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가 온통 초록으로 뒤덮이는 날
지금은 핼러윈 데이처럼 독특한 의상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하루 종일 음주 가무를 즐기는 날이 되었지만,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는 사실 종교적 의미가 깊은 아일랜드의 국가 공휴일이다.
글ㆍ사진 이현구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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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하기 그지없는 바람, 따뜻하고 눈부신 햇살, 간간히 지나가 짧은 소나기가 변덕의 삼중주를 연주하는 어느 봄날.

 


“해피 패디스 데이!”


아침에 깨자마자 존이 두 손을 번쩍 들고 아침 인사를 했다. ‘패디스 데이’는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St. Patrick’s Day’를 줄여 부르는 아일랜드식 애칭이다.


“해피 패디스 데이!”


나도 아이리시처럼 인사해본다. 3월 17일, 나라 전체가 온통 초록으로 뒤덮이는 날, 바로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다.


사람이 붐비는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우리는 이런 대대적인 행사가 있는 날이면 오히려 사람들이 별로 가지 않는 곳을 찾아 시간을 보내곤 한다. 어떤 해는 오전에 더블린에 가서 사람들이 많아지기 전에 후다닥 분위기만 느끼고 집에 왔고, 또 어떤 해는 브레이에 머물면서 동네 퍼레이드를 보고 동네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브레이 주민 놀이를 했다.


그런데 문득 아일랜드에 9년이나 살면서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에 그 유명한 더블린 퍼레이드를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관광객일 때는 특별한 여행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무슨 축제나 이벤트가 있으면 열심히 참가하게 되는데, 현지인이 되고 보니 오히려 이런 행사에는 관심이 줄어들고 내가 단골로 가는 카페의 새로운 커피 콩 맛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더블린의 초록 인파에 섞이기로 마음먹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초록색을 입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초록색’이 들어간 무언가를 입거나 걸치거나 쓰거나 바르거나 들고 있다. 초록색 모자, 초록색 티셔츠, 초록색 바지, 초록색 치마, 초록색 신발, 초록색 가방, 초록색 매니큐어, 초록색 립스틱…… 평소 초록색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기어이 옷장과 서랍을 뒤져 어딘가에 묻혀 있던 초록색 물건을 꺼냈거나, 아니면 고민할 것 없이 편의점이나 2유로숍에 가서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용 옷이나 장신구를 샀을 것이다. 붉은 수염이 달린 초록 모자, 아일랜드 국기 색인 초록ㆍ오렌지ㆍ화이트의 삼색 콤비 뽀글이 가발, 샴락(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세 잎 클로버) 무늬가 프린트된 스타킹 등 주로 우스꽝스러운 것들이다. 친구들인지 단체로 초록색 샴락 무늬 양복 세트를 맞춰 입은 청년 무리가 불콰한 얼굴로 손에 캔 맥주를 하나씩 들고 있다. 하긴 눈치 안 보고 대낮부터 술에 취할 수 있는 모처럼의 하루를 젊고 무모한 이들이 놓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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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든 장신구든 초록색이 들어간 것 하나쯤 찾아서 걸치고 나가지 않으면 어색해지는 날,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

 

 

지금은 핼러윈 데이처럼 독특한 의상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하루 종일 음주 가무를 즐기는 날이 되었지만,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는 사실 종교적 의미가 깊은 아일랜드의 국가 공휴일이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는 ‘성聖 패트릭’의 이름에서 유래했고 3월 17일은 바로 그가 죽은 날이다. 성자 패트릭은 아일랜드 땅에 기독교 복음을 들고 온 최초의 선교사로, 뿌리 깊은 아일랜드 가톨릭 신앙의 씨앗이 된 사람이다.


현지인들 중에도 패트릭이 아이리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그는 영국 웨일스(또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그것도 처음에는 자신의 뜻으로 아일랜드에 온 것이 아니라 열여섯 살에 노예로 끌려와 6년간 강제 노역을 했다. 가까스로 배를 타고 도망치는 데 성공하지만, ‘아일랜드 땅에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강한 계시를 받고 선교사가 되어 아일랜드로 돌아간다. 그리고 남은 평생을 이방인으로 가난과 박해 속에서 기독교 복음과 사랑을 전하며 살다가 죽는다.


현재 패트릭은 아일랜드 교회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성자 중 하나로, 그가 남긴 기도문과 신앙 고백이 담긴 일기는 지금도 서점가의 스테디셀러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이런 성자 패트릭을 기억하고 그가 아일랜드에 남긴 정신적 유산을 기리는 날이 바로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다.


그런데 왜 ‘초록색’일까? 많은 사람들이 아일랜드가 일 년 내내 잔디가 푸른 ‘초록빛의 나라’로 유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사실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의 상징이 초록이 된 것은 아일랜드의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16세기 영국이 아일랜드를 지배하던 시절, 헨리 8세는 영국을 상징하는 파란색 바탕에 아이리시 하프를 그려 넣은 깃발로 자신이 아일랜드의 국왕임을 주장했다. 당시에는 세인트 패트릭을 기념하는 색도 파란색이었다고 한다. 이후 1641년 북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독립군을 이끌던 오언 로 오닐Owen Roe O’Neill이 영국의 통치에 반대하는 의미로 하프가 그려진 초록색 깃발을 들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아 1790년에 아일랜드에서 종교 분쟁을 통합하려는 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사람들은 초록색 셔츠와 코트, 모자를 유니폼으로 맞춰 입고 거리로 나섰다.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초록은 자연스럽게 아일랜드의 자유와 독립, 통합을 상징하는 색이 되었고, 이것이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를 축하하는 초록 물결의 시초가 되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퍼레이드다. 아일랜드 곳곳에서 자체적으로 크고 작은 퍼레이드가 열리지만 뉴스의 메인을 장식하는 것은 역시 수도 더블린에서 열리는 퍼레이드다. 재미있는 사실은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를 기념하는 퍼레이드가 아일랜드가 아닌 미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일자리와 새로운 삶을 찾아 미국으로 떠난 아이리시들이 그들의 조국을 기억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되새기기 위해 시작한 퍼레이드는 아일랜드는 물론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아이리시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점차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의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도 매년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를 기념하는 퍼레이드와 기념행사가 서울 시내 서너 곳에서 열리고 있다.


