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우리 사회는 지금 공정함을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여러 곳에서 벌어진 일들은 실망스럽다. 세칭 진보를 자처하는 인사들에서도 공정을 저버린 일들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롭게”라고 말했고, 밀레니엄 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대의나 가치보다 과정의 ‘공정함’인데도 불구하고 보이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나마 우리가 기대는 곳은 사법 시스템이다. 그동안 우리는 억울한 일이 있거나, 정의롭지 못한 일이 있으면 법에게 물어 보았다. 대통령의 탄핵도 결국 법원에서 결정이 난 것이듯이 우리가 마지막에 기대는 곳은 수사하는 경찰, 기소하는 검찰, 그리고 판결을 내리는 법원이다. 그러나, 최근 이 심리적 마지막 보루조차도 의혹을 가지게 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어느 시점부터는 검찰이 무리한 표적 수사를 한다고 보기도 하고, 수사를 당연히 해야 할 사람을 하지 않는다고 의심을 갖는다. 또, 구속기소를 했는데 법원에서 이를 기각하면 구속적부심을 한 판사의 전력을 찾아내 정치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꼭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라해도, 대중들이 보기에는 유사한 사건에 대해 검사나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것을 적지 않게 보고, 판사의 판결문이 대중의 세칭 법 상식이나 상식적 감정에서 많이 벗어난 오직 ‘법전을 텍스트로만 해석’한 것들에 실망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당사자도 “나는 공평하지 않습니다”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없고, 검찰과 법원 모두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라고 자부한다. 그리고 믿고 지켜달라고만 말한다. 우리 이것 믿고 기다리면 될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 법리적 해석, 사회학적 논리가 아닌, 범죄심리학과 뇌과학의 연구 결과에 기반해 사법 시스템의 숨겨진 불가피한 불평등을 논증한 책을 찾아냈다. 애덤 벤포라도의
완벽한 평등, 객관, 공정은 존재하기 어렵다
『언페어』 의 저자 애덤 벤포라도는 사법 체계의 외부자거나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미국 법 시스템의 내부자다. 예일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후 연방 항소법원 서기와 법률회사의 변호사로 근무한 후 지금은 드렉셀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인지심리학을 기반으로 법 행위자들의 행위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수사, 판결, 처벌에 등장하는 모든 플레이어들을 각 챕터별로 소개한다. 피해자, 형사, 피의자, 검사, 배심원, 목격자, 전문가, 판사, 대중, 그리고 죄수다. 각각이 이 사법 시스템에서 갖는 포지션과 이들이 처한 현실들, 그리고 유명한 사례들을 분석하고, 이와 관련한 인지심리학, 사회심리학, 뇌과학연구 등에 밝혀진 최신 지견을 바탕으로 객관과 공정은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이상일 뿐, 현실은 왜곡되거나, 한쪽으로 치우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방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입증했다.
『언페어』 에서는 위에 열거한 순서대로지만, 독자의 관심이 높은 순서대로 소개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판사와 검사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여다본다. 판사의 중립성에 대한 논의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2005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존 로버츠 대법관 후보는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판사는 심판과 같습니다. 심판은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적용하는 사람이다.”
판사는 "직접 뛰는 선수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판단을 내려주는 심판"이라고 규정했고, 대부분의 판사가 자신은 객관적이고 그저 법을 적용하는 일을 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심판은 룰북에 어떻게 써있는지에만 매몰되는 위험이 있듯이, 법전 밖을 살펴보지 않고 오직 법전만 읽고 해석하는 엄격한 원문주의 해석자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해석과 마지막 판단이 개인의 출신 배경과 경험에 의해 의식,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고, 사회의제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과 공화당 지명 판사의 판결 성향이 서로 다를 뿐 아니라, 딸을 둔 판사는 시민권 소송에서 여성 권리에 유리한 판결을 할 확률이 16% 높은데, 이는 공화당 지명 남자 판사들이 두드러졌다. 엄격한 전문적 추론에 입각할 것으로 보이나, 많은 부분은 개인적 직관에 의지하며 뇌의 심리적 지름길을 통한 쉽고 에너지가 덜 드는 판단을 하는 데 익숙했던 것이 많은 통계와 연구에서 밝혀졌다.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판사의 주관적 인식은 또다른 편향을 낳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평균 20%정도의 가석방률 거부율이 있는 지역에서 판사가 4명을 연달아 가석방을 허가하고 나면, 5번째 죄수의 가석방을 허가할 확률은 낮아진다. 기대하던 패턴에 맞추려는 ‘근시안적 평균 효과’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5번째 죄수의 그 사람의 사안의 경중과 상관 없이 판사 개인의 개인적이고 그날의 근시안적 공정성을 위해 편향된 판단의 대상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번에는 검사 쪽을 보자. 루이지애나 주의 지방검사였던 게리 디건은 한 무장강도 살인 사건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아프리카계 미국인 존 톰프슨이 가석방없는 49.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하였다. 이 사건은 잘 종결이 된 셈이었다. 그런데 게리 디건이 사건 현장에 서 발견된 피묻은 천조각을 반출한 후 돌려주지 않았고, 이 결정적 증거가 숨겨진 탓에 천조각의 혈액형과 다른 혈액형이었던 존 톰프슨이 범인이 아님을 증명해줄 수 있었는데도 계속 감옥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결국 이 사실을 밝혀낸 덕분에 18년 만에 존 톰프슨은 풀려났다. 디건은 그가 범인이라고 믿었고, 대의를 위해 부정행위를 한 자신을 합리화해서 살아온 것이다.
