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2> 왕국 혹은 미국의 기원을 찾아서
폭력을 개척의 무기로 활용했던 선조와 다르게 엘사와 안나는 연대와 같은 부드러움의 가치를 앞세운다.
글ㆍ사진 허남웅(영화평론가)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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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겨울왕국2> 포스터

 

 

렛잇꼬오우~ 훅이 귀를 찌르는 주제가는 <겨울왕국 2>에 없다. 대신 이번에는 아아~ 아아~ 어릴 적 엘사의 엄마가 들려줬던 자장가의 특정 멜로디가 엘사(이디나 멘젤 목소리 출연)의 귀를 괴롭힌다(?). 잠이 막 들려고 하면 아아~ 아아~ 들려오는 통에 매일 같이 잠 못 드는 밤, 이참에 동생 안나(크리스틴 벨)와 안나의 남자친구 크리스토프(조나단 그로프)와 ‘당근코 눈사람’ 올라프(조시 게드)와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나선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관문이 몇 개 있다. 티저 예고편에 공개된 바에 따르면, 엘사는 요동치며 달려드는 파도를 넘으려 안간힘을 쓴다. 손으로 영하의 찬 바람을 쏘아 바다를 얼음으로 만들어 서핑하듯 파도를 넘어서려는데 쉽지 않다. 그러니까, <겨울왕국 2>의 콘셉트는 가는 길을 막아서는 집채만 한 파도와 벽을 넘어서는 엘사(와 안나 자매)의 고군분투다.

 

<겨울왕국 2>가 ‘넘는’ 이야기라면 <겨울왕국>은 ‘깨는’ 과정이었다. 엘사는 손이 닿으면 모든 걸 꽁꽁 얼려버리는 능력이 두려워 왕국을 떠났던 전력이 있다.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유폐했던 셈인데 그래서 <겨울왕국>은 두려움을 깨는 이야기이었다. 특히 ‘백마 탄 왕자님’의 도움 없이 자매가 운명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여성의 주체성을 단단히 둘러싼 유리천장을 뚫고 나오는 서브 텍스트가 메인 플롯을 강화했다.

 

<겨울왕국 2>의 포스터에 실린 태그는 ‘두려움을 깨고 새로운 운명을 만나다.’이다. 1편에서 유리천장을 뚫고 나오니 엘사와 안나 앞에 새로운 운명이 대기하고 있다. 이를 두고 공동감독 중 한 명인 크리스 벅은 “1편과 2편이 합쳐져 비로소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을 깨고 나온 엘사가 안나와 함께 세상을 넘는다, 고 한 줄 정리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세상이 거대한 벽을 치고 자매에게 숨기려는 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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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겨울왕국2>의 한 장면

 

 

왕국의 역사다. 벽을 치고 베일에 가려놓았으니 역사의 수원지, 곧 기원에는 추악함이 가둬진 듯하다. 아아~ 아아~ 소리의 정체가 궁금해 길을 나선 엘사 일행에게 트롤은 역사의 비밀과 관련해 이런 얘기를 전한다. “과거에는 감춰진 진실이 있어요. 그 진실을 찾아야 해요. 북쪽으로 가세요. 마법에 걸린 나라들을 지나 미지의 세계로. 이제는 그 힘이 충분하다고 믿어야 해요.”

 

엘사가 파도를 넘었듯 감춰진 진실을 찾아 미지의 세계로 가려면 마법의 숲을 지나야 한다. 지금은 짙은 안개로 둘러싸여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마법의 숲이 안개에 뒤덮인 건 자매가 태어나기 전이다. 왕국의 군대가 원주민들을 돕겠다며 이 숲에 들어와 공격하고 대립하자 숲의 정령이 분노했고 그에 대한 대가로 이곳을 폐쇄했다. 이의 설정은 미국이 신대륙 개척 이유를 들어 아메리칸 원주민을 학살했던 폭력의 역사와 원을 그린다.

 

거대한 땅을 나누어 공유하는 대신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피를 본 미국 역사의 기원은 ‘돌고 돌아’ 현재에는 벽을 높여 외부인의 유입을 막는 형태로 진화했다. 엘사와 안나의 선조가 원주민을 돕겠다고 원주민의 터전에 거대한 댐을 세워 수몰할 계획을 세운 설정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벽처럼 화합과 연대의 가치에서 퇴보하고 있는 현재의 미국을 반영하는 듯하다.

 

여성의 독립을 가로막는 퇴보한 가치에 맞선 경험이 있는 엘사에게 마법의 숲이 처한 현재는 전혀 ‘새로운 운명’이 아니다. 오히려 엘사와 안나가 발을 디딘 마법의 숲은 새롭게 바꾸어야 할 역사다. 그야말로 새로운 운명의 개척이다. 개척은 미국 역사를 상징하는 일종의 국가 정신이었다. 남자들이 주도했던 미국 역사는 폭력으로 얼룩진 형태이었다. 이제 자매는 피의 순환 고리를 끊으려 높게 올라간 불신의 벽을, 댐을, 파도를 헐어서 무너뜨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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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겨울왕국2>의 한 장면

 

 

폭력을 개척의 무기로 활용했던 선조와 다르게 엘사와 안나는 연대와 같은 부드러움의 가치를 앞세운다. 극 중 왕국을 우회하여 미국 역사의 기원을 찾고, 폭력의 과거로 회귀하는 현재를 바로잡으려는 시도가 동화와 신화의 형태를 띤 건 자매의 캐릭터와 맞물려 <겨울왕국 2>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한다. 이를 두고 <겨울왕국 2>의 제작진은 캐릭터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려고 한 시도였다고 한다.

 

제작자 피터 델 베초는 엘사에 관해 “확실히 신화적인 캐릭터다. 세상의 무게를 짊어지고 나머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고 언급했다. 제니퍼 리 감독은 “안나는 동화적인 캐릭터다. 긍정적이고 마법의 힘을 갖고 있지 않지만, 위험한 마법 세계로 들어간다. 위험한 상황에 부딪혀 온갖 고난과 상실을 겪지만, 투쟁을 통해 승리를 거둔다.”고 말을 보탰다.

 

대립하고 반목하고 폐쇄된 세계에 맞서 서로 힘을 합치는 자매가 화해를 이끄는 건 왕국의 주민과 숲의 원주민 사이, 선조와 후대 간의, 그리고 과거와 현재다. 그럼으로써 맞이하는 건 악수하고 어깨동무하고 개방하는 미래다. ‘Let It Go’만큼은 아니지만, 그만큼이나 많은 공이 들어간 <겨울왕국 2>의 주제곡은 ‘미지의 세상 Into the Unkown’이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미지의 세상을 녹여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주체는 엘사와 안나다. 세상은 이제 자매가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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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2 #엘사 #안나 #Into the Unkown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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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미경

2019.12.01

매우 철학적인 주제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1편이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과정이라면. 그래서 무엇인가를 깨뜨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면. 2편은 더 나아가서, '벽'이라는 것을 넘어서 더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넘기'의 영화였다는 말씀이. 완전 확 와 닿았습니다. 좋은 기사 스크랩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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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