생각해보니 내가 처음으로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에 대해 알게 된 계기도 2004년 호주 시드니에서 우연히 만난 초록 물결의 퍼레이드였다. 막연히 시드니에서 열리는 축제 중 하나인가보다 생각하며 퍼레이드를 구경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이 바로 아일랜드의 최대 명절인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였다. 이후 초록 물결은 늘 나에게 ‘아일랜드’라는 나라를 기억하는 방식이 되었다. 그 퍼레이드가 생각날 때면 문득 궁금해진다. 그날 축제를 즐기던 수많은 아이리시 이민자들 사이에 혹시 존의 가족도 있었을까? 존이 시드니에 살 때 맞이한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는 이곳 아일랜드에서 보내는 것과 느낌이 달랐을까?


우리는 정오에 시작되는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교통이 통제된 거리를 자유롭게 걸었다. 사람은 붐볐지만 차가 오는지 두리번거릴 필요 없이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다.


피어스 스테이션(Pearse Station)에서 오코넬 스트리트까지 걸으며 퍼레이드를 잘 볼 수 있는 자리를 찾아봤지만, 이미 출입 통제 펜스를 따라 인간 띠가 두어 겹씩 둘러진 상태였다. 예상은 했지만 그렇다고 2시간 전에 와서 자리 펴고 앉아 있을 자신은 없었다. 내가 선택한 결과니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즐길 수밖에!


나와 존은 오코넬 스트리트, 해가 잘 드는 중앙 가로수 턱에 걸터앉아 집에서 싸 온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었다. 쌀쌀한 바람이 쉴 새 없이 옷 속을 파고들었지만, 그래도 햇볕 아래 있으니 조금은 견딜 만했다.


12시가 조금 넘어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악단의 연주와 관중의 요란한 환호에 분위기가 금세 달아올랐다. 두터운 인간 벽 틈을 파고들어봤지만 너도 나도 손을 뻗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통에 깨금발을 하고 머리를 기웃거려도 기껏해야 볼 수 있는 건 각 그룹 선두가 들고 가는 깃발 꽁지가 다였다. 존은 5분 만에 포기하고 저만큼 뒤로 물러나 섰고, 나는 20분쯤 버티다가 나가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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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의상과 소품으로 개성을 뽐내며 더블린 시내를 지나가는 퍼레이드 참가자들과 퍼레이드를 기다리는 사람들.

 

 

모처럼 맘먹고 더블린까지 왔는데 퍼레이드를 제대로 못 봐서 아쉬웠지만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했다’는 데 만족하기로 했다. 존과 나는 퍼레이드를 구경하는 인파를 뒤로하고 우리끼리 뒤풀이를 하러 도슨 스트리트(Dawson Street)에 있는 아이비(The Ivy) 펍으로 향했다.


존은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에는 기네스를 마셔야 해”라며 기네스를, 나는 하우스 맥주를 시켰다. 원래 이 집은 밑동이 둥글고 넓은 잔에 기네스를 담아주는데 이날은 하프 마크가 찍힌 오리지널 기네스 잔에 담아주며, 바맨이 덧붙였다.


“오늘은 안 돼요. 무조건 이 잔이어야 해요!”


어느 나라나 늘 전통과 변화라는 상충하는 요소가 부딪치고 화해하면서 새로운 문화의 방향을 형성해 나간다.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도 해가 바뀔수록 종교적 의미는 점차 희미해지고 재미와 사교의 의미가 더 강해지고 있다. 종일 파티를 즐기며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침부터 술주정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성자의 기일을 보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다. 또 한편에선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효자 관광 상품으로 이날을 바라보기도 한다.


일단 생명력을 얻은 축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스스로 새로운 옷을 덧입는다. 그러므로 그 변화를 환영하건 환영하지 않건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도 어떤 모습으로든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바라기로는 어떤 모양, 어떤 색깔로 이 축제를 즐기든, 아일랜드를 목숨처럼 사랑했던 성자 패트릭의 숭고한 정신만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꼭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초록빛 힐링의 섬 아일랜드에서 멈추다이현구 저 | 모요사
요리하고 기타 치는 아일랜드 남자를 만나 아일랜드에 정착한 지 9년. 그녀가 들려주는 아일랜드 이야기는 흔한 가이드북에서는 만날 수 없는 속 깊은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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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구

아일랜드에 살면서 느끼고 경험한 일상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마야 리Maya Lee’라는 필명으로 카카오 브런치를 통해 다른 이들과 나누고 있다. 극본 번역가로서 동시대 아일랜드 연극을 한국어로 번역해 무대에 소개하는 작업도 한다. 현재 기타 치고 요리하는 아이리시 남편과 함께 여행 같은 삶을 꿈꾸며, 더블린 근교의 바닷가 마을 브레이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