윤리적으로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정직한 행동을 하고 나서 그로 인해 누군가 입을 피해와 인과관계를 경시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럴수록 정직한 행동을 할 동기는 약해진다. 더 나아가 자기 주변의 사람들의 평균값과 비고해서 자신의 행동이 상대적으로 덜 나쁜 쪽이라면 괜찮은 일이라고 역시 자위하고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는 사회의 질서회복과 정의구현의 수단을 위해 거악을 잡기 위한 소악일 뿐이라고 재구성해서 믿고 정당화한다. 저자 애덤 벤포라도는 타인을 위해 일을 하는 비영리재단, 학교, 공익단체 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규칙을 어기고 왜곡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실도 함께 부연하였다. 즉 정의를 위해 악과 싸우는 검사들은 거기에 깊이 매몰될수록 비윤리적 행위, 절차의 부도덕성을 합리화해서 엉뚱한 사람을 죄수로 지목하고 몰아넣는 일이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
개인의 탁월한 능력에 의존하는게 문제라면 집단지성은 신뢰할 수 있을까? 미국의 배심원 제도 이야기다. 그러나, 이 역시 배심원단을 구성하는 문제, 구성된 배심원들의 인종, 문화, 성별에 따른 판단의 차이가 판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많은 연구과 실제 판례에서 입증되었다. 똑같은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다음에 평등주의적 관점을 갖고 유복하지 않고, 자유주의 성향이 강하고 고등교육을 받은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은 기존의 사회 위계질서와 개인주의를 지지하는 부유하고 보수적 백인 남성에 비해서 한 흑인 남성이 차를 몰고 가다가 경찰차와 긴박한 추격전을 하다가 부당한 오인 총격을 받은 사건에서 경찰에 유죄를 판단하는 경향이 강했다. 사실에 대한 단 하나의 합리적 관점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심문 과정을 비디오로 보여줄 때에도 어떤 앵글이냐에 따라 판단은 달라졌다. 심문자의 관점에서 보여주면 범인의 최종 자백이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 경향이 커졌고, 피의자의 눈으로 앵글이 잡히면 강압으로 보는 경향이 커졌다. 피의자와 수사관 양쪽을 보여주는 자백녹화 영상을 피의자만 보여주는 것으로 바꾸자 유죄판결 비율이 두 배로 올라가는 연구도 있었다. 이와 같이 관점편향은 배심원들에게 존재할 수 밖에 없고, 집단이 되어도 이런 편향은 사라지기 어렵고 집단이라고 해서 이 부분이 모두 완화되거나 중립화될 수 없었다.
판결이 내리기 전에 유명한 사건은 대중들에 의해 이미 감정적인 판단이 내려져버려서 사법적 판단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부촌에서 쓰러진 백인 노인을 처음 이송한 사람이 엉겹결에 “알코올”이란 딱지를 붙이는 바람에 주취자로 오인되어서 병원에서 방치가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매우 유명한 저널리스트가 강도를 당해서 뇌출혈로 쓰러진 거였는데, 뇌압이 올라가서 나온 토사물의 냄새를 술 냄새로 착각했듯이 우리의 작은 선입견이 피해자의 사정을 매우 나쁘게 하기도 한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누구나 사법체계는 공정하고 어떤 누구도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최대한 시스템이 그렇게 돌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시스템의 모든 영역의 포지션은 합리적일 수 없는 사정들이 있고, 이는 그 사람의 탐욕이나, 전문성 결여, 무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감정적 영향, 사회문화적 영향, 인지적 편향성이란 보편적 요소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고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단 이걸 인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오랜 훈련을 받고 경험을 한 전문가라도 해도 100% 공정하고, 합리적일 수 없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걸 먼저 인정하고 난 다음에야 의미 있는 피드백과 교정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