더도어>보다 더한가요(웃음)?
더 갑니다(웃음). 오프닝이 거의 10분인데, 남자 10명 정도가 군무를 하니까 멋있더라고요. 격투신도 멋있고. 워낙 몸을 잘 쓰는 친구들이거든요. 기존에 이 뮤지컬을 했던 배우들이 그러는데, 예전과 완전히 다른 작품이래요. 사이즈 자체가 커졌고.
최수형 씨가 리해랑으로 캐스팅된 것에 팬들도 많이 놀랐다고 하는데요.
무슨 얘기인지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은밀하게 위대하게>도 색다른 도전이지만, 지난해 참여한 <오이디푸스>는 연극이었잖아요. 연기적으로 뭔가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이디푸스>는 순수하게 황정민 선배가 궁금해서(웃음). 리딩할 때도 바로 앞에 국민배우가 있다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그리고 처음에는 음악극 형태여서 제가 뽑혔는데, 작업하는 과정에서 음악이 사라지고 온전히 연극으로 무대에 서게 됐어요. 재밌게 공연하고 정민 선배도 알게 되고 좋았죠. 그리고 요즘 연기 욕심이 커졌어요. 노래로 나를 보여주기보다는 연기를 제대로 하고 싶다고 할까요. 드라마나 영화 쪽도 하고 싶고요.
노래는 워낙 잘하시니까(웃음). 성악 전공에 MBC합창단 출신이잖아요. 연기에 좀 더 욕심이 생긴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지난해 한글날을 맞아 <외솔>이라는 뮤지컬을 울산에서 공연했는데, 한글학자면서 독립운동가인 외솔 최현배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었어요. 단 이틀 공연이었는데 한 달 넘게 연습했거든요. 제 비중이 워낙 큰 데다 서재형 연출님이 준비를 너무 많이 해 오시는 거예요. 디렉션을 듣다 ‘이 장면을 이렇게 풀어간다고?’ 소름 돋은 적이 3~4번 돼요. 연출님과 제 연기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정말 재밌고, 그렇게 흠뻑 빠져서 작업하다 보니까 몸은 힘들지만 무척 재밌더라고요. 배우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전에도 나름 열심히 했는데, 연기에 또 다른 눈을 뜨게 된 것 같아요.
그럼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의 방향이 있을까요?
지금 제 나이가 조금 애매해요. 아빠 역할을 할 수도 없고, 마냥 어린 역할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저한테 어울리는 작품이나 역할을 끊임없이 찾고 있어요. 예전에 (서)범석이 형이 ‘배우가 좋은 이유는 죽을 때까지 계속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어서’라고 했는데, 그 말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제는 무슨 작품의 어떤 역할이 하고 싶다기보다는 어떤 캐릭터든 좀 더 심도 있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거운 역할보다는 밝고 재밌는 역할을 해보고 싶고요.
다음 작품이 기대되네요. 오랫동안 준비한 공연이 중단돼서 누구보다 속상할 텐데, 이렇게 웃으면서 인터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하반기에라도 다시 공연됐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리해랑이라면 지금 상황에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해랑이 대사 중에 ‘인생 뭐 있갔어? 쿨하게 살다 쿨하게 가는 거이지’라는 말이 있어요. 일단 공연은 내일까지니까 열심히 해야죠. 다른 배우나 제작진들도 최선을 다하자는 분위기고요. 그리고 이 어려움도 모두 잘 극복해야죠. 그래야 공연계도 다시 살아나니까요. <은밀하게 위대하게>도 다시 무대에 올랐으면 좋겠고요.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